한때 신문 만평은 해당 언론사를 대표하는 대표 콘텐츠로 손꼽힐 때가 있었다. 촌철살인의 풍자로 카타르시스를 주면서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도 하고 어떨 때는 기사보다 더 큰 파급력을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신문지면에서 만평을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현재 전국단위 종합일간지 중 조선일보, 동아일보, 세계일보 등은 만평을 게재하지 않고 있다. 동아일보는 손문상 화백의 퇴사 이후, 조선일보는 신경무 화백의 별세 이후, 세계일보는 조민성 화백이 나간 후 만평의 맥이 끊겼다. 한 때 만평의 중심이었던 4컷 만평의 경우 경향신문, 서울신문, 매일경제 등에만 게재되고 있다.

그러나 만평에 대한 수요는 꾸준했다. 1컷 또는 4컷에 담긴 풍자와 카타르시스를 원하는 수요층은 여전하다는 것이다.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경향신문의 장도리의 경우 게재 때 마다 트위터 등 여러 커뮤니티에서 회자가 된다. 지난 9월 경향신문이 장도리 만평을 오피니언면에서 인물면으로 옮긴 것에 대해 독자들의 항의 움직임이 빚어졌던 것도 그 때문이다.

손문상 화백은 “경향 장도리의 경우 고루하다고 평가받던 4단 만화가 유효한 콘텐츠임을 입증했다”며 “다만 장도리 같은 경우, 지면을 이동하는 것을 가지고 문제를 삼을 일은 아니”라고 말했다.

경향신문은 중앙 일간지 중 거의 유일하게 4컷 만평과 1컷 만평을 동시에 게재하고 있다. 당시 경향신문 측은 장도리가 지면을 옮긴 이유에 대해 오피니언면의 주목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바 있고 당시 노조가 문제제기를 했지만 지금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상태다.

다만 ‘아쉽다’는 목소리는 여전히 나오고 있다. 장도리의 박순찬 화백도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작업하는 데는 큰 상관이 없다”면서도 “(만평 취지가) 인물면과는 상관이 없고 독자들이 만화를 찾아보는데도 불편해하는 것 같아서 아쉬움은 있다”고 말했다.

   
▲ 11월 19일자 언론 만평들
 
'사라진 만평'의 본질적인 문제는 만평 자체를 홀대하는 언론사 분위기다. 만평작가들은 공통적으로 언론에서 만평을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만평은 그 자체로 풍자와 비판을 담고 있기 때문에 언론사 내부에서도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있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또는 만평의 창의력을 인정하기 보다 신문 논조에 맞추려는 기계적 대응도 지적하고 있다.

손문상 화백은 “한국 언론에서 만평가가 불편할 정도로 한국 언론이 비정상화 된 결과”라며 “보수언론의 경우 입맛에 맞는 만평가가 나오면 쓰겠지만 어쨌든 만평의 기능이 비판인데, 불편해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이어 “비판기능이 있는 만화들은 주류매체 안에서는 불편한 존재란 것”이라며 “시사만화 자체가 가지고 있는 독립성과 표현의 자유를 잘 유지시켜줬을 때 시사만화가 발전하지, 입맛에 맞는 만화가를 쓰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손 화백은 “물론 시사만화가 스스로 좀 더 노력할 부분도 있다”며 “이는 시사만화가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 정신을 회복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손 화백은 “시사만화가 고루한 장르라는 얘기가 있는데 해외의 사례를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며 “영국 가디언만 봐도 시사만화를 두 사람이 그리는데 그들은 한국 사회에서 상상할 수 없는 표현의 자유를 누리면서 100여개 이상의 코멘트가 달릴 정도로 핫한 이슈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 측면에서 실제로 우리나라는 언론이 시사만화를 버린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권범철 화백도 “지금 신문에서 만평은 ‘홀대’라기 보다 ‘왕따’를 당하고 있다”며 “사실 지금 시대가 만평이 필요한 시대인데 왜 언론에서 쓰지 않는지가 문제”라고 말했다. 권 화백은 “언론사 내부의 경영위기가 닥치면서 신문사에서 자연스러운 구조조정이 이루어졌고 편집, 사진, 교열, 미술, 만평 등이 자율적인 구조조정의 첫 대상이 되어버렸다”고 지적했다.

권 화백은 이어 “시사만평은 신문에 자기주장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밖에 여기지 않는 안 좋은 문화가 신문사 내에 생기고 있다”며 “만평은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인데 이를 감내하지 않으려는 언론사의 급격한 보수화와 보신주의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만평가들이 불편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권 화백은 “모든 언론이 신문 산업에서 흘러가는 보수화와 자기 보신주의 피해갈 수 없다”며 “또 한편으로는 편집국장이나 누가 되느냐에 따라 시기별로 (만평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기도 하는 부실한 구조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이동수 전국시사만화협회 회장은 “시사만화는 가장 첨예한 부분을 핵심적으로 끄집어내는 신문 비판기능의 첨단”이라며 “자본이나 정권의 속 좁은 대응으로 언론에서도 그런 비판기능을 수용할 수 있는 능력과 마음이 없어진 것 아닌가”라고 우려했다.

이 회장은 “‘몸에 좋은 약은 쓰다’는 속담처럼 시사만화는 쓰지만 몸에 좋은 것”이라며 “물론 기자도 마찬가지지만 시사만화가도 사회적 정의 내지는 인간의 자존심을 지향해 가면서 부던히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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