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시정연설을 앞두고 18일자 조선일보는 1면 톱기사로 <대선 연장전 333일, 마침표를 찍자>는 기사를 내놨다. 여야 간 날 선 공방이 격화되면서 국회가 마비됐고, 이로 인해 국민들의 저항이 거세지고 있으니 이제 그만 대선 때 벌어진 문제는 접어두고 국정에 힘쓰자는 취지다.

이는 분석기사라기 보단 조선일보의 주장이 강하게 반영된 기사다. 조선일보는 대통령 시정연설에 이어 문재인 민주당 의원의 입장 발표가 예정되어 있고 대정부질의도 있으니 이번 주를 기점으로 이 문제를 정리하자고 주장한다. 조선은 “여야가 마음먹기에 따라 대선 문제를 털고 갈 수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조선일보의 기사는 언뜻 균형성을 갖췄다. 박근혜 대통령의 시정연설이 정국의 분수령이라는 점도 짚었고 야당에 대한 비판 뿐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이 당당하게 야당의 퇴로를 열어주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이종찬 전 국정원장의 목소리도 실었다.

조선은 <대통령 국회 연설, 정치정상화 계기 만들어야> 제하 사설에서도 “대통령 시정연설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진 것은 이번 연설이 꽉 막힌 정국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될 것인가 하는 기대 때문”이라며 “정국의 흐름을 크게 바뀔 열쇠는 대통령이 쥐고 있다”고 강조했다.

   
▲ 조선일보 11월 18일자. 1면.
 
중앙일보도 마찬가지다. 18일자 <여야는 예산 국회 위해 휴전협정 맺어라> 사설에서 “민주당은 예산을 정쟁에 연계시키려는 듯한 태도”라면서도 “야당 탓만 할 일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중앙일보는 “새누리당은 과연 집권여당다운 리더십을 발휘한 적이 있는가”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실 이들의 기사는 균형성을 갖췄다고 보기 어렵다. 민주당은 검찰 중립성 문제를 거론하며 특검을 주장하고 있고 국정원 개혁을 요구하며 특위를 주장하고 있지만 이에 대해 ‘논의 할 필요조차 없다’는 것이 새누리당의 입장이다. 새누리당이 야당 주장을 무시하고 무작정 예산심사에만 참가하라고 압박하니 국회에서 대화와 타협이 될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결국 민주당의 입장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여야의 대립에 대해 깊이 있는 원인을 짚지 못한 체 ‘공방’ 내지는 ‘정쟁’의 덫만 씌운다면 결국 야당의 주장을 ‘정쟁’으로 치부하고 있는 새누리당의 손을 들어주는 셈이다.

   
▲ 중앙일보 11월 18일자. 34면.
 
물론 ‘국회 마비’를 우려하는 목소리는 있을 수 있다. 때문에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진정성을 감안할 수 있는 척도는 18일 박근혜 대통령의 시정연설에 대한 19일자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보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대통령의 시정연설’을 정국 해법의 분수령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시정연설에서 “대선을 치른 지 1년이 되어가고 있는데도 대립과 갈등이 계속되는 것에 대해 대통령으로서 매우 안타깝다”며 “정부는 국민적 의혹이 제기된 사안들에 대해 이른 시일 내에 국민 앞에 진상을 명확하게 밝히고, 사법부의 판단이 나오는 대로 책임을 물을 일이 있다면 반드시 응분의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박 대통령은 “대립과 갈등을 끝내고 정부의 의지와 사법부의 판단을 믿고 기다려 달라”며 “앞으로 어떤 선거에서도 정치개입의 의혹을 추호도 받는 일이 없도록 공직기강을 엄정하게 세워가겠으며 국가정보기관 개혁방안도 국회에 곧 제출할 예정인 만큼, 국회에서 심도 있게 논의하고 검토하여 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특검 등 요구 수용에 대해서는 “국회 안에서 논의하지 못할 주제가 없다”며 “국회에서 여야가 충분히 논의해서 합의점을 찾아준다면, 나는 존중하고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는 여야 어느 한쪽의 의견이나 개인적인 의견에 따라 움직일 수는 없다”며 “국회에서 여야 간에 합의해준다면 국민의 뜻으로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사실상 특검과 특위 수용을 모두 거부한 것이다. 특검은 국회 합의 없이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재확인했고, 국정원 특위도 국정원 셀프개혁안이 국회에 제출되는 만큼 이를 논의해달라는 것으로 기존의 입장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만약 조선일보 등이 19일 보도에서 이러한 문제점에 대한 지적 없이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에서 논의하라’고 했으니 “이제 국회에서 민주당이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국회 정상화에 대한 염원’을 담은 오늘자 보도도 공허한 메아리가 될 수밖에 없다. 민주당의 변화를 촉구한 만큼, 변화 없는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문제도 지적해야 공정하지 못하다는 비판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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