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기록의 장점이자 단점인 '영속성'을 보완하는 기술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저작권자가 게시물의 소멸 시기를 미리 정하게 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개인정보 침해 문제와 가치 없는 '쓰레기 데이터(Junk Data)'의 축적 문제를 조금이나마 해결할 수 있다.

이런 기술이 가장 많이 활용되는 곳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분야다. 2011년 미국에서 나온 스냅챕(Snap Chat) SNS는 10~20대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스냅챗은 메시지를 전송하는 사람이 메시지의 소멸 시기를 정할 수 있다. 마치 영화 '미션 임파서블'처럼 일정시간이 지나면 메시지가 자동으로 삭제된다.

일명 '인스턴트 메신저'로 불리는 이런 서비스는 디지털 흔적을 남기고 싶지 않는 이들에게 적합하다. 스냅챗이 인기를 끌자 페이스북도 메시지의 소멸 시간을 설정할 수 있는 포크(Poke)를 출시했다. 또 스마트폰 메모에 삭제 타이머를 제공하는 번노트(Burn Note) 애플리케이션(앱)도 있다.

소멸시기를 정하는 건 대표적인 공개형 SNS인 트위터에서도 가능하다. 스피릿포트위터(Spirit for Twitter)를 이용하면 트윗을 올릴 때 삭제 시간을 지정할 수 있다. 트윗 내용 끝에 '#2d'이라고 입력하면 2일 후에 해당 트윗이 삭제된다. 또 미국 통신사인 AT&T는 '메시지 자동삭제' 기술로 특허를 출원했다. 이 기술을 이용하면 이미 발송해 상대방 메일함에 보관된 이메일도 원하는 시기에 삭제할 수 있다.

이와 비슷한 한국 서비스도 많이 나오고 있다. SK플래닛도 지난 10월 모바일 메신저인 '프랭클리 메신저(Frankly Messenger)'의 한국어 버전을 출시했다. 수신자가 메시지 내용을 확인하면 10초 후에 대화창과 서버에서 완전히 사라진다.

페이스북에서 사용하는 앱인 '버니버닛(Bunny Burnit)'은 초 단위로 담벼락 게시물의 소멸 시기를 정할 수 있다. 소멸된 게시물은 다른 이가 '좋아요'나 '공유'를 하더라도 소멸시기가 지나면 자동 삭제된다. 맹수연 버니버닛 대표는 "온라인 공간에 쓴 글이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다는 심리적 두려움은 표현의 자유를 저해하고, 인터넷에 떠도는 개인정보는 프라이버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며 앱 개발 배경을 설명했다.

디지털 데이터에 생명체와 같이 노화(Aging) 개념을 적용한 기술특허도 있다. 투자정보업체인 스누라는 디지털 데이터에 소멸 시기를 정하는 ‘디지털 노화 시스템(Digital Aging System)’의 연내 상용화를 준비 중이다.

DAS는 사용자가 게시물을 올릴 때 소멸 시점을 설정하면, 해당 데이터가 타이머에 맞춰 소멸하는 기술이다. 스누라는 "사진, 댓글 등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세상 곳곳으로 전파되고, 영구불멸의 상태로 존재하는 폐단을 근본적으로 방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특허 출원을 마친 DAS는 현재 국제특허 출원을 할 예정이다.

이런 기술은 최근 유럽을 중심으로 법제화가 논의되는 '잊혀질 권리'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잊혀질 권리(Right to be Forgotten)는 개인이 온라인에 올라간 자신과 관련된 각종 정보의 삭제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다. 한국에선 인터넷서비스업체(네이버 등)에 자신이 게재한 게시물에 대한 삭제를 요청할 수 있는 기초적인 수준의 개정안이 발의된 바 있다.

김경환 법무법인 민후 변호사는 소멸시기를 정할 수 있는 기술의 등장을 반겼다. 김 변호사는 "지금까지 온라인에 퍼진 디지털 데이터는 기술적으로 삭제가 안됐는데 이젠 가능하다는 게 밝혀졌으니 '잊혀질 권리'의 정당성이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온라인에 나의 데이터를 영원히 남겨야 한다는 건 너무 과하다"며 "오프라인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잊혀질 권리'에 대한 논의가 '삭제할 권리(Right to Erase)'로 축소되는 게 유럽의 최신 흐름이라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유럽에서도 잊혀질 권리가 표현의 자유를 너무 제약하기 때문에 위헌적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며 "이용자가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에게 제공한 자신의 정보를 삭제할 권리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잊혀질 권리'가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독일에서 나치에 부역했던 사람들이 '잊혀질 권리'를 주장하면서 남용하는 사례가 있다"며 친일파를 사례로 들었다. 그는 "친일파에 대한 글은 본인이 보기엔 악성댓글로 보이는 게 많을 것"이라며 "본인이 보기에 불쾌하고, 악성댓글이라고 (잊혀질 권리를 내세우며) 지울 수는 없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미 명예훼손죄 등 기존 형법으로 불법 게시물을 처리할 수 있다며 잊혀질 권리를 남용해선 안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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