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에일리의 '누드 사진'이 연예계를 강타하면서 또다시 '잊혀질 권리'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인터넷이 대중화된 1990년대 말부터 연예인의 개인적인 사진과 영상이 유출돼 당사자가 곤혹을 겪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다. 과거의 올린 인터넷 게시물이 불쑥 나타나 당사자를 괴롭히는 경우도 있다.

이런 일을 겪는 건 연예인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많다. 대학생 A씨(26·여)는 몇 달 전 학과에 떠도는 이상한 소문을 듣고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을 받았다. 대학 초년생 시절 전 남자친구의 강요로 찍었던 영상이 남학생들의 카카오톡 그룹채팅에 올라온 것이다.

확인 결과 A씨의 영상이 유명 파일공유사이트(웹하드)에 올라가 있었고, 이미 토렌트 사이트 등에 이상한 제목을 단 채 퍼져있었다. 가족은 물론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 없었던 A씨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한 '부정 게시물 삭제 대행사'를 찾았다. 대행사는 웹하드에 올라온 영상과 포털 사이트의 관련 게시물 삭제를 도왔다.

인터넷이 전 세계를 하나로 연결하고, 디지털 기술이 우리의 생활을 윤택하게 해주지만 어두운 이면도 가지고 있다. 장점이면서 가장 무서운 점은 디지털 데이터는 영원불멸하며 복제가 손쉽다는 점이다.

아날로그엔 소멸시기가 있다. 종이책이나 필름은 불타거나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면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게다가 물리적으로 보관도 어렵다. 이처럼 아날로그 데이터는 축적은 물론 향후에 재탐색하는데도 시간이 걸린다. 또한 사람의 뇌도 망각을 통해 과거의 실수와 기억을 지속적으로 삭제한다.

그러나 디지털 세상엔 이런 한계가 극복됐다. 정보는 끊임없이 축적되고, 무한복제되며 재탐색도 쉽다. 문제는 개인을 삶을 파탄으로 몰고 갈 수 있는 민감한 정보의 확산도 빠르다는 점이다. 물리적으로 모든 정보를 차단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

   
온라인 게시물의 소멸시기를 미리 설정하는 기술이 늘어나고 있다. ©디지털에이징연구소
 
2009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미국의 청소년들에게 페이스북에 지나치게 많은 개인정보를 올리는 것은 위험하다고 경고한 바 있다. 그는 “나중에 (게시물 내용이) 자신에게 돌아와 인생을 가로막는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이돌 그룹 2PM의 리더였던 가수 박재범씨는 2005년 SNS인 마이스페이스에 올린 글이 4년 후 논란이 돼 결국 탈퇴했다.

법과 제도적으로 이런 문제를 해결해주는 방법도 일정정도 마련돼 있다. 다음과 네이버 등 포털 사이트는 권리침해 신고를 하면 해당 게시물을 30일간 임시 삭제조치(블라인드 처리)를 한다. 게재자가 이 기간 동안 복원 신청을 하지 않으면 영구삭제가 되고, 신청하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

하지만 당사자가 자신과 관련된 모든 게시물을 찾아서 포털 사이트와 웹하드 업체에 일일이 삭제 요청을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무한대로 퍼져나가는 것을 막는데도 한계가 있다. 그래서 등장하는 게 '부정 게시물 삭제 대행사'들이다.

최근 한국에도 이런 일을 도와주는 업체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산타크루즈 캐스팅컴퍼니(산타크루즈)는
지난 3월부터 악성댓글 삭제 사업을 시작했다. 연예인 모델 에이전시로 시작한 이 업체는 연예인 관리차원에서 이 사업을 계기로 사업영역을 넓혀나가고 있다. 악성댓글 등 부정적 게시물의 삭제 그리고 사후 디지털 흔적(디지털 유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산타크루즈의 주요 업무는 의뢰인의 요청에 따라 악성댓글과 게시물의 삭제를 대행하는 것이다. 김호진 대표는 "자체 개발한 솔루션에 의뢰인의 이름을 입력하면 관련 기사, 블로그, SNS 게시물 등이 모두 나온다"며 "의뢰인의 위임장을 받아 해당 서비스업체에 삭제를 요청한다"고 말했다. 산타크루즈 직원들은 검색 결과를 긍정과 부정 게시물로 구분한 후 의뢰인에게도 제공한다.

대행사의 업무가 굉장히 전문적인 것은 아니나, 당사자가 개인적으로 모든 삭제 업무를 하기엔 한계가 있어 편리하다. 김 대표는 "인터넷에선 매일 엄청난 데이터가 쌓이기 때문에, 개인이 홀로 삭제 요청을 하다보면 본인의 업무와 생활을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영상의 경우 웹하드 업체에 삭제 요청을 해두면 데이터베이스가 있어, 같은 영상이 이름만 바꿔 올라와도 걸러낼 수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산타크루즈의 주요 고객은 연예인인다. 연예인에 대한 악성댓글을 삭제하는 매니지먼트사의 업무를 좀 더 특화한 것이다. 김 대표는 "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 40여명의 연예인과 25군데 기업의 악성댓글 삭제대행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일반 의뢰인 증엔 예비 신혼부부나 취업준비생들이 많다"고 말했다. 결혼을 앞두고 지우고 싶은 과거의 게시물을 삭제하고, 취업 과정에 거쳐야 하는 '온라인 평판 조회'를 준비하기 위해서다. 최근 일부 기업들은 입사 지원자의 SNS 계정을 파악해 과거 행적 등을 조회하기도 한다.

여론과 악성댓글에 민감한 건 정치인도 마찬가지다. 김 대표는 "일주일에 정치권에선 10여통의 문의전화가 온다"며 "악성댓글 등 부정적인 게시물을 삭제해달라는 의뢰인데, 민감한 정치쪽은 다루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정치인들은 오래 전부터 이미지 관리를 위해 온라인 평판 관리를 하고 있다. 네이버는 지난해 정우택 새누리당 의원의 요청에 따라 정 의원의 이름과 함께 노출되던 성추문 관련 검색어들을 삭제했다. 정 의원 측은 관련 사건은 무혐의로 수사종결됐고 밝혔다. 정치인과 관련된 이런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온라인 평판 관리업체 맥신코리아도 이와 비슷한 일을 한다. 한승범 맥신코리아 대표는 "국회의원이 되려는 정치인들이나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준비하는 이들의 온라인 평판을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당 공천을 받거나 주민의 표심을 얻는데 온라인 평판도 상당히 중요해졌다"고 강조했다.

맥신코리아도 블로그나 카페 등에 올라온 부정적 게시물의 삭제를 대행한다. 여기에 더불어 검색 결과를 긍정적인 게시물로 대체하는 업무도 한다. 한 대표는 "나쁜 평판을 제거하고 좋은 평판으로 대체하는데, 삭제가 안될 경우엔 네티즌이 호감을 가질만한 게시물을 올려 '밀어내기'를 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포털 사이트에서 정치인의 이름을 검색할 경우, 첫 화면에 나오는 사이트, 이미지, 블로그, 웹문서 등에 모두 긍정적인 게시물이 노출되게 하는 것이다. 한 대표는 "포털의 검색 알고리즘을 알고 있다"며 "어떻게 하면 부정적 검색결과를 밀어내고 긍정적 게시물이 먼저 나오게 하는지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치인 관련 검색결과의 머리에서 발끝까지 모두 바꿔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이런 작업은 선거에서 이미 활용되고 있다. 한 대표는 2006년 김문수 경기도지사 전 후보 캠프에서 사이버팀장을 맡은 바 있다. 그는 "온라인에서 김 전 후보는 상대후보인 진대제 전 열린우리당 후보에 비해 압도적이었다"고 말했다. 지난 대선에서도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를 이용한 다양한 선거 운동이 벌어진 것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IT(정보통신기술)가 발달한 해외엔 '온라인 평판 관리업체'가 이미 성업 중이다. 2006년 설립한 레퓨테이션닷컴(Reputation.com)과 '디펜드마이네임(Defendmyname.com)', '리무브유어네임(RemoveYourName.com)' 등은 부정 게시물 삭제, 개인정보 삭제 등의 업무를 한다. 의뢰인(개인, 기업)의 지우고 싶은 과거의 기록을 '세탁'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들이 기존의 '온라인 마케팅 회사'와 다른 건 홍보 보단 부정 게시물 삭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또한 그간 한국의 '온라인 평판 관리'는 헤드헌터회사의 업무 중 한 영역으로만 머물렀다. 아직 한국의 '부정 게시물 삭제 대행사'는 벤처기업 수준의 규모이지만, 디지털 기록 삭제에 대한 요구가 늘어나면서 해외의 온라인 평판 관리업체처럼 발전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디지털 기록을 완전히 삭제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SNS를 예로 들면 당사자가 자신의 트윗을 삭제하고 계정을 파기해도 다른 서버에는 남을 수 있다. 빅데이터와 SNS 분석 업체들이 실시간으로 모든 트윗을 그대로 서버에 복사해놓기 때문이다. 대선 개입 의혹을 받고 있는 국정원 직원들의 트위터 계정들이 삭제된 후에도 드러나는 이유다.

문재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오프라인에선 지워지는 것들이 온라인에선 다 남으니깐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며 "내가 그걸 지울 수 있는 권리를 만들고, 삭제를 도와주는 서비스가 생기는 건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문 교수는 "우리 사회가 디지털 시대의 부작용에 대한 인식하고, 이런 문제의 해결을 지원하는 서비스가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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