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수신료 인상은 오래된 ‘떡밥’이지만 나올 때마다 다들 낚인다. 당사자인 KBS는 물론이고 수신료를 올려 받으면 KBS2가 광고를 안 받게 될 거라는 기대로 MBC와 SBS까지 들썩인다. 그 ‘떡고물’이 유료방송 시장까지 떨어질 거라 종합편성채널과 케이블 채널(PP)들도 기대가 넘쳐난다. 사실 이미 포화상태에 저가 출혈 경쟁으로 버티고 있는 유료방송 시장에 지난해 기준 연간 5851억원의 KBS 수신료는 ‘떡고물’이라고 하기에는 어마어마한 규모다.

가장 앞장서서 바람을 잡고 있는 건 방송통신위원회다. 이경재 방통위 위원장은 인사 청문회 때부터 여러차례 수신료를 올려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방송 출연을 해서도,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도 “공정 방송을 위해선 수신료를 올리고 광고를 줄여야 한다는 게 내 기본 철학”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최근에는 홍성규 상임위원까지 가세했다. 홍 위원은 최근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수신료를 5배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키움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KBS 수신료를 월 4800원으로 올리면 KBS 수신료가 연간 5383억원 늘어나게 되는데 이는 지난해 KBS 광고 수입 6236억원의 86% 수준”이라면서 “이는 곧 현재 광고의 86%를 줄여도 된다는 이야기와 같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 말은 KBS2 광고 폐지를 전제로 수신료를 5000원 이상으로 올리지 않으면 KBS 입장에서는 수신료를 인상해 봐야 오히려 손해라는 이야기가 된다.

   
국가별 TV 수신료 비교. 사진=방송통신위원회
 
KBS2 의무 재송신도 유료방송 시장에서는 솔깃할만한 떡밥이다. 수신료를 올리고 KBS2까지 광고를 안 받게 되면 당연히 KBS2도 의무 재송신 채널로 지정해야 한다는 게 방통위의 구상이다. 문제는 의무 재송신 채널이 되면 케이블(SO)이나 IPTV 등에서 받는 재송신 수수료(CPS)를 받을 수 없게 된다는 데 있다. 지금은 KBS1과 EBS만 의무 재송신 채널인데 KBS2까지 빠지면 유료방송 사업자들은 200만 가입자 기준으로 50억원 이상 비용을 절감하게 된다.

이경재 위원장은 “결국 종편 특혜가 되지 않겠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KBS 광고 축소분을) MBC와 SBS가 가져가고 그 다음에 신문사, 모바일, 종편 순으로 가는 것으로 나온다”면서 “종편으로 가는 건 내가 보기에 전체 2~3%나 될까 할 정도”라고 밝힌 바 있다. 이 위원장은 KBS 수신료 인상과 KBS2 광고 폐지가 전체 방송시장의 파이를 키우려는 의도라는 사실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실제로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KOBACO) 자료를 기초로 삼성증권이 전망한 바에 따르면 KBS 수신료가 월 5000원으로 오르고 KBS2 광고가 폐지될 경우 KBS2의 광고 가운데 40%는 자연 소멸되는 것으로 가정하고 MBC가 24%, SBS가 18% 정도를 가져가는 것으로 추산된다. 각각 1379억원과 1034억원씩이다. 이밖에 종편이 6%(345억원) 정도, 나머지 PP들이 12%, 690억원을 나눠 가져가게 될 거라는 분석이다. 이른바 트리클 다운 효과가 나타날 거라는 기대다.

결국 KBS 수신료 인상과 함께 KBS2의 광고를 폐지할 경우 국민들 호주머니를 털어 방송 시장의 파이를 키우면서 정작 KBS의 공공성 강화라는 당초 취지는 사라지게 된다는 이야기다. 결국 최대 수혜자는 MBC와 SBS가 될 것이고 종편과 PP, SO들이 여기서 떨어진 떡고물을 나눠 갖게 된다. 최근 방통위 안팎의 논의를 지켜보면 수신료 인상이 목적이 아니라 KBS2 광고 폐지를 위한 명분이 더욱 절실한 것처럼 보인다.

KBS 수신료 인상 논의는 이번이 네 번째다. 정연주 전 사장 시절인 2003년에는 경영 합리화를 전제로 내걸고 이사회 차원에서 잠정적으로 보류됐고 2007년에는 4000원으로 인상하는 방안이 방송위원회 가결을 받아 국회 상임위원회까지 올라갔다가 한나라당의 반대에 부딪혀 좌절된 바 있다. 2010년에는 3500원으로 인상하는 방안이 상당 부분 여야 합의를 이뤘으나 본회의 상정을 앞두고 도청 의혹 사건이 터져 민주당의 반발로 무산되기도 했다.

신건식 BS투자증권 연구원은 “과거 수신료 인상 논의 과정을 보면 정권에 따라 반대와 찬성 입장이 극명하게 달라진다”면서 “어떤 정당이든 정권을 잡게 되면 KBS 수신료 인상을 요구하지만 야당이 되면 KBS의 공정성과 방만한 운영을 이유로 반대 입장을 취해왔다”고 지적했다. 신 연구원은 “국회가 KBS의 수신료 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소 당리당략에 근거한다고 볼 수 있으며 이것이 수신료 인상의 실질적인 걸림돌이라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광고를 없애서 공영성을 높이겠다? 지금 KBS 보도 태도를 볼 때 누가 그걸 믿겠느냐”고 반문했다. 최 교수는 “유료방송 시장의 파이를 키워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떨어지는 게 결국 MBC와 SBS에게 돌아가고 남은 광고를 종편이 노릴 거고, 결과적으로 광고시장 의존도가 더욱 높아져 상업화가 심해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요즘 KBS 보도를 보면 월 2500원도 아깝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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