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등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문제가 1년 째 대한민국 사회를 흔들고 있다. 검찰의 수사 끝에 공은 법원으로 넘어갔다지만 이번엔 검찰 스스로가 공신력을 깎아먹었다. 최근 벌어진 국정원 수사팀장 윤석열 여주지청장에 대한 검찰의 징계는 그 백미다. ‘재판만 보고 있을 상황이 아니’라고 야권이 한 목소리를 내는 이유다.

이 점은 보수 성향의 언론도 잘 알고 있다. 조선일보는 12일 <윤석열 항명 징계, ‘절차 위반’과 ‘수사 의욕’ 다 살펴야> 사설에서 “윤 지청장 등이 조(영곤 서울)지검장 지시를 무시하거나 정식 보고와 승인 절차를 밟지 않은 것은 잘못”이라면서도 “윤 지청장은 (중략) 절차는 어겼지만 본뜻은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데 있었다는 말”이라고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이런 상황에서 수사팀만 중징계하면 윤 지청장의 ‘수사 의욕’과 ‘절차 위반’ 가운데 절차 위반만 문제 삼는 것으로 비치게 된다”며 “국정원 사건 진실 규명을 유야무야하려 한다는 오해를 받기 쉽고 검찰 사기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중앙일보 권석천 논설위원의 생각도 같다. 권 위원은 13일 <“줄 똑바로 서라”는 윤석열 징계> 칼럼에서 “윤 전 팀장이 절차와 규정을 위반한 건 부인하기 힘든 사실”이라면서도 “다만 그 책임을 물으려면 더욱 철저히 절차적 정의를 따라야 했다”고 지적했다. 권 위원은 “이번 징계 청구는 검사들의 복무지침이 될 가능성이 크다”며 “‘줄 잘못 섰다가 다칠 수 있으니 줄 똑바로 서라’는”이라고 밝혔다.

보수 언론도 인정할 만큼 수사의 공정성이 흔들리는 상황이니, 특검 요구에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이다. 여기에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수사 과정에서 문재인 민주당 전 대선후보는 즉각 소환조사하면서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에 대해서는 서면조사만 끝내려 했던 검찰이니, 민주당도 이 상황을 ‘하수상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 12일 열린 국정원과 군 등 국가기관의 선거개입 진상규명과 민주헌정질서 회복을 위한 각계연석회의에서 김한길 민주당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민주당
 
김한길 민주당 대표는 12일 국정원과 군 등 국가기관의 선거개입 진상규명과 민주헌정질서 회복을 위한 각계연석회의 인사말을 통해 “이게 전부인가 하면 전부가 아니고, 이게 끝인가 하면 끝이 아니었다. 지난 열한 달은 경악과 분노를 계속 자아낸 세월”이라며 “기소를 실행했던 수사팀장과 검찰총장을 찍어내고, 공소사실을 스스로 부인하는 검찰 지휘부가 공소유지를 담당하는 어처구니없는 이 상황을 국민들은 납득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검찰의 신뢰 문제를 제기했던 언론들은 야권의 특검을 위한 공동 행동에 대해서는 또 비판을 가하고 있다. 장외투쟁이냐 원내투쟁이냐의 문제는 판단에 따라 다르다 해도 “검찰이 오해를 받기 쉽다”며 비판하던 언론이 이번에는 ‘수사와 재판을 믿으라’고 한다는 것이 문제다.

   
▲ 조선일보 11월 13일자. 사설.
 
조선일보는 연석회의 출범 다음날인 13일 <또 유사 정치단체에 ‘정치 청부’ 시킬 건가> 사설에서 “(장외투쟁으로) 야당이 얻은 건 ‘선거 불복’ 비판과 국민의 외면 밖에 없다”면서 “국정원 댓글 사건은 검찰 수사가 대부분 마무리돼 국정원장을 비롯해 지난 정권의 지휘부가 재판을 받고 있다”며 “만약 수사와 판결로 진상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으면 국민이 먼저 특검이라도 하자고 나설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앙일보는 ‘민생’을 꺼내 민주당을 비판했다. 중앙일보는 13일 <‘선진화법 위헌론’ 자초한 민주당의 국회 보이콧> 사설에서 “그들의 정치적 선택을 위해 국회 일정이 시도 때도 없이 희생되는 건 더 이상 참기 어렵다”며 “민주당의 습관화된 국회 보이콧을 보면서 새누리당이 ‘국회 선진화법 위헌론’을 제기한 건 일면 이해가 간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국정원 문제에 대한 민주당의 문제제기를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무시하는 상황에서 이 문제에 대해서는 원내에서 야권이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민주당이 사건 초기부터 제시했던 ‘국정원 개혁특위’는 박근혜 대통령의 ‘셀프개혁’ 언급 이후 제대로 국회에서 논의조차 못했다.

하지만 김한길 대표는 13일 최고위원회 모두발언에서 “우리는 지난 3일 동안 인사청문회를 제외한 의사일정에 참여하지 않았다”며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국정과 국회를 아무리 제멋대로 주무른들, 민주주의를 우롱하고 검찰을 백주에 풍비박산낸들, 소수당인 민주당이 결국 맥없이 끌려올 수밖에 없다는 오만과 독선에 대해 제1야당으로서 경고음을 발한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현 정국을 풀 수 있는 유일한 열쇠라는 것은 보수언론도 직감하고 있는 것 같다. 조선일보는 ‘특검연대’를 비판한 이날 사설에서 “여당도 타협안을 내놓아 야당이 움직일 명분을 줘야 한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러나 이들 언론들은 문제점을 알고도 주로 야당에만 압박을 가하고 있다. 자가당착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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