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유신시대를 상징하는 ‘제2 새마을운동’을 제안하는가 하면 최근 정부가 박정희 정권 때 강제로 시행했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재추진하는 등 일련의 움직임에 대해 한국사 원로 교수들이 “유신시대로 역사가 후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서중석 전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는 12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대표적으로 유신 통치는 중정(중앙정보부)에 의한 통치인데 중정의 후신인 국정원은 지난 대선에서 선거개입 행위가 명백히 드러났음에도 이를 개혁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정원을 강화하려고 하는 것 같다”며 “역사가 과거로 역행하면서 유신의 망령들이 어른거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서 전 교수는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등 유신헌법을 만드는 데 참여하고 유신시대에 주요하게 참여했던 사람들이 정부 요직에 들어가 있다”면서 “국사편찬위원장이나 한국학중앙연구원장까지도 비판을 받아가며 정권의 말을 잘 듣는 사람을 임명하는 등의 일이 한국사 국정교과서를 밀어붙이는 문제와 맞물려 심상치 않다”고 우려를 표했다.

서 전 교수는 이처럼 박정희 정부를 연상시키는 박근혜 정부의 일련의 흐름에 대해 “기득권 세력들과 반공 이데올로기를 앞세운 세력들이 권력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기 위한 의도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다”며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도 보수집단의 이해관계와 맞물려 있고, 이들이 누리는 기득권을 강화하는 정치적 포석을 깔기 위한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강만길 전 고려대 교수와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 등 원로 한국사학자 16명은 1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역사교육에 대한 권력과 정치의 개입을 개탄한다”고 밝혔다. 사진=강성원 기자
 
안병욱 전 가톨릭대학교 국사학과 교수(전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장)도 ‘기춘대원군’이라고까지 불리는 비서실장을 포함해 유신정권 하의 공안과 군 출신 인사들이 정부 곳곳에 진출해 있는 상황에 대해 “박근혜 정부의 인사 과정에서 나온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유신체제를 만든 수족이 돼 그것을 실무적으로 작업했던 이들로, 대통령에게 익숙하고 유신 때 말을 잘 들었던 사람을 뽑아 그들만의 정부 구성과 그들만을 위한 정치를 하고 있다”며 비판했다.

안 전 교수는 이어 “감사원장과 검찰총장, 심지어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을 수사하는 실무 책임자까지도 이런 일련의 체계에서 벗어나니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쫓아내고, 5000만 국민 가운데 뼛속까지 자기들과 동화될 수 있는 사람들로 정권 핵심부를 구성했다”고 덧붙였다.

안 전 교수는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여당의 역사왜곡과 관련해서도 “박 대통령은 선거 과정에서도 유신시대에 대한 후세대의 부정적인 평가에 한 번도 수긍해본 적이 없고, 대표적으로 유신시대 최악의 인권탄압 사건인 인혁당 사형에 대해서도 ‘두 개의 판결이 있다’고 했다가 궁지에 몰리자 마지못해 사과했지만 진정성은 없었다”면서 “친박의 좌장인 김무성 의원의 근현대사 역사교실은 제대로 된 전문가도 없는 정치적 선전·선동으로, 유신과 전두환 시대의 관제동원 캠페인, 관제 군중집회와 비슷한 성격”이라고 비난했다.

조광 고려대 한국사학과 명예교수는 “과거 유신정치에 참여했던 사람이 오늘날 정치하지 말란 법은 없지만 그러나 유신 자체가 폭력적 조처였다는 것을 정부에서 선언했고 박근혜 대통령도 인정한 이상, 유신시대에 대한 통절한 반성이 전제해야 한다”며 “이런 반성 없이 유신을 미화하거나 유신으로 회귀하려는 시도는 큰 국민적 저항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조 교수는 또 보수·뉴라이트 학자들이 주도하고 있는 역사전쟁과 관련해선 “그들이 일방적으로 전쟁이라고 떠드는 거지 역사학계는 전혀 전쟁으로 생각을 안 한다”며 “전쟁은 이로운 목적을 위해 일으키는데 그들의 목적은 결코 이로운 것이 아니므로 그건 전쟁이 아닌 일방적인 폭력이고, 이것이 너무 지나쳐 제동을 거는 것일 뿐”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날 강만길 전 고려대 교수와 이만열 전 숙명여대 교수(전 국사편찬위원장) 등 원로 한국사학자 16명은 1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친일·독재 미화 교과서 사태에서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정부·여당과 보수언론, 뉴라이트 집단이 사태의 본질을 호도하면서 펼치는 이념공세”라며 “한국사 교육에 대한 정부의 간섭과 통제는 위험스러운 전체주의적 통제를 위한 전초 작업이고, 국정교과서를 통해 정권의 입맛에 맞는 한 가지 역사 해석만을 획일적으로 주입하겠다는 것은 시대착오적 망발”이라고 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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