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인 주진우 기자의 ‘박근혜 대통령 5촌 살인사건’ 기사에 대한 재판, 안도현 시인의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의 공통점은 국민참여재판이 이루어졌다는 것이고 권고사항인 배심원 판결이 무죄로 기울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국민참여재판에 대해 ‘비 전문가들의 감성적 평결’이라고 일부 언론들이 공세에 나섰다는 점도 같다.

7일 안도현 시인에 대해 전주지법 형사2부는 배심원들의 만장일치 무죄 평결을 뒤집고 일부 유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에 대해 “법관의 직업적 양심”이라며 “법률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으로 구성된 배심원이 법리적 관점에서 유무죄를 판단하기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는 국민참여재판의 의미를 부정하는 발언이다.

이에 8일 일부 조간은 재판부의 선택을 옹호했다. 조선일보는 35면 <국민참여재판도 재판부가 중심 잡아야> 사설에서 “국민참여재판은 재판에 국민의 상식적 판단을 반영해 사법의 민주적 정당성과 신뢰성을 높인다는 취지로 도입했다”며 “그러나 최근 배심원들의 정치 성향이나 법정 분위기에 따라 여론 재판이나 감성 재판이 될 수도 있다는 부작용이 드러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중앙일보는 6면 <“안도현 죄는 되나 처벌 않는다”…법원 줄타기 판결> 기사에서 이번 재판부의 판결에 대해 “전문가인 법관의 판단에 분명히 유죄였기에 배심원 만장일치 평결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는 의미”라며 법조계 관계자들의 말을 빌려 “배심원과 반대로 유죄 판단을 했다면 양형 역시 배심원 의견을 반영할게 아니라 법이 정한 기준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죄가 확실한데 선고유예를 결정한 재판부의 판결을 지적한 것이다.

   
▲ 중앙일보 10월 25일자. 10면.
 
배심원의 무죄 평결에 따라 무죄가 선고된 주진우 기자 재판 이후 중앙일보 등은 국민참여재판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중앙일보는 지난달 25일 <“나꼼수 무죄, 법리·팩트보다 감성 평결”>제하 기사에서 “이번 판결을 두고 법리·팩트보다 배심원의 ‘감성적’ 판단에 재판부가 휘둘린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며 “이는 국민참여재판의 고질적 문제점으로 지적돼 왔다”고 했다.

특히 주진우·안도현 사건을 ‘정치적 사건’으로 규정한 중앙일보는, 안도현 시인에 대한 배심원들의 전원일치 무죄평결이 내려진 다음날인 지난달 30일 <“또 감성 평결 논란 땐…참여재판 불신 커질 것 같았다”>제하 기사에서 “법리와 팩트보다 감정에 휘둘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국민참여재판에 붙이는 사건 종류를 제한해야 한다는 지적이 법조계에서 나온다”며 “정치적 사건의 경우 이런 위험이 더 커진다”고 했다.

중앙일보의 이 같은 주장은 ‘형사재판에 일반 국민의 건전한 상식과 평균적인 정의감을 반영할 수 있는 절차를 도입하기 위하여’ 마련된 국민참여재판의 취지에 역행한다. 배심원단을 “감정에 휘둘린다”고 평가절하하고 이번 사건을 ‘정치적 사건’으로 규정하면서 지역감정(안도현 시인 배심원이 호남 출신이라는)을 부추긴다는 비판도 나온다.

중앙일보의 이 같은 주장은 불과 1년여 전 중앙일보의 탐사보도를 통해서도 반박할 수 있다. 중앙일보는 지난해 9월 5일부터 7일까지 국민참여재판에 관한 탐사보도를 냈는데 당시 국민참여재판 제도가 도입된 이후 5년 동안 이루어진 546건의 국민참여재판 사건 판결문을 분석해 다양한 관점의 보도를 했다.

이 보도에 따르면 배심원들은 음주 범행에 대한 참작이나 성폭력 사건, 비윤리적 사건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재판부에 비해 가벼운 형을 선택하는 경향이 나온다.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명확한’ 증거가 없을 경우 유죄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지난해 9월 6일자 <무죄율, 배심원 참여 재판이 두 배 높아>제하 기사에서도 나온다.

당시 중앙일보 탐사팀은 그림자 평결에 배심원으로 직접 참여도 해봤는데(2012년 9월 6일 4면 <칼 들었다고 다 살인 미수인가…기사는 무죄를 택했다>) 참석한 기자는 “결국 ‘범죄 사실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되지 않으면 무죄로 추정해야 한다’는 형사재판의 원칙에 따라 살인 미수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택하게 됐다”고 밝혔다.

   
▲ 중앙일보 2012년 9월 10일자. 33면.
 
이 보도의 결론 격인 9월 10일자, 탐사팀 박민제 기자의 <건전한 상식의 배심원, 믿지 못할 이유 없다> 제하의 ‘취재일기’ 칼럼에서 박 기자는 “‘건전한 상식을 지닌 배심원’의 판단에 대한 우려는 기우였다는 게 참여재판 경험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라며 “지난 4~5월 참여재판을 담당했던 80명의 법관 설문조사에서 92.3%가 배심원 평결에 동의했다고 응답했다”고 밝혔다.

박 기자는 “본지 분석결과에서도 배심원 판단의 신뢰성은 매우 높았다”며 “유무죄 판단에 있어서도 배심원과 법관의 판단이 달랐던 경우는 9.3%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이어 “전문법관에 의한 재판과 배심원이 참여한 재판 중 어느 쪽 결론이 더 옳을지를 딱 잘라 말하는 건 아직 쉽지 않은 일”이라면서도 “하지만 최소한 배심원 판단을 못 믿겠다는 시각은 틀렸다고 본다”고 말했다.

최근 주진우·안도현의 국민참여재판에 대해 ‘감성 평결’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중앙일보의 기자가 바로 위의 글을 썼던 박민제 기자다. 불과 1년 만에 분석을 통해 “배심원 판단의 신뢰성이 높다”고 하다가 “감성 평결”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정말 배심원이 ‘감성 평결’을 했다는 증거를 확보했기 때문인지, 배심원 평결에 대한 기자의 ‘감성 평결’이 아닌지 의아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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