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국내 3대 종단(불교·기독교·천주교) 가운데 천주교 지도자 대표단과만 회동을 하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최근 성사됐던 회동일정 마저도 막판에 청와대 측에서 일방 취소하는 등 천주교에 대해 유독 거리를 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무엇보다 성직자(신부들) 뿐 아니라 평신도까지 밀양송전탑 공사 강행 반대와 쌍용차 문제 해결, 국정원 대선개입 대통령 책임 표명 및 책임자처벌 시국선언 등 우리사회의 사회적 갈등 문제의 해결에 앞장서고 있는 대표적 종단이 천주교이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 때문에 천주교라는 특정종교에 대한 홀대나 차별의 문제가 아니라 비판과 쓴소리하는 국민 전체와 대화할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사고 있다.

1일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의장 강우일 제주교구장) 소속 신부들에 따르면, 청와대와 주교회의 실무진은 지난달 18일 박근혜 대통령과 주교회의 상임위원회 위원들과 정의평화위원장, 민족화해위원장 등 7명이 오찬 면담을 진행하기로 결정했으나 의제조율 과정에서 만남 한 달 가량을 남기고 청와대에서 돌연 일정을 취소했다. 청와대는 그 사유를 “긴급한 대통령 일정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주교회의 측의 한 신부는 1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박 대통령과 3대 종단 지도자와 만남은 청와대서 원했던 것으로, 기독교와 불교는 이미 (지난 7월에) 이뤄졌으며, 우리 쪽에 요청이 온 것은 지난 6월 말 쯤이었던 것 같은데, 주교단 20여 명이 전부 만나게 될 경우 소개만 하다 끝날 것으로 생각돼 의장과 상임위원 위원, 민족화해위원장, 정의평화위원장 등 7명이 대통령과 만나서 ‘필요한 얘기만 하고 나오자’고 판단해 요청에 응했다”며 “필요한 얘기는 쌍용, 밀양과 국정원 문제에 대한 대통령의 답변과 해결을 논의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회동을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7월 19일 기독교 지도자들과 가진 오찬 장면. 사진=청와대
 
일정을 이 때로 잡은 것은 전국의 천주교 교구 책임자인 주교들이 한꺼번에 만나기가 쉽지 않아 추계 정기총회가 끝날 때쯤인 지난달 18일로 청와대 실무진과 조율을 거쳐 정해졌다.

이 신부는 “그러던 중 지난 9월 중순 쯤엔가 회동 한 달 가량 밖에 남기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청와대에서 ‘도저히 대통령 일정상 힘들다, 경제사절단이 오니 너무 바쁘다’고 통보해왔다”며 “이 같은 통보를 받은 뒤 주교들이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았으나 주교회의 일부 내부에서는 청와대가 ‘의전상 엄청난 결례를 범한 것’이라는 비판이 나왔다”고 지적했다. 주교 한 명과 만나는 일도 쉽지 않은데, 아무리 대통령이라도 자신들이 원해서 정한 만남에다 이미 날짜까지 잡힌 일정을 어떻게 이리 쉽게 취소할 수 있느냐는 지적이었다고 이 신부는 전했다.

일정탓을 돌린 것에 대해 이 신부는 “일정상의 문제였다면 참모들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며, 그게 아니라면 박 대통령이 현안에 대해 답변할 내용이 없었던 것이 아니겠느냐”고 지적했다.

일정과 관련해 실제로 지난달 18일 대통령 일정을 보면, 오찬 일정 자체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박 대통령이 소화할 일정 4건이 있으나 모두 아침 또는 오전(유라시아시대의 국제협력 컨퍼런스 개회식-9시, ‘제프리 카젠버그’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CEO 접견-10시)이 아니면 늦은 오후(2013 전국우수시장 박람회-오후 4시, 제94회 전국체육대회 개회식-6시) 등이었지만 점심 시간은 여유롭게 비어있었다. 이 때문에 ‘대통령 일정 때문에 무산됐다’는 것은 구실이 아니었느냐는 의문이 나온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7월 25일 불교 지도자들과 오찬을 열었던 장면. 사진=청와대
 
이와 관련해 주교회의 대표단 측 실무진은 면담 준비과정에서 대통령과 주교대표단의 대화 의제를 밀양 송전탑, 쌍용차 문제, 국정원 댓글사건 해결 등으로 하자고 청와대 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신부는 “애초 우리는 당시 하기로 했던 오찬을 밥먹고 박수치는 자리를 원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의장단이 면담한다는 것은 현안 논의를 하겠다는 것”이라며 “이 때문에 청와대 실무진과 면담 의제 조율 과정에서 우리가 밀양, 쌍용 국정원 내용을 대화하겠다고 충분히 전달했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 스스로 자신에 불편한 문제 해결 촉구를 하고 있는 천주교의 지도자와 만남 자체를 꺼리는 것 아니겠느냐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이 신부는 “종단 중에서는 천주교가 가장 이런 쓴소리를 하고 있는 입장이니 박 대통령이 편하지는 않을 것이나 마음 속에 들어가지 않았으니 알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 신부는 이번 대화 무산 건을 두고 “단지 특정 종교와 거리두는 것을 넘어 소통의 불통 현상이 단적으로 드러난 것”이라며 “자기식대로 생각하고, 밀고나가려는 하며, 여론이 있어도 무시하려는 것으로 판단이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렇게 대화할 의지가 없다면, 천주교의 요구를 떠나 대통령이 비판적 얘기를 수용한 준비가 안돼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국민 전체에 대해 대하는 방식이 견제받지 않으려 하거나 비판을 수용하지 않으려는 태도는 건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신부는 “이런 식으로 가게 되면 전체 국민들에 대한 태도도 아니고, 우리와의 관계도 꼬이게 될 것”이라며 “우리가 그래도 한쪽의 이념적 잣대가 편향되거나 특정집단을 대변하는 것도 아니고, 종교인으로서 대의와 대승적 자세로 대통령이 결단을 통해 갈등을 조정하도록 하려는 것이었는데, 마치 자신을 비난하고 공격한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닌가 한다. 그렇다면 너무 자기방어적”이라고 진단했다.

   
지난 9월 23일 열린 천주교 주최 시국기도회. 사진=조윤호 기자
 
이와 관련해 주교회의 의장을 맡고 있는 강우일 제주교구장은 “날짜가 잡혔다가 청와대가 취소해서 더 이상 말씀드릴 것이 없다”고 강 교구장의 비서가 전했다.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장인 이용훈 수원교구장의 비서실장을 맡고 있는 유승우 요셉 신부는 31일 “청와대가 주교회의 쪽에 연락해 제안했던 일정”이라며 무산시킨 이유에 대해 “청와대가 시기적으로 불편했을 것이란 생각은 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천주교 담당을 하고 있는 마영주 청와대 관광진흥비서관실 행정관은 1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일정이 무산된 것은 대통령 일정 때문”이라며 “현재 순방 일정 중이니 아직 일정이 잡힌 것은 없으나 박 대통령이 다녀와서 일정을 다시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회동 주제로 쌍용·밀양·국정원 문제를 제안하자 청와대가 회동 자체를 무산시킨 것 아니냐는 의심에 대해 마 행정관은 “의제 조율한 것은 없었으며, 대화가 성사되면 주교단이 하고 싶은 말씀을 다할 수 있다”며 “목사들이나 스님처럼 박 대통령과 편안히 말씀을 나누고, 청해 듣는게 소통이다. 의제 때문에 무산 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지난 3월 28일 오후 제주해군기지(민군복합형 관광미항) 공사장 부근 강정천에서 강정마을의 평화를 기원하는 미사가 봉행되고 있다. 이날 미사는 천주교 제주교구 강우일 주교가 집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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