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의 선거개입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보훈처가 어린이·청소년들을 대상으로도 특정 정치세력을 폄하하는 내용의 강연 자료를 발간하고 이를 활용해 교육을 시행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보훈처는 해당 강연 자료집에서 재외국민투표 선거에 개입하는 내용까지 수록했다.

민주당 박홍근 의원이 24일 배포한 자료에 따르면 국가보훈처 산하 보훈교육연구원은 ‘호국과 보훈’이란 제목의 자료집을 통해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좌익적 정부”라고 묘사했다. 해당 자료집 66쪽에는 “한국에 좌익적 정부가 존재했던 1990년대 중반 이후, 국가안보를 강조하는 각종 구호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국가안보는 의심스러운 상황에 놓여 있었다”고 되어 있다.

또한 햇볕정책을 ‘친북적’이며 ‘굴종적’이라고 표현했다. 자료집 15쪽에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대북 굴종 유화 정책에서 벗어났다는 사실 때문에 북한이 대한민국을 더욱 적대적으로 대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지만 북한은 대한민국이 존재하고 있다는 그 사실 자체를 언제라도 문제라고 생각해왔다”고 되어 있다.

이와 함께 자료집 18쪽에는 “대한민국의 야당 정치인들과 좌파 및 종북주의자들은 북한의 도발을 현 정부가 지난 정부의 대북 정책을 따르지 않은 결과라고 주장하지만 북한은 지난 10년 김대중, 노무현 정권 시대에도 대남 도발을 멈추지 않았다”고 나와 있기도 하다.

아울러 같은 쪽에서 “북한은 햇볕정책으로 손이 묶인 한국 해군을 마음껏 유린, 참수리호를 무참하게 격침 시키고 우리 해군 병사 6명을 살해했다”며 “김대중 대통령 시절 북한은 마음 놓고 핵무기를 개발, 결국 김대중 대통령 임기 마지막 무렵인 2002년 10월 17일 제2차 핵 위기가 시작되게 했으며, 이 위기는 햇볕정책을 계승했을 뿐 아니라 더욱 발전시킨 노무현 대통령 재임기간 내내 지속되었다”고 기재했다.

2012년 대선에 개입하려는 정황도 포착됐다. 자료집 31쪽에 나온 “2012년 강성대국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한국 내 혁명의 교두보가 확보되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친북정권을 창출’인 것”이라는 대목이다. 자료집은 “북한은 2012년 총선과 대선 등 권력 재편기에 편승하여 친북정권의 창출공작에 매진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친북정권’을 특정하진 않았지만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햇볕정책’을 친북정책이라고 지속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2012년 강성대국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한국 내 혁명의 교두보가 확보되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친북정권을 창출’인 것이다. 2012년 남한에 혁명의 결정적 시기가 발생(좌익폭동 등)하면 남한민주혁명을 지원한다는 목적으로 남침하여 무력적화 혁명을 이룰 수 있으나, 이것이 용이치 않을 시 적화통일을 위한 과도단계인 남한 내 ‘친북정권’을 창출시켜 적화통일의 계기를 삼자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은 2012년 총선과 대선 등 권력 재편기에 편승하여 친북정권의 창출공작에 매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국가보훈처 자료집 ‘호국과 보훈’ 31쪽 中)
 
자료집 41쪽에서도 “북한은 대화공세를 통해 대남, 대외, 대내적 효과를 노릴 것”이라며 “대남측면에서는 우리 사회에서 평화세력으로 위장한 친북 햇볕론자들을 부추겨 ‘무조건 대화에 응하라’고 정부를 압박하여 정권기반을 무력화하고 남남갈등을 유발하여 우리 사회의 교란을 증폭시키려는 것”이라고 나와 있다.

또한 자료집 36쪽에는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대목은 투표권을 가진 재외동포 중 우파성향을 가진 교포들은 생업종사에 바빠 먼 거리에 있는 한국대사관이나 영사관까지 와서 투표하려는 의지가 약한 반면, 그동안 북한의 관리 하에 잘 조직화되어 있는 친북반한성향의 교포들은 북한 공작지령에 따라 친북단체별로 이동수단을 확보하여 선거참여를 독려하여 똘똘 뭉쳐 특정 친북후보를 지지할 것”이라며 “김대중 후보와 노무현 후보가 각각 39만 표와 57만 표 차이로 대통령에 당선된 사례에 비추어볼 때, 해외의 300만 표의 위력은 대단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대한 선거관리 측면이 아닌 대남 전략적 대비가 필요하다”고 되어 있다.

   
지난 8월 국가보훈처 창설 52주년 기념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박승춘 보훈처장
ⓒ국가보훈처
 
박홍근 의원에 따르면 해당 책자는 국가보훈처가 시행하는 나라사랑교육의 자료집으로 사용됐다. 박 의원 측은 “이 교육은 2012년부터 2013년 8월까지 교원 등 공무원 2,251명을 비롯해 초등학생 1만 632명, 중․고등학생 9,370명, 대학생 1,663명 등 총 2만 4,255명에게 시행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박홍근 의원은 “이는 대선 사상 최초로 지난 선거에서 처음 적용된 재외국민투표를 두고, 진보성향의 재외국민 유권자들을 친북성향이라고 낙인찍은 뒤 사실상 이들의 투표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어서 안보교육의 본질과는 무관한 노골적인 선거개입을 위한 선동으로 밖에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박 의원은 이어 “정부가 야당을 종북·좌익세력으로 매도하는 것도 모자라 노골적으로 선거에 개입하는 자료집을 배포해 학생들과 공무원을 대상으로 안보교육을 위장한 정치적 선동을 벌였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며 “철저한 진상 조사와 관련자 처벌은 물론, 정권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국가보훈처 최정식 홍보기획팀장은 “해당 자료는 보훈처에서 펴낸 표준교안이 아니라 강사들의 개인적 자료”라며 “각각의 필자들이 학자적 소양에서 외부 내용을 인용한 것이라 생각된다”고 말했다. 이어 “자세한 사항은 28일 보훈처 국감과 30일 종합질의 때 설명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최 팀장은 보훈처 예산을 통해 이루어진 강의가 아니냐는 질문에 “강의에 대한 예산집행 내용은 내부 확인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보훈처의 총괄적 책임에 대해 “산하기관이라고 해도 본부쪽에서 관리하거나, 조정해야 하는 측면은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나라사랑강사단의 지정에 대해 “어떻게 구성되는지 확인 중”이라며 “국감 때 답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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