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여를 끌어오던 한국의 차세대 전투기(FX) 사업에서 최종 입찰 대상자가 부결되는 사상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과 관련해 지나치게 미국에 의존적인 한국의 공군 무기 도입 운용 관행의 문제가 조명되고 있다.

국방부와 방위사업청이 지난달 24일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서 단독 후보로 오른 미국 보잉사의 F-15SE 기종을 부결시키면서 내놓은 이유는 △기종별 임무수행능력, 비용 등 분야별 평가결과를 바탕으로 안보상황 및 작전환경 등에 대해 깊이 있는 심의를 한 결과(방사청) △북한의 핵을 비롯한 비대칭 위협과 최근의 안보상황, 항공기술의 급속한 발전 추세 고려(김민석 국방부 대변인) △여러 여론과 국회의 의견(방사청) 등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요인은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돼온 문제였다. 이한호 전 공군참모총장은 25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F-15SE를 부결한 결정은 바람직하지만, 내놓은 설명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갑자기 그런 ‘상황’이 생긴 것도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 전 총장은 “문제는 갑작스레 8조3000억 원이라는 비용의 제한을 두면서 모순이 생긴 것”이라며 “예산에 너무 얽매여 결정 융통성 없던 것이 문제”라고 평가했다.

   
보잉사의 F-15SE
 
이희우 충남대 군수체계종합연구소장(예비역 공군 준장)은 “스텔스 도료(페인트)를 입힌 F-15의 스텔스 기능을 스텔스라 말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부결은 당연한 결정”이라며 “이 같은 사업을 수행하는데엔 ‘일정’, ‘비용’, ‘성능’이 가장 중요한데, 일정부터 무리하게 추진하다가 막판엔 예산문제에 갇혀 이 같은 문제를 낳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소장은 무엇보다 이 사업에 입찰한 업체의 기종이 갖는 한계 때문에 처음부터 리스크가 내포된 사업이었다고 분석했다. 록히드마틴의 F-35 기종은 개발중인 전투기이며, F-15SE의 경우 개발조차 되지 않은 기종이었던 반면 완성되거나 전력화한 것은 유로파이터의 타이푼 만이 유일했는데도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한 것 자체가 무리가 있었다고 이 소장은 지적했다.

이 같은 단독후보 F-15SE를 포함해 세 기종 모두 부결된 사태의 주요 원인으로 지나치게 미국산 일변도인 전투기 운용 및 전력 체계가 지적되고 있다.

   
록히드마틴사의 F-35 이미지
 
실제로 한국 공군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전투기 480여 기는 대부분 미국산이다. 주력 전투기인 F-15K(60기 보유)는 미국의 보잉사가 제작 판매한 것으로 지난 2005년~2012년까지 국내에 인도가 완료됐다. 또한 35기를 보유하고 있는 F-16와 134기를 보유중인 KF-16 기종은 미국의 록히드마틴사가 제작한 전투기이다. 오래된 기종인 F-4E(70기 안팎)는 미국의 맥도널 더글러스가 제작했으며, F-5E/F-5F(120기)와 KF-5E/KF-5F 65기는 Northrop사가 개발한 전투기이다.

공군조종사 출신의 군사평론가 김성전(예비역 공군중령)씨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예산 범위 내에서 한다고 기준을 바꾼 뒤에도 미국 것을 사줘야 한다는 전제가 있으니 무리하게 F-15를 강행했다가 공군예비역 총장들의 반발을 사는 등 여론의 뭇매를 맞고 이 같은 결정에 이르게 된 것”이라며 “한미동맹을 맹신하는 우리 군 풍토에서 유럽무기 도입 자체를 용인하려 하지 않았으며, 미국은 어떻게든 자국의 기종을 판매하려 하다 생긴 일 아니겠느냐”고 분석했다.

국회 국방위원인 진성준 민주당 의원도 “전투기 도입에 다양한 평가요소가 있는데도 우리 정부는 무조건 미국제 무기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라며 “한미가 연합작전 펴야 하기 때문에 상호운용성을 중시해 미국제 무기여야 한다는 것이 일종의 고정관념이며, 미국 외의 다른 나라 무기는 염두에 두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진 의원은 “우리 군은 모두 다 친미 인사들이며 한미동맹이 군의 신조처럼 박혀있으니 무기 선정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F-15SE가 부결된 배경에 미국 정부의 입장과 우리 군의 이해관계가 일치했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김성전 평론가는 “미국 측의 압력과 우리 정부의 입장이 맞아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며 “F-35는 미국에서 최소 697대가 판매되지 않으면 그 효과가 나오지 않는데, 한국 정부의 60대 구매가 큰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 평론가는 “미국 입장에서 이 정도 규모를 맞추려다 보면 우리 정부가 어떻게든 사줘야 한다”며 “하지만 아직 개발이 완료되지 않은 기종이라 비용이 얼마가 들지도 모른다”고 평가했다.

진성준 의원도 “F-35의 경우 개발도 안된 전투기인데다 가격도 특정되지 않은 기종이지만, 우리가 구매하지 않을 경우 미국 입장에서 전세계 판매량이 줄어드는 문제가 있다”며 “들리는 얘기로는 미국 정부가 막판에 강력한 판매의사를 전했다 하는데, 그 진상에 대해 이번 국정감사에서 조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유로파이터 한국홍보담당 관계자는 29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미국산 전투기만 보유하고 있으며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한국 공군 입장에서 미국산 무기 도입이 훨씬 유리한 것은 사실이지만 무기 도입의 목적이 단순히 소비하는 데에만 국한되지 않고, 차세대 한국형 전투기 개발을 위한 기술이전도 포함된 것이라면 더욱 따져봐야 한다”고 밝혔다.

   
유로파이터 타이푼
 
이 관계자는 “일본도 미국 전투기만 쓰지만, 지난 2011년 도입한 F-35 42기 가운데 4기만 미국에서 직접 들여오고, 38기는 모두 일본내에서 생산하는데, 미국이 이를 허용한 것”이라며 “우리도 이런 이점을 제공받는다면 미국산 전투기를 쓰는 것이 무방하나 미국업체가 이런 기술이전을 얼마나 제공할는지 알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분석에 대해 우리 정부는 무조건 미국제 비행기를 선호하는 것만은 아니라고 밝혔다. 백윤형 방위사업청 대변인은 지난 26일 저녁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기종을 평가하는 요소 가운데 ‘군 운용적합성’이라는 평가항목이 있는데, 우리 군의 기존 운용 체계와 새로운 체계가 어우러질 수 있느냐를 볼 때 미국제품이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는 있다”며 “실제로 현재 우리 공군무기에 미국 무기가 많이 들어와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백 대변인은 B-59의 경우 유럽 제품으로 한 때 도입한 적도 있다며 “무기시스템이 반드시 미국에 종속돼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백 대변인은 “미국산 기종이 기본적인 시스템과 운용체계 등과 어우러져 운용상 유리하다는 것일 뿐 선택의 문제는 아니다”라며 “현재 공군무기는 T-59 빼고 다 미국산으로 돼 있지만, 그렇다고 미국 것 밖에 살 수 없다는 주장은 지나친 비약”이라고 말했다.

F-15SE 기종의 최종 탈락을 두고 미국의 압력과 우리 정부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가 아니냐는 분석에 대해 백 대변인은 “너무나 심한 비약으로, 그러면 우리가 미국의 속국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며 “그러려면 처음부터 그냥 사오면 되지 뭐하러 입찰과 평가를 하느냐. 그것은 음모설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그는 “선정과정이 이런 식으로 브레이크가 걸리다 보니 그런 설이 나오는 것인데, 우린 정해진 틀에 따라 무기구입을 하고자 비용절감 등의 노력을 벌이다 여기가지 온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유로파이터 기종은 향후에도 배제될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 백 대변인은 “기술이전의 경우 3개 기종 다 같이 하겠다고 했다”며 “유로파이터측이 이것저것 다 해줄 것처럼 언론에 얘기했으나 그건 아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이 기종을 배제하거나 어디를 편애한 적도 없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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