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에 기반해 보도해야 할 언론이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내란음모죄 수사'관련 보도에서 증거부족은 물론이고 잘못된 사실까지 보도해 언론 보도행태가 이성을 잃었다는 지적이다. 증거없는 보도, 추측성 보도는 지금도 쏟아지고 있다.

채널A는 지난 28일 이석기 의원이 변장 후 도주했다고 단독 보도했다. 이 날 채널A <뉴스특보>에서 박민혁 채널A 기자는 "아침에 전해들었을 때는 이석기 의원이 압수수색을 하기 직전에 변장을 하고 집을 빠져나가는 모습이 일부 카메라에 포착이 됐다"면서 "영장이 발부가 안된건데 굳이 왜 피한건지. 실제 문제가 있어서 피한것 아니냐 이런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고 발언했다.

TV조선도 같은 날 "이석기 의원, 변장 후 택시 타고 도주"라는 속보를 내보냈다. TV조선은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변장을 하고 택시를 탄 채 도주한 사실이 확인됐다”는 청와대 관계자의 말을 인용했다. 이후 온라인에는 '이석기 변장 도주' '이석기 변장 도피' 라는 검색어가 인기검색어 순위에 오르기도 했다.

또 29일 동아일보는 조간신문에 '이석기 수도권 은신처에'라는 제목의 기사를 단독보도했다. 이 기사는 "수사당국은 내란음모 등의 혐의를 받고 잠적했던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소재를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면서 "현재 수도권에 소재한 나름의 은신처에 머물고 있다"는 공안당국 관계자 발언을 인용했다.

   
▲ 28일 채널A <뉴스특보> 화면
 

그러나 이 같은 보도와 달리 29일 오전 11시 이석기 의원은 국회에서 열린 통합진보당 최고위원회에 참석해, '이석기 변장 도주' '수도권 은신처' 등은 사실상 오보에 가까워보인다. 29일 최고위원회에 참석한 이석기 의원은 "도피는 무슨 도피, 오늘 온 사람이 무슨 도피입니까. 사실 아닙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번 사태의 본질에 벗어나는 '물타기' 기사도 보였다. 이석기 의원 자택의 ‘이민위천’ 액자 논란이 이에 해당한다. 문화일보는 29일 석간신문에서 "李 '이민위천' 액자는 北개정헌법 서문에 명시' 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이 기사는 국정원이 이 의원 자택에 걸린 '이민위천' 액자에 주목한다며 "북한 김일성의 좌우명이자 북한 개정 헌법에도 명시돼 있는 내용"이라고 전했다.

채널A도 28일 <뉴스특보>에서 이 액자를 소개했다. 이 날 방송에서 채널A는 패널로 참석한 전옥현 전 국정원 제1차장의 "북한헌법 서문에 나와있는 것을 자기의 좌우명으로 삼은 것 아니냐. 이 이야기는 대한민국의 헌법 질서를 부정하는 것이다"라는 발언을 여과없이 내보냈다.

그러나 '이민위천'은 '백성을 하늘같이 여긴다'는 뜻으로 중국 역사서 '사기'에 나오는 말로, 김대중 전 대통령과 강재섭 전 한나라당 대표도 사용했다. 지난 2009년에는 '이민위천'이라는 김 전 대통령의 휘호가 미술품 경매에 나와 950만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문화일보와 채널A는 이와 같은 내용은 보도하지 않았다.

또 ‘단독보도’ 경쟁이 가열되면서 기사가치를 의심케 하는 기사가 단독보도 되기도 했다. 채널A는 30일 오전 <아침뉴스>에서 ‘단독- “지금은 전시 상태” 이석기 의원, 北측과 사전 교감 있었다?’ 라는 리포트를 보도했다. 이 리포트는 “이석기 의원의 '전시상태' 규정에 북한 측과 사전 교감이 있지 않았겠느냐는 것이 국정원의 의심“이라고 전했는데, 사실상 새로운 정보는 없고 국정원의 의심만 있어 기사가치를 의심케 한다.

   
▲ 29일 문화일보 기사
 
과잉보도, 보도경쟁은 급기야 언론사간의 갈등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한국일보가 국정원으로부터 단독 입수한 '이석기 의원' 녹취록을 조선일보와 세계일보가 베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한국일보는 자신들이 실수로 기재한 오타까지 똑같이 썼다며 법적 조치를 논의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30일 조간신문에 “본지가 입수한 녹취록”이라고 썼다. (관련기사= <녹취록, 국정원은 흘리고 조선·세계는 베꼈다>)

이에 김창룡 인제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침착해야 할 언론이 오히려 흥분했다면서 신중한 보도를 해야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수사기관에서 몰아갈수록 언론이 중심을 잡고 사실관계를 확인해야 하는데, 언론이 가정법식 이야기를 하며 같이 흥분하고 있다”면서 “문제가 있다면 법치사회에서 법에 따라 처벌하면 되는데 언론이 왜 이렇게 흥분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념적으로 내란음모라는 무시무시한 죄명이 현역 국회의원에 의해 이루어진다면 양쪽에 의해 균형잡힌 보도가 이루어져야 한다”면서 “시간이 지나서 후회하지 않을 보도가 될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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