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측이 국정원의 심리전단 활동이 공직선거법과 국정원법을 위반했다는 검찰의 공소사실 대해 “국정원의 고유 업무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26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이범균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원 전 원장 공판에서 원 전 원장의 변호인은 “검찰이 겉으로만 보이는 피상적인 현상에만 집착해 국가안전보장이라는 국정원의 근본적인 업무 행위 목적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변호인은 국정원의 심리전단 활동을 판사와 의사의 행위에 비유하며 “조폭이 피해자를 목 졸라 죽이면 살인죄이지만 판사의 교수형은 범죄가 되지 않고, 조폭이 칼로 사람을 찌르면 상해죄가 되지만 의사가 수술을 위해 사람 배를 가르는 것은 상해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국정원은 판사와 의사로서 역할을 한 것인데 검찰은 국정원을 조폭과 동일시하는 중대한 우를 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지난 16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국가정보원 댓글사건 규명을 위한 국회 국정조사특위 청문회장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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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날 오전에 진행된 검찰 모두진술에서 박형철 부장검사는 “민주적 의사 형형에 필수적인 자유로운 사이버 토론 공간에서 국정원 직원이 일반 국민을 가장해 정치 선동과 여론 조작을 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반헌법적인 행태”라며 “소중한 안보 자원을 특정 정치세력을 공격하는 데 이용해 안보 역량의 저해를 초래했다”고 공소유지 이유를 밝혔다.

변호인은 검찰이 구체적인 범행 지시로 지목한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에 대해서는 “원 전 원장의 평소 생각을 정리한 것으로 직원들이 이 발언을 업무에 참고할 수 있으나 업무상 지시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며 “심리전단 직원의 사이버 활동이 원장의 지시에 의해 이뤄졌다는 것은 인과관계가 없어 검찰은 다른 구체적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종북 좌파’의 개념에 대해서도 변호인은 검찰과 견해를 달리했지만 일부 부적절한 발언이 있었음을 인정했다. 변호인은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 내용을 보면 종북 좌파 관련 국정원장의 부적절한 발언이 있었다”면서도 “원 전 원장이 언급한 종북 좌파는 북한의 주장을 추종하는 자와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하는 자생적 사회주의자를 지칭하는 것이지 단순히 반정부 세력과 정부에 비협조적인 세력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한겨레 8월 26일자 1면.
 
한편 이날 오전 본격적인 공판에 앞서 원 전 원장의 변호인은 26일 한겨레 1면에 국정원이 심리전단 직원들에게 ‘업무 매뉴얼’까지 작성해 교육했다는 기사가 실린 것에 대해 “본 재판이 있는 날 조간신문 톱기사에 이런 비밀이 유출된 것은 대단히 유감”이라며 재판부에 적정 조치 취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검찰 특별수사팀장을 맡은 윤석열 여수지청장은 “우리도 오늘 법정에서 해야 할 이야기가 미리 언론에 나온 것은 대단히 충격”이라며 “아침에 해당 기자를 통해 데스크에 강력히 항의했다”고 말했다.

이범균 부장판사는 “재판부도 기사를 보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생각해 제목만 보고 읽지 않았다”며 “가능한 이 법정에서 증거 외에 언론을 통해 다른 자료가 습득되지 않도록 쌍방은 오해의 소지가 있는 행동을 자제하고 검찰은 내부 단속에 신경 써 달라”고 주문했다.

이날 원 전 원장의 첫 공판을 참관한 박범계 민주당 의원은 미디어오늘 기자와 만나 “오늘 검찰의 모두진술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은 국정원이 외부 조력자를 동원해 월 300만 원씩 지급했다는 것과 심리전단 1개팀의 게시글이 1200~1600건에 달했다는 것, 원 전 원장이 사법부까지도 종북 세력이라고 발언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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