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광역시가 지난 광복절 경축식에서 체 게바라의 얼굴이 그려진 옷을 입고 공연한 시립 소년·소녀합창단의 이아무개(42) 지휘자에 대한 징계 방침을 철회했다. 하지만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는 점을 인정해 경고조치하기로 해 비난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마지못한 대응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광주시는 23일 오후 “지난 15일 제68주년 광복절 경축행사 축하공연 중 체 게바라 티셔츠 착용으로 행사 취지에 맞지 않다고 논란이 된 시립소년소녀합창단 지휘자를 징계위원회에 회부하지 않기로 했다”며 “체 게바라 티셔츠를 단순히 공연의상 일부로만 생각했고, 행사 준비기간이 짧아 의상 준비 시간이 부족했던 사실이 있었지만 특별한 의도는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광주시 문화관광정책실은 논란이 됐던 공연이 끝난 직후 강운태 광주시장의 지시에 따라 조사에 착수해 이 지휘자를 불러 경위서 등을 받고 지난 16일 징계위원회를 열기로 결정했다.

광복절 행사 당시 공연을 지켜본 전홍범 광주보훈청장이 자리에 함께 있던 강운태 광주시장에게 “광복절 기념행사의 취지와 맞지 않는 것 같다”며 이의를 제기하자 강 시장이 “진상을 자세히 파악해 문제가 있다면 관계자를 징계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라”고 지시하면서 징계 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 지난 16일 KBS 뉴스9 갈무리.
 
그러나 광주시는 이 지휘자에 대한 징계 논란이 촉발된 후 정치권과 시민사회 각계에서 광주시의 과잉 대응을 지적하는 여론이 확산되자 일주일 만에 징계 방침을 거둬들였다. 김상호 광주시문화관광정책실장과 예술단 총 단장인 오형국 부시장이 23일 이 같은 결과를 강 시장에게 최종 보고했다.

그러면서 광주시는 “다만 축하공연을 주관한 지휘자로서 사회적 논란이 될 수 있는 의상을 착용함에 있어 신중하게 결정해야 했음에도 주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점이 있었다”며 “예술단을 운영하면서 이념적 논란에 휘말리거나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지 않도록 시립소년소녀합창단 지휘자에게 각별한 주의를 촉구하는 등 경고조치를 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지난 19일 이 지휘자에 대한 광주시의 징계위원회 회부 중단을 촉구하는 성명을 냈던 전주연 광주시의원은 23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이런 일로 지휘자를 징계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됐는데 광주시의 징계 철회 결정은 잘 됐다기보다 당연한 결과”라며 “공연을 공연 그 자체로 바라보지 않고 정치적 관점으로 받아들이며 체 게바라 정신도 주의 촉구의 대상으로 보는 광주시장의 인식이 아쉽다”고 지적했다.

전 의원은 광주시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고 인정한 점에 대해서도 “언론에 나오면 모두 사회적 물의인지, 보훈청장의 마음에 안 들면 사회적 물의인 것인지 사실관계와 기준이 명확지 않다“면서 “광주시 차원에서는 어쨌든 징계하겠다고 뱉어놓은 말이 있기 때문에 그냥 물러설 수 없었을 것이고, 세계수영선수권대회 파문 이후 중앙정부의 눈치도 봤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에 대해 유종성 광주시 대변인은 미디어오늘과 전화통화에서 “보훈청장과 보훈단체 쪽에서 보는 시각이 적절치 못하다고 볼 수 있어, 그런 의견을 전혀 무시할 수는 없었다”며 “보훈단체 쪽에서는 이번 공연으로 성명까지 내려고 준비했는데 시에서 설득해 경고조치 수준으로 정리됐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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