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방송된 MBC <황금어장> ‘무릎팍도사’ 안철수(당시 KAIST 교수) 편에 대해 끝내 제재조치가 내려졌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방송심의규정 중 ‘객관성’ 조항을 적용했다. 야당 추천 위원들은 ‘심의 대상이 안 된다’고 반박했지만, 나머지 위원들은 제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22일 오후 전체회의를 열어 해당안건에 대해 ‘권고’ 조치를 의결했다. ‘권고’는 행정지도 수준의 징계로 재허가시 감점 요인에 해당하지 않는 ‘경징계’다. 방통심의위 위원들은 해당 방송이 방송심의규정 중 ‘객관성’ 조항을 위반했다고 해석했다. 3명의 야당 추천 위원들은 ‘심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며 ‘각하’ 의견을 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관련기사: <무릎팍도사 ‘안철수 거짓말’ 심의 적절성 논란>, <‘안철수 거짓말’ 4년 전 무릎팍도사, 진짜 징계한다고?>)

 
‘각하’ 의견을 낸 3명의 야당 추천 위원들은 방송에서 안철수 당시 교수가 거짓을 말했는지 분명하지 않고, 출연자의 ‘거짓말’에 대한 책임을 방송사에 물을 수 없다는 논리를 폈다. 연예·오락프로그램에서 출연자의 거짓말을 방송사가 책임질 수는 없다는 의견도 밝혔다. 심의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야당 위원들 “심의 대상 안 된다”…‘각하’ 의견
 
김택곤 위원은 “어디까지나 본인의 기억에 의존하는 것이고, (제작진은) 적어도 방송 당시에는 안철수씨 한 사람의 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김 위원은 또 “기억의 차이들이 있는데 고의적이었는지 무의식이었는지 확신할 수 없다”며 “다만 분명한 건 (안 의원의 발언 내용이) 큰 줄기는 맞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 2009년 방송된 MBC <황금어장> '무릎팍도사' 안철수 교수편.
 
 
김 위원은 또 “우리가 심의하는 건 안철수 의원이 아니고 그 프로그램에 대해 심의하는 것”이라며 “(거짓이 있다면) 정치인이 된 안철수 의원이 짐을 져야한다. 그러나 (책임을 묻는 게) 방통심의위의 몫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장낙인 위원도 “연예오락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이 한 발언 내용을 방송국에서 검증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라며 “책임을 묻는다면 그 당시 출연했던 안철수 교수, (지금은 정치인이 된) 안철수 의원한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장 위원은 또 “군대 간다는 얘길 가족에게 안 하고 갔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가족의 범위가 어디까지냐 하는 부분을 얘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입대 사실을 부인이 알고 있었다는 ‘증거’에도 불구하고 안 의원의 발언을 ‘거짓말’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박경신 위원은 “앞뒤 맥락을 살펴보면 군대 가는데 서로 위로의 말을 주고받거나 이런 걸 전혀 하지 못하고 나왔다는 취지”라며 “그런 뉘앙스의 차이까지 심의를 하는 것은 방통심의위를 진흙탕으로 끌어내리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위원은 “여자 연예인들이 방송에 나와서 성형수술을 했다, 안 했다, 이런 것도 제보가 들어오면 다 심의할 건가”라며 “이런 게 심의대상이 되는 건 방통심의위에 먹칠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심의위의 위상이 어떻게 될지 두렵다”고 언급한 것.  
 
권혁부, “후세들이 어떻게 배우겠나”…‘법정제재’ 의견
 
반면 나머지 6명의 정부·여당 추천 위원들은 제재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안철수 의원의 당시 발언이 거짓임이 분명히 드러났고, 방송에서 언급된 ‘거짓된 신화’가 확산돼 초중고 교과서에까지 실리게 된 점으로 보아 이에 합당한 제재조치가 필요하다는 논리였다. 연예오락프로그램에 ‘객관성’ 위반 조항을 적용한 사례가 있다는 점도 근거로 내세웠다.
 
권혁부 위원은 “안철수씨의 행적과 발언은 신화가 돼서 초중고 16종 교과서에 실려 있다”며 “이 점이 제가 보고자 하는 중대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권 위원은 “당시 안철수 교수의 발언이 사실과 다른 거짓이라면 심각한 ‘현재의 문제’”라고 재차 강조했다.

   
▲ 2011년 9월27일,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질의에 답변하고 있는 박만 방송통신심의위원장. 왼쪽은 권혁부 부위원장.
이치열 기자 truth710@
 
 
이어 권 위원은 ‘3대 거짓말’을 조목조목 언급하며 “신화로 만들기 위해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안 의원이 당시 방송에서 백신개발에 몰두했던 과정과 ‘선행을 감추는 겸양’(TV 인터뷰 거절), ‘도전정신’(창업 계기) 등을 ‘신화’로 만들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다.
 
권 위원은 “거짓말 교과서를 바로잡지 않으면 우리 후세들은 어떻게 되겠느냐”라며 “우리 심의를 통해서 명백한 거짓말이 우리사회에 악행을 준 부분은 정확히 결론을 내리는 것이 우리 방통심의위의 책무”라며 “명백하게 객관성을 위반한 프로그램”이라고 말했다. 
 
권 위원은 또 “(비슷한) 심의 사례가 여러 가지 있다”고 강조했다. 권 위원은 2006년 5월6일 방송된 MBC <일요일일요일밤에> ‘경제야 놀자’ 코너에서 당시 개그우먼 이영자씨가 ‘가짜반지’ 사연을 과장한 것에 대해 당시 방송위원회가 ‘시청자사과’를 의결한 사례 등을 언급했다. 권 위원은 이 같은 이유로 “최소한 법정제재 ‘주의’는 필요하다”고 말했다.
 
엄광석 위원은 “안철수라는 오늘날의 정치인이 있기까지, 또 그 신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이 프로가 중요한 기여를 했다고 보는 이유가 바로 교과서에 이 내용이 실렸다는 사실”이라며 “그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면 이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엄 위원은 “방송은 결코 그 결과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서도 “객관성 부분에서 연예오락 쪽이 시사교양프로그램보다는 다소 느슨하다는 것”과 “방송의 시기가 4년 전이라는 점”을 이유로 행정지도인 ‘권고’ 의견을 냈다.
 
박만 위원장은 “공인의 자신의 지나간 과거에 대해 거짓말을 했느냐 안 했느냐는 당연히 심의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또 “객관성은 모든 프로그램에서 지켜져야 한다”면서도 “다만 연예오락 장르에서는 보도교양프로그램보다는 조금 적용의 정도를 낮출 수는 있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객관성에 위배되는 항목은 ‘군대’와 ‘주식’ 문제 두 가지”라는 의견을 밝혔다. 그는 “KAIST 석좌교수로서 적절치 못한 행위였고, 따라서 방송사도 좀 더 확인을 했어야 한다는 점에서 법정제재가 마땅하다”면서도 “4년 전 방송이고, 인터뷰 형식이라는 점에서 (수위를 낮춰) ‘권고’ 의견을 내겠다”고 밝혔다.
 
박성희, 최찬묵, 구종상 위원도 ‘권고’ 의견에 동의하면서 결국 해당 안건에 대해서는 다수결에 따라 ‘권고’조치가 의결됐다. 의결 직후, 박만 위원장은 “시효 규정을 얼마로 제한할 건지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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