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광역시가 지난 광복절 경축식에서 체 게바라의 얼굴이 그려진 옷을 입고 공연한 시립 소년·소녀합창단 지휘자를 징계키로해 논란이 증폭되자 당사자인 이아무개(37) 지휘자가 ‘진짜 의도’를 해명했다.

이 지휘자는 16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우리 소년·소녀합창단은 행사를 빛내고자 하는 사명감으로 최선을 다해 공연했는데, 내용이 훌륭했음에도 티셔츠 하나 때문에 아이들의 열정이 짓밟혔다”며 “아이들과 광복절 행사에서 즐겁게 에너지를 발산한 것뿐인데 정치적 색을 입히고 마녀사냥으로 몰더라”고 심정을 밝혔다.

광주시립소년·소녀합창단은 지난 15일 빛고을시민문화회관에서 열린 광복절 기념행사에 태극기 퍼포먼스와 함께 ‘아리랑’과 ‘광주는 빛입니다’ 등을 합창하며 공연을 펼쳤다.

하지만 공연을 지켜본 전홍범 광주보훈청장이 자리에 함께 있던 강운태 광주시장에게 “광복절 기념행사의 취지와 맞지 않는 것 같다”며 이의를 제기하고 강 시장이 “진상을 자세히 파악해 문제가 있다면 관계자를 징계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라”고 지시하면서 논란이 촉발됐다.

   
▲ 16일 KBS 뉴스9 갈무리.
 
이 지휘자는 “공연에서 큰 주제인 광복과 어울리는 태극기 퍼포먼스와 함께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이념을 초월해 하나가 돼 세상을 향해 나아가자는 노래들이었다”며 “예술가로서 떳떳하지 못한 점이 없었으며 그동안 했던 무대 작업들이 희망에 대한 얘기였고 이번 공연도 마찬가지였는데 지금까지 우리가 해 왔던 모든 노력이 의미 없는 것처럼 돼 버렸다”고 토로했다.

그는 본의와 다르게 정치적 파장이 커진 점에 대해 “공식적인 광복절 행사였고 각계 기관장들이 많이 오다 보니 파장이 커진 것 같다”며 “어른들은 좌파, 우파를 논하지만 학업에 지친 아이들은 초월된 꿈의 세계를 이야기한 것뿐인데 일부 어른들이 공산주의로 몰아버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살을 생각할 만큼 학업 스트레스로 힘들어하고 심지어 심리치료를 받으면서 학원에서 도망쳐 합창단에서 열정을 불사르는 아이들이 이번 일을 계기로 자존감과 희망을 잃어버릴까 봐 가장 걱정”이라며 “광주시에서 징계한다면 나는 기꺼이 받아들이겠지만 열심히 한 노력이 티셔츠 한 장에 물거품이 됐다고 생각할 아이들의 마음을 수습하는 게 먼저”라고 덧붙였다.

이 지휘자와 공연 관계자들에 따르면 체 게바라 옷을 입은 것은 특정 의도가 없었으며 흰색의 한복과 태극기를 부각하려다 보니 안에 검은색 옷을 받쳐 입어야 했다. 하지만 의상을 새로 구입할 예산이 없어 지난 6월 공연 때 학부모들이 돈을 모아 사준 옷을 입었던 것.

   
▲ 조선일보 16일자 11면.
 
이에 따라 이번 광복절 행사를 준비했던 광주시 관계자들과 문화예술인, 정치권에서도 광주시의 징계 결정이 과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 광주시 관계자는 16일 미디어오늘과 전화통화에서 “당시 합창단이 부른 곡은 고은 시인이 광주에 헌시한 ‘광주는 빛입니다’라는 곡이었고 공연 내용도 대단히 의미 있고 좋았다”면서 “보훈청장이 이의를 제기한 후 일부 언론에서 꼬투리를 잡아 비난하는 걸 보면서 우리 사회 포용성이 아쉬웠다”고 말했다.

유방희 한국연예예술인협회 광주전남지회장은 “공교롭게도 경축사 공연 과정에서 의상 문제를 가지고 부정적 여론이 나오고 있는데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자라나는 어린이·청소년 합창단이 마음의 상처를 입을까 봐 우려스럽다”며 “아이들이 받을 수 있는 심리적 부담을 생각해서라도 지휘자에게 주의와 교육으로 조치해야지 징계까지 갈 만한 사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 강운태 광주시장. 사진=광주시
 
최유진 광주시 북구의원도 “전체적으로 체 게바라가 상징적인 의미는 있지만 이미 상업화가 많이 됐고 이질감이 없는 시대인데도, 더군다나 의도하지 않았던 부분까지 징계하겠다는 광주시의 현재 상황 대처는 부적절하다”면서 “보수언론과 단체가 이번 일을 색깔론으로 몰아가려는 공격적 의도가 다분하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는 “강운태 광주시장이 지난 세계수영선수권대회 파문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은 후 계속해서 저변이 좁아지고 여기저기 흔들리다 보니 지역의 경쟁자들과 비판 세력이 많아졌다”며 “강 시장이 외부기관의 압력에 너무 즉각적으로 대응하면서 부화뇌동해 이런 행보를 보인 것 같다”고 분석했다.

강운태 시장은 17일 미디어오늘과 전화통화에서 관련 지휘자 징계의 적절성에 대해 “이미 언론에 발표를 했고, 아마도 단장이 (광복절 행사임을) 별로 의식하지 못하고 했던 것”이라며 “어쨌든 잘못된 것이고 이에 대한 징계는 여러 사람의 견해를 종합해 징계위원회에서 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열심히 공연을 준비한 아이들이 받을 상처에 대해서 그는 답변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재차 통화를 시도하고 수행비서, 문자를 통해 같은 질의를 했지만 강 시장은 답변하지 않았다.

한편 몇몇 광주시의원들은 이번 사태의 당사자들을 만나 구체적인 정황을 살펴본 후 광주시의 부적절한 대처를 적극 문제 삼아 해결을 촉구하는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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