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가 8월12일자부터 정상 발행됐다. 새 편집국장 임명을 시작으로 정상화의 첫 걸음을 뗀 것이다. 지난 1일 한국일보에 재산보전 처분을 내렸던 법원은 8일 이계성 수석논설위원을 편집국장 직무대행에 지명했다. 편집국 기자들은 신임투표를 벌여 임명동의안을 가결시켰다. 
 
이 국장직대는 지난 5월29일에도 편집국장 직무대행에 임명됐던 바 있다. 당시 그는 ‘인사 정상화’ 문제를 놓고 장재구 회장과 노동조합 비상대책위원회 사이에서 ‘중재’를 시도했다. 그러나 장재구 회장이 이를 거부하면서 중재안 자체가 마련되지 못하자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6월10일자로 사퇴했다.
 
그는 12일 “역대 어느 편집국장보다도 그 부담이 크다”면서도 “중도를 통해서 중심을 향하는 그런 신문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번 ‘한국일보 사태’는 역설적으로 한국일보가 표방해왔던 ‘중도 정론지’의 가치가 새롭게 조명되는 계기가 됐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진영논리’가 팽배한 언론 풍토에서 “중도에 대한 갈구가 있다”는 게 확인됐다는 것.
 
그가 말하는 ‘중도 정론지’는 어떤 모습일까. 이 국장직대는 “물리적으로 중간을 취해서는 안 된다”며 “중용(中庸)에 가까운 중도, 그런 중도를 구현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누구는 이렇게 말하고 누구는 이렇게 말했지만 우리가 더 취재해본 결과 진실은 이쪽에 가깝더라.’ 거기까지 가려고 한다”는 설명이다. 이를 위해 그가 강조한 건 바로 ‘깊이’다. 
 
신문 발행이 정상화됐지만,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우선 이른바 ‘짝퉁신문’ 제작에 참여해왔던 국장 및 부장, 기자들의 인사 발령에 관심이 모아진다. 
 
미디어오늘은 ‘재탄생’을 다짐한 한국일보 편집국의 새 선장을 맡은 그를 12일 오후 한국일보 편집국장실에서 만났다. 인터뷰가 끝난 뒤, 이 국장직대는 “독자들도 도와주셨고, 각계가 도와줬지만 언론에서도 많이 도와줬다. 이 기회를 통해서 정말 감사드린다”는 인사를 전했다. 
 
 
-중요한 시기에 중책을 맡게 되어서 어깨가 무거울 것 같다. 우선 소감을 듣고 싶다.
“언론사(史)에 유례없는 한국일보의 갈등 속에서 국장이 돼서 책임이 무겁다. 무엇보다도 그 과정에서 어느 때보다도 중도지 한국일보의 가치에 대해서 엄청난 성원과 지지가 있었고 관심이 있었다. 역대 어느 편집국장보다도 그 부담이 크다.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 아득하다. 그런 성원과 기대에 실망을 드리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 법원이 가처분신청을 인용하면서 '편집국 폐쇄'조치가 해제된 지난 7월9일 오후 3시 10분경, 언론노조 한국일보 지부 조합원들이 24일여만에 편집국에 들어서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독자들의 지지와 성원에 부응하기 위해서 한국일보가 우선적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가 뭐라고 보나.
“그게 바로 중도의 가치라고 본다. 그동안 한국일보가 그런 이미지를 갖고 있었지만 조금 부족했다고 본다. 중도라는 것이 물리적으로 중간을 취해서는 안 된다. 중용(中庸)에 가까운 중도, 그런 중도를 구현하고 싶다. 그러기위해서는 깊이가 있어야 한다. 그걸 구현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고 인적·물적 투자가 필요한데 한계가 있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그걸 어떻게 뛰어넘느냐가 관건이라고 본다.”
 
-한국일보가 표방해왔던 ‘중도’에 대해 엇갈린 평가들도 있었다. ‘무색무취’하다는 평가가 대표적인데.
“중도의 또 다른 면이라고도 할 수 있다. 바로 그 부분을 ‘깊이’로 채우겠다는 거다. ‘누구는 이렇게 말했고 누구는 이렇다더라’ 하고 그냥 전달해서 어정쩡한 것이 아니라 ‘누구는 이렇게 말하고 누구는 이렇게 말했지만 우리가 더 취재해본 결과 진실은 이쪽에 가깝더라.’ 거기까지 가려고 한다. 지금 우리 언론풍토는 진영논리다. 일단 나는 이 진영이기 때문에 이 진영에서 하는 얘기를 지지하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논리를 개발한다는 것이다. 반대편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우리는 ‘양 진영의 논리를 충분히 듣되, 우리가 독자적으로 발로 뛰고 양식을 갖고 판단해 본 결과 이것이 더 진실에 가깝더라.’, 그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중도의 최종 목표라고 본다.”
 
-신문이 오늘자부터 정상 발행됐다. 
“오늘 아침 신문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은 매우 좋았다. ‘이건 소장본이다’,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걸 표구해서 걸어놓으려고 한다. 그러면서 늘 초심을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으려고 한다. 창간의 초심과 재탄생의 초심인데, 제2의 초심을 늘 되새기려고 한다.”
 
-어떤 의미에서 ‘재탄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선 그동안 우리 후배들 표현대로 ‘짝퉁 한국일보’가 발행됐는데, 거기서 정상 신문으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또 사시대로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그런 중도 정론지로서의 모습을 다짐하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지금까지 정론지로서는 부족했기 때문에 ‘무색무취’니 ‘물리적 중간’이니 하는 이런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인다. 그걸 넘어서는 ‘깊이가 있는 중도’, 중도를 통해서 중심을 향하는 그런 신문을 만들어보고 싶다.”
 
-편집국 완전 정상화까지는 갈 길이 멀다는 의견이 많다. 어떤 과제가 남아있다고 보나.
“기자들의 의지는 100% 충전됐다. 하나 걸림돌이 우리하고 다른 길을 갔던 아주 소수의 간부들과 기자들의 문제다. 저는 국장으로서 그 사람들까지 포용을 해야 할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기자들이 있고) 아직은 앙금이 상당히 남아있는데, 그걸 잘 추스르는 게 일차적 과제다. 그 사람들 얘길 들어보면 그 사람들 나름대로 논리와 근거가 있다. 그러니까 서로 일단 다름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소수다. 소수의 그 사람들을 우리가 포용을 못하면 우리가 어떻게 사회의 갈등을 향해서 포용하라거나 화합하라는 목소리를 낼 수 있나. 우리 스스로 실천하자고 외치고 있다.”
 
   
▲ 이계성 한국일보 편집국장 직무대행. ⓒ한국일보
 
-편집국장직을 맡으면서 개인적으로 다짐한 게 있을 것 같다. 
“84년3월에 입사했다. 내년 3월이 30주년이다. 내가 편집국장을 꼭 하겠다는 욕심이 없었다. 나보다 더 훌륭한 동료 선후배들이 많았다. 그런데 지난번에 보니까 중재할 사람이 나밖에 없다고 해서…. 내 앞에 온 이 잔을 나는 비켜가기를 원했지만, 꼭 해야 된다면 그걸 거부하는 것은 조직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도리가 아니라고 해서 받았다. 그때 물론 비대위원들하고 여러 가지 견해차가 있었지만 내 진심은 그거였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이번에도 특별히 자원을 하지는 않았다. 노조와 (‘짝퉁신문’ 제작에 참여했던) 그 부장들과 경영진에서 각각 후보를 추천했는데 법원에서 나를 선택 했다. 내가 평소에 늘 중도를 주장하고 적을 잘 안 만들고 너무 사람이 유하다고 비난을 받을 정도로 너무 사람이 그래서 이 상황에서는 제일 적합하지 않냐고 평가를 해준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좀 화를 내는 법을 배우려고 한다.(웃음)”
 
“기자들의 의지가 가득 충전되어 있다. 이 절호의 찬스를 놓치는 건 죄악이라고 본다. 한국사회에는 지금 중도에 대한 기대가 있다. 중도에 대한 갈구가 있다. 물론 다 각자 자기 나름대로 논리가 있고 정당성이 있지만, 그것이 국민 대다수를 설득을 못하고 있고 만족을 못 시키고 있다. 정말 신문 하나를 봐서 사태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그런 신문 하나, 그걸 굉장히 지금 바라고 있다. 저는 그 신문을 독자들한테, 국민들한테 제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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