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중국의 FTA(자유무역협정) 6차 협상이 지난 2일부터 4일 부산에서 진행됐다. 한중 FTA의 무역 규모는 그간 FTA를 체결한 미국과 유럽을 합친 것보다도 클 뿐만 아니라 농산물과 공산품 등 국민의 건강에 직결될 수 있는 중대 사안이지만 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국민들은 많지 않다. 지난해 5월부터 1차 협상을 시작해 벌써 6차 협상까지 진행된 협상 내용이 공개된 것은 극히 제한적이다.

무엇보다 국민에게 한중 FTA는 여타 FTA가 국익의 관점에서 받아들여졌던 것과는 달리 실생활과 먹을거리에 대한 우려와 공포로 다가올 수 있다는 점이 간과돼 있다.

당장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장차 아이들이 먹고 소비할 중국산 농산물과 문구류 등이 믿고 소비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정보가 전무해 답답해하고 있다. 김민선 아이건강국민연대 사무국장은 9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중국에서 수입되는 제품들이 어떻게 생산되고 유통되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이 가장 염려된다고 말했다.

김민선 국장은 “배를 타고 멀리서 오는 식품은 제대로 숙성되지 않은 것도 많을 뿐만 아니라 기본적으로 운송기간이 길고 방부제와 농약이 과다하게 포함돼 있다”며 “농산물의 경우 여러 나라에서 들어오고 있지만 대부분 중국에서 가장 많이 들어오는데도 국민들은 중국산 농산물이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학교 급식에서도 우리 농산물로만 수급할 수 없는 조항이 있는데 중국산 등 수입 농산물 공급이 점차 늘어난다면 안전한 먹을거리에 대한 불안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며 “특히 성장기에 있는 어린이들은 어른에 비해 방부재와 농약 에 취약하기 때문에 어린이들이 이런 수입 농산물을 먹게 되는 것이 굉장히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농산물 농약 과다에 중국산 문구류 유해물질 기준치 2만9000배

농산물뿐만 아니라 학용품, 문구류 등 공산품도 안전지대에 놓여있다고 보기 어렵다. 김 국장은 “아이들이 많이 쓰는 문구류 중에는 중국에서 들어오는 것이 많고 중국에서 저가로 들어오는 학용품의 품질을 확인할 수가 없다”며 “우리나라에는 유럽의 리치법(REACH)과 같은 유해화학물질을 규제할 수 있는 법이 없고 학교와 학부모들도 어린이들이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학습 준비물에 전혀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유럽의 경우 지난 2007년부터 국민 건강과 환경을 위한 화학물질 관리 체계인  신(新)화학물질관리제도 리치법이 시행되고 있어 모든 수입 공산품에 대한 자료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과 중국의 유해화학물질 관리 기준은 여기에 훨씬  미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최근 가습기 살균제 사고에서처럼 유해화학물질 피해 대책도 제대로 세우고 있지 못한 수준이다.

지난 1월 환경부에서 장난감 등 4000개 어린이용품에 대한 유해물질 함유 실태를 조사한 결과 211개 제품에서 ‘프탈레이트’ 등 유해 물질 함량이 국내 기준을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에서도 특히 중국산 인형 제품에서 유해물질이 41.03%나 검출돼 함량기준(0.1%)의 약 410배 이상 검출된 것으로 확인됐다. 중국산 모형악기에서 니켈 검출량은 기준치의 무려 2만9628배에 달했다.

최준호 환경운동연합 정책국장은 9일 “중국산 장난감과 공산품이 많이 들어오는 상황에서 한중 FTA를 통해 중 품질 기준과 안전성 강화를 요청할 수 있다면 더 나을 수 있지만 현재 한중 FTA 논의에서 이런 점들이 언급이나 되고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이라며 “아직도 한국은 유해화학물질 관련법과 제도가 미비한 상태고 중국은 우리보다 훨씬 열악한데 시민들이 불안해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제적으로 교류해 나가는 상황에서 양자 간 무역협정들이 각국의 경제발전뿐만 아니라 사회적 시스템을 보완할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보통 그렇지 않은 역방향으로 가기 때문에 걱정”이라며 “한국과 중국 모두 안전성에 대한 기준과 수준이 미흡한 상황에서 경제적 논리에 의해 국민의 안전이 좌지우지될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한중 FTA의 최대 피해 산업으로 꼽히는 농업 관계자들이 내다보는 현실은 말할 나위가 없었다. 김광천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대외협력실장은 9일 “지금은 학교 급식에서 우리 농산물을 쓰려는 지역적 움직임 많지만 농산물이 개방되면 농업  자체가 힘들어져 농가의 이농·이탈 현상이 본격화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 실장은 “중국과의 FTA는 쌀을 제외하고 다른 품목들을 수입이 열린 것인데 박근혜 대통령이 시진핑 국가주석을 만나서 합의한 높은 수준의 포괄적인 FTA란 90% 이상은 개방하겠다는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며 “시간이 자날수록 10년을 전후로 무관세로 농산물이 다 들어오는데, 농민에게 직접적인 타격이 될 뿐만 아니라 지금도 식량자급률이 낮은 상황에서 국민에게 농산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마지노선이 무너지게 된다”고 분석했다. 현재 관세로 막고 있는 중국 농산물이 FTA 이후 본격적으로 들어오면 그 나라에서 그 나라 국민에게 안정적으로 농산물을 제공할 기회가 줄어들어 이는 곧 지속 가능한 국내 농업에 심각한 피해를 안겨줄 수 있다는 뜻이다.

   
지난 2일부터 사흘 동안 전국에서 모인 수천 명의 농어민들은 한중 FTA 6차 협상 장소인 부산에서 협상 중단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연합뉴스
 

김 실장은 또 학교 급식 등에 있어서도 비위생적인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는 “우리 농산물을 아이들에게 먹일 수 있는 학교 급식 시스템 자체도 위협을 받을 것”이라면서 “비용으로 보면 아무래도 학교 급식만이 아니라 군대와 공공기관에서 저가의 수입 농산물로 대체될 텐데, 안전하지 못한 농산물이 영세 업체나 대형 급식소로 공급된다는 점도 문제”라고 덧붙였다.

학교 급식 먹을거리 불안↑…전 품목 피해에 이농 속출할 것

임성규 국민농업포럼 사무국장 역시 먹을거리 안전성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지금까지는 수입이 축산이라든지 큰 품목 중심이었는데 중국과는 먹는 게 비슷하다 보니 밭작물의 식량 안보도 큰 문제”라며 “국내 농가가 소득을 창출할 수 있는 채소와 원예까지 들어오게 되면 피해갈 수 있는 품목이 거의 없고 전 품목에서 피해가 나타나게 된다”고 설명했다.

임 국장은 “한번 중국 농산물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과거 마늘 협상에서 봤다시피 중국은 정말 말도 안되는 논리와 힘으로 식량 안보를 관철시킬 수 있다”며 “당시 우리가 마늘을 수입하다가 값이 폭락해 긴급 관세를 부과했더니 중국이 발끈하면서 휴대폰에 보복 관세를 매기자 우리는 손들어 버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제도적으로 보장된 부분도 제대로 지키기 어려운데 이보다 파급력이 큰 FTA 이후에는 더 지킬 수 없음은 불을 보듯 뻔하다”며 “이런 부당한 경험을 겪었기 때문에 농민들은 중국과의 FTA를 상당히 두려워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유성우 산업통산자원부 동아시아자유무역협정추진기획단 과장은 “아직은 1단계 협상 중이라 개별 품목 협상을 2단계에 가서 어떻게 할 것인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며 “농산물과 식품 안전 등 여러 우려와 걱정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매번 협상할 때도 관계부처와 협의를 해 왔고 앞으로도 2단계 협상에 가서도 그런 문제들이 논의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아직은 공청회나 간담회에서 FTA에 따른 관세 인하나 양허, 상품 자유화가 주로 논의돼 규제 영역에 대한 의견이 있었는지는 기억나는 바가 없다”며 “FTA는 협상 결과에 따라 이익과 피해가 산출되는데 일각에서 주장하듯 농산물이 어마어마한 규모의 피해를 볼 것이란 가정 자체가 비현실적이다”고 반박했다.

유 과장은 20대가 한중 FTA로 청년 일자리 유출에 대한 불안이 큰 점에 대해서는 “서비스와 투자 분야가 어떻게 규정되고 관련 규범들이 어느 정도까지 포함되느냐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수 있다”며 “지금 단계는 전체적인 틀 수준이어서 그런 걱정은 실질적인 2단계 협상에서 논의 대상이 아닐 수도 있다”도 말했다.

한편 지난 2일부터 사흘 동안 전국에서 모인 수천 명의 농어민은 한중 FTA 6차 협상 장소인 부산에서 협상 중단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지난 시기 국익을 위해 농민의 희생을 담보로 체결했다는 한-칠레, 한-EU, 한미 FTA 등 그 어느 것 하나 우리나라 경제에 아무런 보탬이 되지 못했다”며 “정부와 언론은 농축수산업 분야의 농어민들이 가장 큰 피해자가 될 것이라 하면서도 이를 당연시하고 400만 농어민들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지난해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공개된 농협경제연구소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과 중국이 FTA 체결 시 10년 동안 국내 농업의 피해액은 24조 원에 달하며 채소·과실류 피해만도 12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다. 이는 한미 FTA 체결 당시 향후 15년간 전체 농업분야의 피해 추정액 12조2000억 원의 두 배에 달하는 규모다.

   
지난 2일부터 사흘 동안 전국에서 모인 수천 명의 농어민들은 한중 FTA 6차 협상 장소인 부산에서 협상 중단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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