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8일 AP통신은 ´20세기 100대 사진´을 선정했다. 이번 선정에 한국 관련 사진으로는 한국일보 고명진 사진부장의 87년 6월항쟁 부산 시위사진(위)과 연합뉴스 김재영 기자의 지난해 조계종 사태 진압경찰관의 추락장면(아래)이 포함됐다.

이번 ´20세기 100대 사진´은 전세계의 고객사 및 미국내 회원사가 각각 50장씩 고른 것이다. 한국 보도사진의 위상을 높인 한국일보 고부장에게 한국 보도사진의 현재와 전망을 들어봤다. 연합의 김재영 기자는 현재 동티모르에 출장 중이라 그의 선정사진만을 싣는다. (편집자 주)

"이 사진이 공식적으로 신문에 실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20세기 100대 사진´의 하나로 뽑힌 소감을 묻자 고명진 부장은 자신의 사진 ´아! 나의 조국´이 10여년 만에 신문 1면에 큼직하게 박힌 것이 더 즐겁다는 눈치였다. 80년대 민주화를 외쳤던 사람들에게 아주 익숙한 6월항쟁의 대표사진이 비로소 사면복권된 것이다.

87년 6월 25일 대구시위에서 그는 백골단에게 뭇매를 맞았다. 그의 취재방법이 전경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그는 닭장차까지 쫓아가면서 연행자들의 사진을 찍었다.

사진욕심도 욕심이지만 그렇게 하면 학생들이 덜 맞았다는 것도 이유였다. 당시에는 사진촬영을 방해하는 전담 백골단이 있었고 기자에게 매타작을 놓는 것도 다반사였다고 한다. 대구에서 그렇게 짓밟힌 몸을 이끌고 그는 부산으로 향했다.

6월항쟁의 기폭제가 된 박종철 열사의 고향에서 열리는 6·26 평화대행진을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그 현장에서 경찰의 과잉진압이 시작되자 한 사내가 웃통을 벗고 "최루탄 쏘지마"를 외치며 진압경찰 앞으로 뛰어들었다. 고부장은 그 장면을 놓치지 않았다.

"그 사람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한번 꼭 만나보고 싶다"며 그 순간이 20년 사진기자를 하며 가장 기억난다고 그는 회상했다.

고부장은 민주화의 열기가 뜨겁던 80년대의 대부분을 거리에서 보냈다. 이제 좀처럼 맡기 어려운 ´매콤한´ 최루탄과 학생들의 화염병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곡예를 했다. 전경한테도 학생한테도 환영받지 못했던 그 시절, 현장을 기록해야 한다는 사진기자의 신념만으로 군화발과 ´짱돌´에 맞아가며 셔터를 눌렀다.

10대의 카메라로도 다 기록할 수 없을 만큼 사회전반에서 표출되는 민주화열기를 그는 발품을 팔며 기록했다. 89년 외압과 자기검열로 빛을 보지 못했던 그 사진들이 <그날, 그거리>라는 책으로 묶였다. 그 책의 표지도 역시 이번 100대 사진으로 선정된 ´아! 나의 조국´이 장식했다.

이제 격렬한 현장에서 돌아온 그는 사진 데스크로, 대학교수로, 포토저널리즘학회의 자문위원으로 또 다른 현장을 살고 있다. 요즘 그는 서구 포토저널리즘의 한국적 적용을 고민한다.

서구와 달리 한국에서는 사진을 찍기 위해 일상적으로 연출을 한다는 것이다. 얼마전 LA의 한 신문기자가 불을 끄는 소방대원에게 물을 뿌리고 연출사진을 찍어 영구제명된 일이 있었다. 한국도 사진을 위해 일상적인 연출이 어디까지 가능한 것인지 냉정하게 비판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위해 사진을 연출하기도 했는데 이것은 명백한 범죄행위입니다."
메시지를 전달하되 평가는 독자가 내릴 수 있게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소신이다.

지난 6월 서해교전때도 교전사진을 언론들이 조작한 것을 예로 들며 독자의 시선을 끌기 위한 무비판적인 사진연출은 이제 시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매체비평지와 시민단체들이 메시지 전달 수단의 하나인 사진비평에 눈을 돌려줄 것을 당부했다.
지난해 1년 무급휴직을 하는 바람에 여러 가지 고통을 겪었던 그는 1년 동안 긍정적 시각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절감했다고 한다.

그의 체화된 긍정적 시각은 복직을 한 후 후배에게 그대로 전파됐다. 다른 신문사의 절반수준인 16명의 사진부 후배들에게 ´낙종을 두려워마라´고 격려했고 육체적 피로를 ´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극복할 것을 주문했다.

한국일보 사진부는 ´김영삼 페인트 계란 세례´ ´판교 500만원 수표 통행료´ 등 여러 건의 굵직한 사진 특종을 해 그의 자율적 조직운영은 어느 정도 성과를 보고 있다.

고부장은 그런 낙관으로 카메라를 매고 다시 거리로 나설 작정이다. 화염병과 최루탄이 난무하던 80년대의 치열했던 거리와 사뭇 다른, IMF로 할퀸 상처를 부여잡고 사는 조금은 쓸쓸한 사람들의 거리를 느긋하게 헤맬 생각이다.
80년대와 다르지만 또다른 아픔으로 똑같은 무게로 치열하게 살고 있는 민초들의 건강함을 앵글로 잡아내 또 한 권의 ´매콤한´ <그날, 그 거리>를 계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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