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국가정보원 선거개입사태와 남북정상회담회의록 공개로 등장한 ‘촛불’을 애써 끄고 있다. 현재 촛불집회 규모가 2008년 촛불집회와는 비교가 안 되지만 혹시라도 2008년 상황이 재연될까 노심초사하는 모습이다. 

이기홍 동아일보 사회부장은 5일 <‘국정원 촛불’이 시들한 이유>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집회규모가 예전과 다른 배경으로 “2008년엔 난무하는 광우병 괴담과 좌파 언론의 선동으로 국민이 진실을 파악하는 데 시간이 걸렸지만 이번엔 국민이 위법행위의 경중을 나름대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기홍 사회부장은 “검찰이 찾아내지 못한 것도 있겠지만, 수십만 수백만 건의 댓글이 숨어 있을 가능성은 없다”고 설명하며 “댓글 수가 적다고 국정원 잘못이 가벼운 것은 아니지만 국민들은 민주주의의 토대가 흔들렸다고, 대선이 부정선거였다고 판단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경중을 따지고 사안을 다층적으로 판단하는 국민의 수준과 단선적 비약논법에 매몰돼 있는 좌파 운동권의 수준 차이가 여기서 빚어진다”고도 밝혔다.

   
▲ 동아일보 5일자 27면.
 
하지만 이기홍 사회부장은 ①문제가 크면 집회인원이 많다 ②국정원 비판 집회인원은 적다 ③국정원 선거개입 사건은 큰 문제가 아니다라는 단선적 비약논법에 매몰됐다. 사회문제에 대한 입장표시는 과거보다 다양해지며 반드시 촛불집회 참석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또한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이 민주주의의 토대를 흔들었다는 판단은 사법연수생·변호사·헌법학자 등으로부터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기홍 사회부장의 주장처럼 국민이 위법행위의 경중을 판단한 결과 이번 사안이 문제가 없다고 결론 내려 집회에 참가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2008년과 2013년은 결정적으로 달라진 것이 있다. 언론의 공정성이다. 이명박·박근혜정부를 이어오며 공영방송은 공정성을 잃고 사안의 본질을 짚어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MBC <시사매거진 2580> 국정원편 불방사건과 KBS뉴스에 대한 각계각층의 비판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언론이 장악된 상황에서도, 촛불이 두렵긴 마찬가지다. 조선일보는 사법연수생 43기(2년차) 91명이 채동욱 검찰총장에게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에 대한 엄격한 수사를 요구하는 의견서를 전달한 것을 두고도 못마땅한 입장을 드러냈다.

사법연수생들은 지난 4일 “국정원이 자신들의 편향된 의견을 조직적으로 배포하는 것 자체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근간을 흔드는 중대한 위법”이라 밝힌 뒤 “국정원이 국내 특정정치세력을 조력하는 일은 국정원의 권력과 폐쇄성 때문에 더욱 위험하며 어떠한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 조선일보 5일자 10면 기사.
 
이를 두고 조선일보는 5일 “공무원신분인 연수원생들의 행동을 두고 법조계에서는 정치 중립과 단체행동을 금지한 공무원법 위반 여부에 대해 판단해 봐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고 보도했다. 이어 법원관계자 멘트를 인용해 “이미 기소된 사건에 대해 의견을 낸 것에 불과해 정치 중립을 위반했다고 보기엔 어렵지만, 집단행동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고 보도했다. 같은 날 한겨레신문이 “사법연수원생들이 특정한 검찰수사 사안에 집단 의견을 낸 것은 처음”이라고 보도하며 이번 사건의 중대함에 주목한 것과 대조적이었다.

조선일보는 4일 <제2의 촛불시위라더니…대학가 사그라드는 시국선언?>이란 온라인 기사에서 “일반의 관심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포기 발언 파문 등으로 옮겨가면서 시위의 동력을 잃었다”고 보도했다. 같은 날 지면에선 “북한이 대선 무효 및 정권퇴진을 위한 촛불 시위를 선동하고 나섰다”며 집회참가자와 북한의 연결고리를 찾는 모양새였다. 지난 6월 29일엔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를 주도한 그룹 중 하나인 한국진보연대가 올해 국정원 선거 개입 사건을 반미 자주 투쟁의 계기로 보고 촛불시위를 투쟁의 장으로 활용하려 한다”며 촛불집회의 성격을 왜곡해 규정하려는 모습도 보였다.

동아일보의 경우 지난 6월 25일 <노 전 대통령의 NLL발언 논란 털고 가는 게 맞다>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국정원 사건과 관련해 촛불집회가 벌어지고 민주당이 장외투쟁에 나서는 것은 국민만 피곤하게 할 뿐이다”라고 주장했다.

국정원의 선거개입과 정상회담록 공개논란은 2008년 촛불집회보다 현재의 집회가 규모나 파장이 작다고 쉽게 치부할 사안이 아니다. 진보·보수와 상관없이 헌법가치를 파괴한 사안이고 향후 정상외교에도 두고두고 안 좋은 선례를 남기게 된 사안이다. 하지만 논란의 본질을 짚어내야 할 언론은 정작 촛불집회동력이 없다는데만 집중하며 애써 논란을 가라앉히려 하고 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