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불법선거개입과 경찰의 수사은폐 및 허위발표 사건에 대해 새누리당이 국정조사를 수용하기로 했으나 지난 주말 이후 확산되기 시작한 ‘촛불’ 집회의 열기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시민들은 국정원이 전격적인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회의록을 공개했다가 되레 더 큰 역풍을 불러오자 서둘러 국정조사를 수용한 것으로 보고 향후 진행될 국정조사에 대해서도 진정성을 신뢰할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국정원과 경찰의 ‘국기문란’으로 규정되고 있는 불법선거개입 사건이 5년 만의 ‘제2의 촛불’ 저항을 부른 데엔 ‘불신’과 ‘불안’에 대한 자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25일 저녁 ‘국정원 선거개입 기독교 공동대책위원회’를 발족한 김창현 NCCK(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목사는 이날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박근혜 정권 초 ‘촛불’의 부활을 두고 “박근혜 정부에 대한 기대가 ‘인사문제’, ‘윤창중사태’, ‘쌍용차 약속파기’, ‘경기악화’, ‘양극화 확대’에 이어 개성공단 기업인들의 열망에도 남북당국회담을 ‘격’ 따지다 무산시키는 등 일련의 사건에 대한 불신과 반감이 쌓여오다 이번에 물꼬가 터진 것”이라며 “2008년의 경우 광우병 사건 하나에 들고 일어났지만, 이번 국정원 사건은 여러 불신이 쌓여왔던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김 목사는 “아무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때 표창원씨 같은 사람이 직접 아고라에서 서명운동까지 받으며 나선 것도 한 계기점이 됐다”고 평가했다.

현재 대만에 출장 중인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는 이날 저녁 미디어오늘과 국제전화에서 “과거 광우병 사태의 경우 ‘아이들 급식’, ‘군 식사’ 등 먹거리 문제에 있어 국민 감정을 자극한 반면, 이번 사건의 경우 이성적 판단이 쌓여 행동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표 전 교수는 “국정원사건은 개인에 직접적인 피해를 끼친 것이 아니라 정권 차원 또는 정치의 문제이다 보니 연초부터 실체가 드러났을 때도 분노는 있었지만 감히 ‘손해’를 감수하며 거리로 나온다는 생각은 못했던 것 같다”며 “그러나 검찰수사가 발표된 이후부터 이성과 합리의 작용이 일어났다고 봐야 한다”고 평가했다. 언론과 방송은 전혀 알리거나 보도하지 않는 대신 인터넷매체와 대안언론 중심으로 사실관계와 문제점이 전달되면서 시민들이 본질을 생각하게 했다는 것.

그는 “이게 어떤 의미인지, 자손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하다 나와 무관한 것이 아니며 이대로 뒀다간 권력자들의 입맛대로 ‘등록금’, ‘취업’, ‘정리해고’ 등과 같은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자각을 한 것”이라며 “무엇보다 헌법상 주인인 자신의 투표권이 유린되고 기만당하고 있다는 자존감의 손상이 ‘못참겠다, 이건 아니다, 바로잡자’는 행동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국정원 선거개입 국정조사 촉구 5일차 촛불문화제가 열리기 전인 25일 오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정의평화위원회, 전국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 등 기독교 단체들이 서울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공식사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이와 관련해 이날 오후 여야가 합의한 국정조사 조사에 대한 평가에도 진정성에 의문을 낳고 있다. 김창현 목사는 “국정조사 실시는 좋은 소식이나 원내대표 합의만으로는 반발을 불길을 잠재우긴 어렵다”며 “실시되기까지 새누리당이 어떤 꼼수를 부릴지 모른다는 학습효과가 이미 시민들에게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표창원 전 교수도 “박근혜 대통령이 전날 ‘국회에서 밝히라’는 언급에 이어서 나온 것으로 볼 때 새누리당이 시민들의 국정조사 요구를 일단 수용한 것으로 판단하고 지켜볼 것”이라면서도 “희망·기대감과 함께 의심도동반될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 배경을 두고 표 전 교수는 전날 이른바 NLL 회의록이 공개된 것과 국정원 국정조사 수용이 무관치 않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표 전 교수는 “NLL 회의록 공개를 통해 국정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롯해 야당과 문재인 전 후보 등을 종북으로 규정했던 게 옳았음을 기대했으나 막상 공개하고 나니 ‘NLL을 평화구역으로 만들자’는 것이어서 되레 역풍을 맞았다”며 “더구나 정상회담이라는 기록물을 고의로 공개한 것도 국가기관이 스스로 법을 어겼다는 벽에 부딪혀 ‘무모한 여론몰이’라는 감당하지 못할 궁지에 몰렸다”고 풀이했다. 학생들의 시국선언과 촛불시위 양상도 자칫 이대로 두다간 80년대식 상황이 재연될 위기에 처해 어설프게 열었던 ‘판도라 상자’의 후폭풍을 막고자 부랴부랴 국정조사에 합의한 것이라고 표 전 교수는 강조했다.

김창현 목사도 “새누리당 쪽에서 급한 불이라도 꺼보겠다고 NLL 발췌본을 공개했다가 되레 그동안 말했던 것보다 별 것 없는 것으로 나와 자칫 치명상을 입을 것을 우려해 국정조사를 약속한 것”이라며 “스스로 자충수를 뒀다가 하룻만에 합의한 모양새가 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때문에 더욱 국정조사의 진정성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으며, 당장 촛불을 끄기 위한 포석이라 볼 수밖에 없다”고 해석했다.

이에 따라 향후 촛불집회의 분위기도 확 꺼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김상윤 한대련 연사위원은 “오는 7월 2일 국정조사 실시안의 본회의 통과가 이뤄지기까지는 촛불집회를 더 열심히 할 것”이라며 “오는 28일 집중 촛불집회를 열어 더 많은 참여를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표창원 전 교수도 애초 약속한 오는 28일 참여연대와 민변, 진선미 민주당 의원과 공동으로 주최한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광장 앞 길거리 강연회에는 참가하되, 투쟁 대신 강연 형태로 시민과 공감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 장소에 가는 것으로 서명해준 시민들에 대한 감사를 전하는 한편, 국정조사 요구를 수용한 만큼 투쟁 방식이 아닌 길거리 강연 형식으로 사건의 의미를 되새겨보고 이 사건을 어떻게 지켜봐야 할지 말씀을 나누려 한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완전한 규명이 아니며 책임질 사람이 아직 책임지지 않았으므로 아직은 시작 단계일 뿐”이라며 “여전히 ‘대선 원천무효’, ‘대통령 사퇴’ 등의 요구까지 나오고 있다는 점에서 시민들의 저항이 사그라지진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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