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국가정보원은 한마디로 고삐 풀린 망아지요, 흉기를 들고 설치는 위험한 망나니와 같다" (26일자 한겨레 사설)

국가정보원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록을 공개한 뒤 국정원의 존재 이유를 되묻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남재준 국정원장은 국회 정보위에서 회담록을 공개한 이유에 대해 "국정원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말해 국정원을 보호하기 위해 국익을 저버렸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정상회담록에 나온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을 앞뒤 맥락 설명 없이 한 대목만을 가지고 왜곡 보도하고 있다고 비판을 받고 있는 보수 신문에서도 국가의 이익과 명예를 고려할 때 국정원의 이번 회담록 공개는 잘못됐다는 지적을 내놨다.

다만, 보수신문들은 'NLL 포기'라는 발언이 보이지 않자 영토를 훼손하는 취지의 발언이었다고 주장하는 동시에 노 전 대통령이 회담을 끌고 가려는 의지를 보인 발언 대목에 대해 일제히 '저자세'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는 모습이다.

국정원 선거 개입 사건에 대해 여야가 국정조사를 하기로 전격 합의한 것도 이번 국정원의 회담록 공개와 무관치 않다. 회담록 공개에 따른 여론이 예상보다 파장이 크지 않고 오히려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는 양상인데다 촛불 집회 양상이 확대될 조짐을 보이면서 새누리당 입장에서는 국정조사를 수용하지 않을 시 후폭풍을 감당키 어려웠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다음은 26일자 아침종합신문 머릿기사 제목이다.

경향신문 <여야 '국정원 대선 개입' 국조 합의>
국민일보 <물 샘틈 없는 수색..."더 이상 6. 26 아픔은 없다(사진기사)>
동아일보 <대통령의 직분 망각한 2007년 盧발언>
서울신문 <국정원 의혹 국정조사 합의>
세계일보 <여 "영토주권 사실상 北에 상납" 야 "어디에도 포기 발언 없었다">
조선일보 <새누리 "盧, 北 독재자에 영토 자존심 상납" 문재인 "NLL 평화협력구상, 훌륭하지 않나">
중앙일보 <국정원 명예보호 VS 국가기밀 유출>
한겨레 <국정원 "명예 위해 공개"...나라 명예는 안중에 없었다>
한국일보

남북정상회담록 공개 이틀 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왜곡이 이뤄졌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실제 새누리당이 주장한 내용과 원문을 비교한 결과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이 상당부분 왜곡된 대목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회담록 전문 공개 오히려 노무현 전 대통령 발언 왜곡

새누리당은 지난해부터 현재까지 노 전 대통령이 북방한계선을 포기했다는 발언을 했다고 주장했고 국기문란 사건이라며 회의록 공개를 강하게 주장했다. 그러나 정작 공개된 회담록 전문에는 '포기'발언은 찾아볼 수 없었다.

대표적인 왜곡 사례로는 서상기 새누리당 의원의 주장을 들 수 있다. 서 의원은 지난 20일 "상상을 초월한다. 정상회담 내용이 아니다. 대화록이 아니고 보고하는 수준이었다"고 주장했지만 회담록에 노 전 대통령이 “6자회담에 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는데, 조금 전에 보고를 그렇게 상세하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한 대목은 북측 김계관 부상이 정상회담 중간 6자회담 경과를 남북 정상에게 보고한 것을 일컫는 말로 드러났다.

최초 NLL 포기 발언을 주장한 정문헌 의원도 지난해 10월 “노 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NLL 때문에 골치 아프다. 미국이 땅따먹기 하려고 제멋대로 그은 선이니까. 남측은 앞으로 NLL을 주장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이라고 했지만 회담록에 이 같은 내용이 없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오히려 노 전 대통령이 “(NLL은 남한에서) 현실로서 (영토선으로)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면서 “NLL을 갖고 이걸 바꾼다 어쩐다가 아니고 공동번영을 위한 바다 이용계획을 세움으로써 민감한 문제들을 미래지향적으로 풀 수 있다”고 보도했다.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이 미국을 폄훼하고 북을 치켜세우고 있어 '저자세'였다고 비판한 대목을 보면  실제 “김 위원장이 북·미관계 개선을 위한 문만 열어놓는다면 미국이 이에 상응한 관계개선 조치에 속도를 내도록 재촉할 것”, “우리가 문제를 실질적으로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에서 지지를 확보해야 한다”, “2012년이 되면 작전통제권을 우리가 단독 행사한다. 안보 개념은 대북 안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제는 동북아시아 전체를 내다본 안보체제를 갖춰야 한다”등 북한을 상대로 고립돼선 안된다는 강조의 뜻에서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 조선 4면
 

조선일보도 "노무현 전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보고드린다'는 표현을 썼다. 처음부터 끝까지 비굴과 굴종의 단어가 난무했다"는 서상기 새누리당 의원의 발언을 전하면서 "그러나 회담록 전문을 보면 '보고'라는 표현은 김정일 위원장이 김계관 외무성 부상을 시켜 노 전 대통령에게 6자회담 관련 보고를 하게 해줘 감사하다는 취지에서 나온 것으로 확인됐다"고 지적했다.

조선은 또한 "서 위원장은 또 노 전 대통령이 당시 '북핵(北核)은 자기 방어용'이라는 취지의 발언도 했다고 했으나 이 부분도 대화록에서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밖에 노 전 대통령이 NLL을 "미국이 땅따먹기 하려고 제멋대로 그은 선"이라고 표현했다는 정문헌 의원의 발언에 대해서도 조선은 이 같은 발언이 없었다고 보도했다.

반면, 동아일보는 <‘대통령의 직분’ 망각한 2007년 盧발언>이라는 기사에서 "전문을 보면 동등한 지위를 가진 두 정상의 공식대화로 보기엔 낯 뜨거운 대목이 곳곳에 등장한다. 더 나아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국가와 헌법 수호 의무를 방기했다고 볼 수 있는 발언도 눈에 띈다"고 보도했다.

동아는 특히 노 전 대통령의 화술이라고 할 수 있는 대목에 대해 "무엇보다 특유의 거친 언사로 대한민국 대통령의 격을 추락시켰다는 지적을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 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 대해 “혁명적 결단” “승인해주셨다”라고 말한 대목을 들어  "마치 사업가가 공사 수주를 따기 위해 발주자에게 매달리는 듯한 장면"이라고 주장했다.

NLL 포기 발언 없자 이재정 전 장관 타깃

또한 동아를 비롯해 조선, 중앙일보는 회담록 공개 이후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 포기 발언을 했다'는 의혹이 사실상 거짓으로 드러나자 '녹취록이 없었다'라고 했던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을 타깃 대상으로 맞추고 있다.

조선은 정문헌 새누리당이 관련 의혹을 제기한 뒤 이재정 전 장관이 기자회견을 열어 "대화록은 남아 있다"면서도 "남북 정상회담은 그 특수성에 따라 녹취록이 없다"고 했다고 보도했다. 또한 이 전 장관이 지난해 12월 14일 기자회견에서도 "노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이에 NLL 관련 논의나 주한미군 관련 논의, 경수로 관련 논의는 없었다"고 했지만 녹취록을 바탕으로 회담록이 존재했고, 없다던 관련 내용이 전문에 들어가 있다고 보도했다.

회담록 공개 청와대와 교감 있었나

이번 회담록 전격 공개는 국정원이 단독으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동아는 이번 회담록 결정이 박근혜 대통령의 '세번째 승부수'라고 보도해 '청와대 교감설' 논란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동아는 "박 대통령은 남북 간 중대 국면에서 예상과 다른 선택을 했다"며 첫번째 승부수로 개성공단 철수, 두번째 승부수로 남북당국회담 협상 과정 격 문제 제기 후 회담 무산, 세번째 승부로 이번 회담록 공개를 꼽았다.

동아는 "당장 북한의 반발을 사더라도 회의록을 공개함으로써 과거와 같은 ‘저자세 대화’는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는 얘기"라고 분석했다. 특히 청와대 관계자는 동아와 인터뷰에서 “회의록 공개가 앞으로 남북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단할 수 없지만 우리가 자신감이 없었다면 공개했겠느냐”라며 일각에서 제기하고 있는 청와대 교감설을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 동아 5면
 

일제히 회담록 공개에는 부정적

회담록 내용에 대한 해석과 분석은 상반되지만 남재준 국정원장이 회담록을 공개한 것은 부적절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한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도 흥미롭다.

조선은 회담록 공개 이후 "오히려 공개 후에 남남 갈등과 국론 분열이 더 심각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며 NLL 포기 발언에 대한 해석 차이가 큰 여론을 전했다.

조선은 특히 "무엇을 위해 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라는 서울 주재 외국 외교관의 말을 인용해 이번 회담록 공개가 향후 외교 관계에 미칠 부작용을 지적했다. 조선은 또한 이번 회담록 공개로 인해 남북 관계가 악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조선과 인터뷰에서 "북한이 남북 관계의 기준으로 삼는 6·15, 10·4 선언을 근본적으로 훼손함으로써 (박근혜 대통령이 언급했던) '신뢰의 벽돌'이 아니라 '불신의 벽돌'을 쌓는 결과가 될 수 있다"고 전했다.

중앙은 <국정원의 '회의록 공개' 판단은 부적절했다>라는 제하의 사설에서 국정원 댓글 사건으로 논란이 한창인 시점에 공개를 결정한 데 대해 의문이 나온다"며 "국정원은 부인하겠지만 이슈로 이슈를 덮으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많다. 이게 일반인들의 ‘합리적 의심'"이라고 국정원을 정면 겨냥했다.

중앙은 또한 "국정원의 태도는 장차 우리의 외교에도 적잖은 부담을 줄 위험이 있다. 앞으로도 정상회담 때의 대화 내용이 일부 노출될 때마다 계속 기밀을 해제해 공개하겠다는 건가. 그럼 도대체 어느 나라 정상이 우리 대통령과 속 깊은 얘기를 하려 하겠나"라고 반문했다.

특히 중앙은 "노무현 대통령도 결국 우리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었다"라며 "북한의 김정일과 만나 대통령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했다는 사실을 낱낱이 까발리는 것 자체가 누워 침 뱉기다. 그게 과연 국익인가"라고 비판했다.

중앙은 그러면서 "보신과 출세에 눈이 어두운 소수 탓에 국정원의 위상이 흔들리는 것"이라며 "이번 일을 계기로 국정원 개혁은 미룰 수 없는 국정과제로 떠올랐다"고 전했다.
 

   
▲ 중앙 사설
 

한겨레는 나아가 "국가 기밀사항을 꺼내들고 칼춤을 추어 나라를 온통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이런 국정원을 과연 이대로 두어도 좋을지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고 성토했다.

한겨레는 <고삐 풀린 국정원, 이대로 놔둘 수 없다>라는 사설에서 "기밀이 무엇이고 정보가 무엇인지에 대한 기본 인식도 돼 있지 않은 엉터리 조직이다. 이제 국정원은 비밀이고 보안이고 하는 따위의 말을 꺼낼 자격조차 없다"면서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가 어떤 정치·사회적 파장을 불러올지 예견하지 못했다면 국정원의 판단 능력에 심각한 이상이 있는 것이요, 이런 국론분열 현상을 예상하고서도 공개를 강행했다면 천인공노할 행동"이라고 비난했다.

한겨레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서도 "국정원의 정치개입을 단호히 방지하기는커녕 오히려 정권보위 세력으로서 국정원을 활용하고 나선 형국"이라며 "결국 고삐 풀린 망아지에 고삐를 단단히 채우는 일은 국민의 몫이 됐다. 이 어려운 일에 대한 국민적 지혜를 짜내는 첫걸음은 국정원 대선개입에 대한 국회 국정조사"라고 전했다.

국정원 명예가 나라보다 중요하다?

남재준 국정원장이 국회 정보위에서 "국정원 명예를 지키려 대화록을 공개했다"는 발언도 질타를 받고 있다.

남 위원장은 전문 공개 결정 이유에 대해 "야당이 자꾸 공격하니까 국정원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그랬다"고 말했다.

남 위원장은 또한 민주당 추미애 의원이 “국정원 명예가 국익과 국가기밀보다 중요한가”라고 묻자 “야당에서 회의록을 왜곡했다고 그러니까 공개를 결정했다”고 답했다. “회의록 공개는 국익을 위한 것이 아니지 않으냐”는 민주당 김민기 의원의 질문에 남 원장은 “국익에 기초해서 판단하지 않았다. 국가 안위를 위하는 입장에서 (공개를 결정)했다”고 말했다고 경향은 전했다.

남 위원장은 회의록에 포기 발언이 있었느냐라는 질문과 청와대 사전 교감설에 대해서는 "답변하지 않겠다"라고 말했다.
 

   
▲ 경향 2면
 

이에 김한길 민주당 대표는 의원총회에서 “국정원이 국가정보기관으로서 본분을 망각하고 오직 자신의 범법행위를 가리려 국익도, 국격도, 최소한의 상식도 모두 저버렸다”고 비판했다.

경향은 남 위원장의 회담록 공개 결정에 대해 "회의록을 공개한 시점은 국정원 정치 개입 사건에 국민적 공분이 커지고 박근혜 정부의 정통성 시비로까지 불이 옮겨붙는 상황"이었다며 "남 원장이 박 대통령의 보위 역할을 자임했음을 부인하기 힘든 대목이다. ‘음지’에서 일한다는 정보기관이 ‘양지’로 나와 ‘안보 정치’ 논리로 정쟁에 개입한 꼴"이라고 비판했다.

경향은 국정원의 명예를 위해 회담록을 결정했다는 이유에 대해서도 "국정원의 명예를 위해선 국가 기밀도, 국익도 뒷전으로 미룰 수 있다는 인식인 셈"이라고 보도했다.

국정원 사건 국정조사 전격 합의 배경은?

새누리당이 전격적으로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에 대해 국정조사에 합의를 한 것도 이 같은 부정적 여론을 반영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윤상현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엔엘엘 공개 문제가 불거진 이후 새누리당이 국정원을 두둔하고, 국정조사를 피하려한다는 오해를 사고 있었다”며 “더 이상 전제조건을 고집할 경우 뭔가 꿀리는 게 있다는 인상을 줄 우려가 있어 결단을 내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국정조사 문제로 야당과 갈등을 빚을 경우 6월 국회 파행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면서 새누리당이 국정조사를 수용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25일 오전까지도 민주당은 48시간 내에 국정원 국정조사에 합의하지 않으면 의사일정 전면 거부, 본회의와 상임위 불참, 장외투쟁 등을 불사하겠다고 경고한 상태였다고 한겨레는 전했다.
 

   
▲ 경향 5면
 

다만, 국정조사 실시까지 의제와 증인채택 문제를 놓고 또다시 갈등이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 새누리당은 국정원 여직원 인권 문제와 매관매직 문제를 의제로 넣자고 주장하고 있지만 야당은 이에 반대하면서 '박원순 서울시장 제압 문건' 등 또다른 국정원 정치 개입 의혹도 국정조사에서 다루자는 입장이다.

여야는 26일 국정조사 요구서를 제출하고 27일 본회의에서 채택한 뒤 오는 7월 2일 국회 본회의에서 국정조사 계획서를 처리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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