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체제 도입하자는 건데 왜 ‘민영화’라고 비판하는 겁니까?” 이 질문으로 시작한다. 정부는 철도, 전력, 가스부문에서 경쟁체제를 도입했거나 이를 추진하고 있다. 영리병원과 메디텔은 이미 법안이 통과돼 들어와 있다. 상하수도는 지방자치단체가 운영을 책임지던 방식에서 지자체별로 수자원공사 등과 위탁계약을 맺는 추세다.

민영화에 반대하는 노동조합,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하나 같이 “경쟁체제 도입은 민영화 우회로”라고 지적한다. 영국과 미국의 실패를 예로 든다. 실패한 민영화 사례는 가까이에 있다. 한국통신, 현 KT다. 정부는 KT를 민영화한 뒤 시장에 내맡겼다. 주주는 배당금을 챙겼지만 노동자들은 절반 정도 줄었다. 이제 통신요금 인상을 견제할 ‘공적 장치’는 없다.

마지막 질문은 이렇다. “막을 수 있는 겁니까?” 비슷한 대답이 돌아온다. “지금 상황이라면 절대 못 막는다.” 1998년 IMF와 함께 등장한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이 시작한 민영화는 이명박 정부의 공기업 선진화, 박근혜 정부의 공공부문 합리화로 이어진다. 미디어오늘이 공공부문 민영화 현황과 쟁점을 짚는다. /편집자주

A식당에는 메뉴가 a, b, c 세 가지 있다. 이중 b와 c는 a의 반값이지만 두 시간 정도 늦게 나온다. 품이 많이 들기도 하고 손님들이 요구해 울며 겨자 먹기로 파는 메뉴다. 옆 골목에 개업을 준비 중인 B식당은 a메뉴 하나만 차릴 계획이다. 저렴한 식사가 필요한 서민은 A식당 앞에 줄을 서겠지만 a메뉴를 찾는 시민들은 B식당으로 이동하게 된다.

국토교통부가 철도 경쟁체제 일환으로 수서발 KTX를 운영하는 제 2의 법인을 만들 계획이다. 이 법인에는 철도공사(이하 코레일)가 30% 출자하고, 나머지 70%는 연기금 등 공적 자금이 재무적 투자자로 참여한다. 이 70%는 경영에 직접 개입하지 못하고 배당만 받는다. 코레일도 직접적인 경영 개입을 하지 못하게 하는 독립적 경영구조다.

국토부는 대한항공이 진에어와 같은 저가항공사를 운영하고, 아시아나항공이 에어부산을 자회사로 두면서 서로 경쟁해 시민들의 편익이 커진 사례를 언급한다. 국토부는 고속열차만 운영하는 제 2법인과 이것저것 다 하는 철도공사가 경쟁하면서 윈윈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수서발 KTX는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코레일의 KTX에 비해 요금이 10% 정도 싸다”는 것이 국토부의 설명이다. 이를 위해 국토부는 건설부채 원리금을 50년 내 상환하도록 했다. 현행 70% 수준의 유지보수 비율을 50%까지 낮춰 선로사용료도 인하하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수서발 KTX 가격은 코레일의 서울역발 KTX보다 저렴할 가능성이 높다.

식당의 경우로 돌아가서 생각해보자. A식당 코레일은 a(KTX)의 값을 내리기 위해 b(새마을호)와 c(무궁화호) 메뉴를 포기할 가능성이 높다. 2005년 코레일은 KTX 덕에 1395억 원의 이익을 얻었고, 2011년에는 이 이익은 4686억 원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일반열차의 적자규모는 5818억 원, 6443억 원이다.

국토부 신광화 철도운영과장은 지난 19일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 참석해 경쟁체제 도입으로 1128억 원의 요금인하 효과가 있고, 1422억 원의 선로사용료를 추가로 걷는 등 총 6237억 원의 경제효과가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 말대로 KTX 가격이 내려갈 가능성은 있다. 정부는 제 2법인이 지불해야 할 선료사용료를 장기간에 걸쳐 갚도록 하면서 KTX로 내는 수익을 조금 줄이라고 주문할 수 있다. 여기까지는 국토부의 말이 맞다.

그런데 시민들이 놓치고 있는 부분은 경쟁체제로 인한 고속열차 가격 인하는 ‘열차 일반의 요금 인상’ 발판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코레일은 KTX를 두고 제 2법인과 경쟁해야 할 처지에 놓인다. 이런 상황에서 코레일은 일반열차의 빈도를 줄이든가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게 된다. 2010년 기준 코레일 일반열차의 원가보상률은 49.7%에 불과하다. 이에 반해 KTX의 원가보상율은 106.7%이다. 코레일이 KTX 가격을 낮추려면 일반열차를 줄이고 KTX 배차를 늘리거나 일반열차 가격을 올리는 방법뿐이다.

   
 
 
문제는 여기서 생긴다. 수서역 근처에 사는 서울·경기지역 시민은 서울역 KTX를 탈 이유가 없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윤순철 사무처장에 따르면 현재 KTX 수익의 80%가 수도권 승하차 고객에게서 발생한다. 서울·용산역 이용고객 중 서울 강남, 서초, 송파, 강동, 분당권 고객이 전체 30% 수준이다.

이를 두고 부경대 경제학부 이영수 박사는 “철도교통의 특성상 수서발 KTX 노선도 기존 고속철을 이용하던 강남이나 수도권 동남부 지역의 수요를 흡수하면서 경쟁보다는 지역독점체제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사회공공연구소 박흥수 객원연구위원은 “세계 어느 나라도 주요 간선 고속철도에 제 3자 진입을 전제로 정책을 세우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토부가 벤치마킹한 독일도 마찬가지다. 독일은 ‘시설은 철도시설공단에, 운영은 코레일로 나눠 상하차를 분리하고 있는 한국과 달리 상하통합형 공영철도다. 공기업의 자회사가 주요 노선을 운영하고, 운영/유지보수 등 업무를 나눴지만 간선 경쟁은 없다.

박흥수 위원은 국토부 계획에 대해 ”공기업도 사기업도 아닌 유령회사가 고속철도를 운영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라며 ”비효율적인 공기업에 철도를 맡겨서는 안 되고 민영화는 아니라는 국토부의 모순된 주장이 괴이한 모델을 탄생시켰다“고 지적했다.

민주노총 우문숙 대외협력국장은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연기금은 언제든지 정부가 운영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팔 수 있다”면서 “국토부 계획은 민간에게 길을 열어주기 위한 기초작업을 하는 것과 같다”고 주장했다.

민영화 우회로라는 비판과 함께 한미FTA 래칫(역진방지) 조항에 의해 되돌릴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영수 박사에 따르면, 한미FTA는 2005년 6월30일 이전 건설된 철도 노선에 대해 철도 개방을 유보하고 있지만 수서발 KTX를 제 2법인이 맡게 되면 이 조항은 무력화될 수 있다. “기존 노선마저 미국에 개방하는 꼴이 된다”는 이야기다.

민영화론자들은 그동안 영국과 독일을 이야기해 왔다. ‘영국은 경쟁체제 도입 뒤 만성적인 재정적자를 해소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그런데 민영화 이전인 1990년부터 1995년까지 영국정부의 철도산업 지원금은 24억 파운드이었다. 민영화 뒤 2005년부터 2010년 지원금은 54억 파운드로 2배 정도 늘었다. 요금은 배로 뛰었다. 박흥수 위원은 ”40분의 출퇴근 거리에 연간 500만 원 이상의 비용을 지불하게 만드는 철도의 시작점은 경쟁체제 도입이었다“고 설명했다.

한편 철도 경쟁체제 도입으로 철도산업은 구조조정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국토부는 코레일의 적자 노선을 민간에 개방한다고 밝혔다. 막대한 보조금 없이 이 노선은 폐기처분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 적자노선은 22개. 2007년 3만2092명이었다가 지난해 2만7866명이 된 코레일 노동자 정원은 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장기적으로 복수의 자회사로 분할되면 대규모 구조조정 또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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