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이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2차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전문을 24일 공개했다. 국정원은 “지난 6년간 NLL 관련 내용 상당부분이 언론보도를 통해 공개돼 있어 비밀문서로 지속해야 할 가치도 상실했다”며 회의록을 일반문서로 재분류한 뒤 A4용지 103쪽 분량의 전문과 A4용지 8쪽의 발췌본을 국회 정보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에게 전달했다.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은 국정원의 회의록 공개 자체가 불법이라고 지적했지만 조선일보 등 다른 일간지는 회의록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발언이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번 회의록 공개에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해서도 엇갈리는 보도가 나왔다.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은 “국정원의 발췌본에 노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은 없다”고 주장했지만, 중앙일보 등은 “사실상 포기발언으로 봐야 한다”는 데 무게를 실었다.

다음은 전국종합일간지 1면 머리기사다.

경향신문 <국정원 ‘정상 회의록’ 무단 공개…정치‧외교적 파장>
국민일보 <盧 “NLL 바꿔야, 金위원장과 인식 같아 안보 지도 위에 평화경제 지도 그려보자”>
동아일보 <盧 “NLL 바꿔야…위원장님과 같은 인식”>
서울신문 <盧 “NLL 바꿔야…평화경제지도로 덮어 그리자”>
세계일보 <盧 “NLL 바뀌어야 한다” 金 “쌍방이 법 포기 발표하자”>
조선일보 <盧 “괴물 NLL 바꿔야…金위원장님과 인식 같아”>
중앙일보 <“NLL 바꿔야…난 위원장님과 인식 같아>
한겨레 <국정원, 무단으로 ‘대화록 비밀해제…공개 강행>
한국일보 <‘정상회담 대화록’ 전문 공개…메가톤 폭풍>

국정원의 회의록 공개 ‘꼼수’와 불법 논란…조선일보는 “공개 정당하다”

   
▲ 경향신문 1면 기사.
 
경향신문은 “정상 간 회의록을 비밀로 묶어 공개하지 못하도록 한 규정과 관행을 무시한 데다 야당과의 합의절차도 없이 단독으로 공개를 강행했다”며 이번 회의록 공개를 두고 “국정원이 국가 정보기관으로서의 임무를 저버리고 정치개입 진상을 밝히라는 여론을 덮기 위해 무리수를 뒀다”고 보도했다.

경향신문은 “이 발췌본은 노 전 대통령과 김 위원장 발언이 단속적으로 나열돼 있어 정확한 발언의 취지를 파악하기 어렵게 돼 있다”며 “노 전 대통령의 발언 중 중요한 부분이 아닌 데도 자극적 표현을 중심으로 구성돼 있어 의도적으로 그를 흠집내려는 목적으로 작성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국가정보원이 해당 회의록은 대통령지정기록물이 아니라 공공기록물이라며 일반문서로 재분류했다. 그러나 해당 회의록을 대통령지정기록물로 보는 시각도 많다. 대통령지정기록물이라면 국정원의 공개는 법 위반”이라고 밝혔다.

한겨레신문 역시 “국정원이 보관중인 대화록은 국가기록원에 있는 원본과 같이 1급 비밀문서인 ‘대통령 지정기록물’로 봐야 한다는 게 관련 전문가들 다수의 견해여서 국정원의 비밀해제·일반공개는 불법”이라고 보도한 뒤 “정상회담 대화록이 대화 상대방과 사전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공개됨에 따라 남북관계를 비롯한 외교적 파장도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 한겨레신문 1면 기사.
 
국민일보의 분석 또한 눈에 띄었다. 이 신문은 국정원의 대화록 공개를 두고 “국정원은 대화록 공개를 결정하면서 크게 두 가지 이유를 내세웠다. 현 시점에서는 대화록이 안보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지 않으며, 불필요한 국론 분열을 막기 위해서다. 그러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발언이 공개될 경우 북한이 강력 반발하고 한반도 안보 상황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또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발언 등이 공개될 경우 논란이 그치기는커녕 발언 맥락 등을 놓고 보수와 진보가 더욱 극심하게 충돌할 가능성이 높다. 국정원이 밝힌 이유만으로는 ‘기밀을 유지할 국정원이 앞서서 기밀을 해제하겠다고 나선’ 배경이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반면 다른 언론들은 이 같은 지적에 인색해 관련 내용을 찾을 수 없었다. 조선일보는 국가기록원 산하 대통령기록관 관계자 말을 인용해 “현 법령상 대통령 지정기록물인지 공공기록물인지는 생산 또는 접수를 누가 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며 “해당 자료의 생산처와 접수처가 어디로 돼 있는지 확인해야 정확히 알 수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봤을 때 공공기관인 국정원이 그 자료를 보관하고 있다고 하면 그 자료를 생산 혹은 접수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공공기록물일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보도했다.

정상회담 회의록 ‘발췌’ 내용 두고도 엇갈리는 해석

국정원이 공개한 A4용지 103쪽 분량의 전문과 A4용지 8쪽의 발췌본 내용을 두고도 보도가 엇갈리고 있다. 경향신문은 정상회담 당시 청와대 연설기획비서관이었던 김경수 노무현재단 봉하사업국장의 발언을 인용해 “당시 관계자들의 기억, 메모, 녹음기록 등에 비춰볼 때 다른 부분이 있어 100% 믿을 수 없다”면서 “노 전 대통령의 ‘NLL은 바꿔야 합니다’라는 표현 역시 NLL 자체를 건드려서는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에 서해평화협력지대를 갖고 해결하자는 취지의 발언”이라고 설명했다.

이 신문은 또 “민주당이 요구한 대화록은 대통령기록물보관소에 있는 원본이다. 국정원에 보관된 정상회담 대화록 실체를 신뢰할 수 없다는 이유 때문이다”라고 전하며 발췌본의 짜깁기 의혹을 제기했다. 발췌본에는 노 전 대통령이 NLL을 포기했다는 기록이 없는데, 새누리당 정보위 의원들은 지난 20일 “NLL을 포기한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한겨레신문 또한 “2007년 정상회담 당시 노무현 대통령을 보좌했던 인사들은 대화록 발췌본에 대해 국가기록원에 보낸 기록과 100% 일치하지 않는다며 국정원의 조작 가능성을 거론했다”고 보도했다. 김경수 전 비서관은 한겨레와 통화에서 “진위여부를 떠나 오늘 공개된 발췌본 내용만 보더라도 노 대통령은 NLL을 포기하겠다는 게 아니라 서해 평화협력지대 방안으로 김 위원장을 설득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조선일보는 노 전 대통령이 “NLL이라는 것이 이상하게 생겨 가지고, 무슨 괴물처럼 함부로 못 건드리는 물건이 돼 있다. 나는 위원장님하고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NLL은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고 머리기사에서 전한 뒤 회의록 내용을 두고 “당시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무효화하고 우리 측에 극히 불리한 공동어로구역 설정 문제가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에 진지하게 논의됐음을 보여준다”고 보도했다.

   
▲ 중앙일보 1면 기사.
 
중앙일보는 “노 대통령의 언급은 NLL 포기 발언으로 보기에 충분하다는 게 정부 당국과 전문가들의 지적”이라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김정일이 언급한 북측 해상경계선은 1999년 북한 군부가 일방적으로 선포한 것이다. 우리 영토인 백령도 등 서해 5도를 북한 수역에 포함시키는 수용할 수 없는 주장이다. 그런데 이 선과 NLL 사이 수역을 평화수역으로 만들자는 김정일의 제의에 노 전 대통령이 의기투합해버린 것”이라며 “마치 일본이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우기는 걸 인정해 독도를 한일 양국이 공동 소유하는 섬으로 만들자고 수용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김 위원장이 북한이 주장해온 해상경계선과 NLL 사이를 공동어로구역 또는 평화수역으로 하자는 데 대해 노 대통령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나타나 논란이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군 소식통을 인용해 “당시 논의된 대로 공동어로구역이 NLL과 북측이 주장한 해상경계선 사이에 설정됐다면 북 어선이나 어선을 위장한 선박들이 연평도 남쪽 수역 등에서도 조업이 가능해져 경계 태세에 상당한 문제를 노출시키고 혼란을 초래했을 것”이라 밝혔다.

국민일보는 “내용은 공개됐지만 결국은 여야가 재차 문구를 둘러싸고 제각각 해석을 내놓으며 2차 격돌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국정원 보관본이 진본이냐는 문제는 재차 뜨거운 이슈가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국정원 회의록 공개 배경 두고도 다른 분석 나와

국정원의 회의록 공개 배경을 놓고도 엇갈리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국민일보는 “국정원이 청와대 등 여권 지도부와 사전에 조율한 뒤 대화록 공개를 결정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라고 전한 뒤 “국정원은 원세훈 전 원장 시절 연루된 대선·정치 개입 의혹에 시달리면서 야당으로부터는 국정조사 압력을 받고 있다. 여당 내에서는 대대적인 개혁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때문에 국정원이 정치권을 향해 더 이상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라고 해석했다.

   
▲ 조선일보 1면 기사.
 
조선일보는 국정원의 회의록 공개 배경을 두고 “평소 군인정신이 투철해 고지식하다는 평까지 듣는 남재준 국정원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 분석했다. 이 신문은 국정원 관계자 멘트를 인용해 “여직원 댓글에 이어 NLL 포기 논란까지 재차 불거지면서 업무에 심각한 차질을 빚는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것”이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여야는 최근 국정원 댓글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에 사실상 합의했다. 여기에 더해 'NLL 포기' 논란에 대한 국정조사까지 거론되면서 국정원 입장에서는 자칫 '더블 국정조사'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 몰리게 됐다”고 전한 뒤 야권 관계자 말을 인용해 “국정원이 먼저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공개함으로써 '공'을 다시 국회로 넘기는 효과를 노린 것 같다”고 했다.

동아일보는 이번 공개를 두고 “더 이상 야당에 끌려가서는 안 된다는 여권 내 강경론과 남북 간 비밀주의를 경계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의지, 정공법을 택한 남재준 국정원장의 뚝심 등 삼박자가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풀이했다.

주목할 만한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개입 여부다. 동아일보는 “박근혜 대통령이 대화록 공개에 힘을 실어줬다”고 보도한 반면 경향신문은 “청와대가 국정원의 결정이라고 선을 그었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박 대통령이 대화록 공개에 힘을 실어준 배경으로 “여당이 주장하는 노 전 대통령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 의혹과 야당이 국정조사를 요구하는 국정원 댓글 사건을 동시에 털고 가자는 의미”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NLL사안과 국정원 선거개입 사안은 전혀 별개의 것이어서 동시에 털고 갈 수 없다.

한편 조선일보는 이날 사설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집중적으로 비판했다. 이 신문은 “국정원이 만든 대화록을 보고서는 노 전 대통령이 그 자리에서 지키려 한 국익은 과연 무엇이었는지, 대한민국 국가원수로서 최소한의 품위를 지켰는지를 심각하게 의심할 수밖에 없다”며 “노 전 대통령이 미리 준비해간 모두 발언을 제외하면 국익과 품위는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웠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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