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시사매거진 2580>에서 방송될 예정이었던 ‘국정원 선거개입 의혹’ 기사가 결국 불방됐다. 관련 프로그램 제작진들은 불방을 지시한 심원택 시사제작 2부장의 교체를 요구했다. 
 
통상 세 꼭지의 기사로 구성되는 <시사매거진 2580>은 그러나 23일자 방송에서는 ‘검은 먼지의 공포’, ‘조합도 모르는 재건축’ 등 두 개의 기사밖에 나오지 않았다. 국정원의 선거개입 의혹을 다룬 ‘국정원에 무슨 일이?’ 편의 방송이 취소됐기 때문이다. 
 
해당 프로그램의 취재기자와 카메라기자 일동이 24일 낸 성명에 따르면 심원택 부장은 ‘국정원에 무슨 일이?’아이템을 담당한 데스크와 취재기자에게 국정원 선거개입 의혹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기사 내용에 반영할 것을 요구했다. 해당 기사의 초안은 21일 새벽에 송고됐지만 심원택 부장은 데스크를 담당하고 있는 기자를 불러 “이번 사안의 본질은 전·현직 국정원 직원과 민주당이 결탁한 더러운 정치공작이다. 기자의 시각과 기자의 멘트로 이 부분을 명확히 지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 부장은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 원장을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한 검찰 수사 결과에 대해서도 자신의 의견을 기사에 반영할 것을 요구했다. 심 부장은 “검찰 수사도 믿을 수 없다. 편향된 검찰이 정치적 의도로 편파 수사를 했으니 그 점을 기자의 시각으로 지적해야 한다”며 이런 내용을 기사에 포함시키지 않으면 해당 아이템을 방송할 수 없다고 했다. 
 
   
MBC 시사매거진 2580(사진 캡쳐)
 
이에 대해 데스크를 맡고 있는 기자는 “정치적으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사안에서 기자가 주관적으로 멘트하는 것은 위험하다. 기사에 이미 여야의 인터뷰로 양측 주장이 균형 있게 담겨 있다”고 항의했다. 그러나 심 부장은 ‘경찰의 수사 은폐와 조작’과 ‘원세훈 전 원장의 간부회의 발언’ 부분을 통째로 삭제해 13분 짜리 기사를 6분으로 만든 뒤 이대로 제작하라고 요구했다. 
 
데스크 및 해당 아이템의 취재기자는 국정원 선거개입 의혹에 대한 기사를 내보내기 위해 “사건의 본질인 민주당 정치공작을 기사의 맨위로 올려라”(심원택)는 요구에 따라 기사 순서를 바꿨고, 서울경찰청의 증거 은폐 과정이 담긴 녹취록 부분과 원세훈 전 원장 지시발언 부분 역시 대폭 줄였다. 기사를 6~7차례 수정해 10분짜리 기사로 심 부장에게 제출했으나 여전히 “방송할 수 없다”는 답변만 받았다. 
 
심 부장은 이 과정에서 시사제작국장과도 이견을 보였다. 이현숙 시사제작국장과 시사제작국 팩트체크 팀장이 일부 표현을 바꾸고 기사를 줄인 8분36초짜리 중재안을 냈다. 제작진은 “이 과정에서 심지어 검찰 수사결과 발표문을 그대로 인용한 ‘은폐’, ‘조작’, ‘허위’라는 표현도 모두 삭제됐지만 데스크는 파행을 막기 위해 이 안도 수용했다”고 밝혔다. 
 
심 부장은 중재안 역시 거부했다. 30초 분량으로 줄인 경찰의 증거은폐와 허위 발표에 대한 검찰 수사결과에 관한 부분을 완전히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 이에 이현숙 시사제작국장은 “이렇게까지 중재했는데도 방송이 안 나가면 부장, 차장 모두 문제가 있다. 불방되면 그대로 보고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심 부장은 이 과정에서 취재 기자에게 모욕적인 발언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심 부장은 “편향적인 기사를 쓴 기사는 믿을 수 없다”, “지난해 파업에 참여한 기자들은 이런 아이템을 할 자격이 없다. 배후가 누구인지 안다”고말 했다. 
 
   
여의도 MBC 사옥.
이치열 기자 truth710@
 
해당 제작진들은 국정원 아이템의 선정단계에서부터 심 부장이 이를 가로막았다고 비판했다. 4주 전 관련 아이템이 제출됐지만 심 부장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을 MBC가 다룰 수 없다”며 이를 막았다. 제작진들이 이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자 돌연 심 부장은 “생각이 바뀌었다”며 취재를 허가했다. 제작진들은 “그러더니 정작 기사가 작성되자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개인의 편향된 주관을 담을 것을 강요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제작진들은 이번 사태에 대해 “심 부장의 이런 전횡은 처음이 아니다. 이미 여러 차례 상식 밖의 폭언과 독신, 극히 편향적인 주관으로 기사를 왜곡해 데스크, 기자들과 마찰을 빚어왔다”고 했다. 
 
이어 “<시사매거진 2580> 기자들은 심원택 부장과 함께 일할 수 없다”면서 “이미 심원택 부장과 차장 이하 기자들 사이에 불신은 극에 달했다. 이런 비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부장을 교체하든지, 아니면 데스크와 기자들 전원을 교체하는 것이 맞다”고 했다. 
 
제작진들은 “20년 가까운 역사를 이어온 대한민국 간판 시사프로그램이 최소한의 상식과 고정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비상식과 독선으로 회사의 지휘계통을 무시한 심원택 부장을 반드시 교체해줄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시사매거진 2580 취재기자인 이호찬 기자는 23일 밤 자신의 트위터에 “오늘자 <시사매거진 2580>, 한 꼭지가 통째로 빠진 채 30분 만에 끝이 났다. 불방 역시 역사를 기록한다고 할 수 있겠지만, 언제까지 치욕의 역사만 기록해야 하는지 암담하다”고 남기기도 했다.  
 
이현숙 시사제작국장은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방송을 내기 위해 부서장이 팩트, 균형성과 객관성을 체크하다가 불방됐다. 마지막에 방송 안 된 것이 아쉽지만 서로 방송을 내기 위한 치열한 노력이 있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국장은 또한 “(심 부장이 국장의 중재를) 무시한 것은 아니다. 방송여부는 일선에서 판단한다”고 했다. 이 국장은 또한 심 부장의 판단에 대해 “(옳고 그른지 여부는)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심 부장은 "앞으로는 이런 일로 자신에게 전화하지 말라"며 이번 사태에 대한 답변을 피했다.  

심 부장은 지난해에도 안철수 후보에 대한 취재, 4대강 사업에 참여한 업체들의 담합과 비자금 조성, NLL 심층 취재 등의 아이템에 대해 취재 불가 판정을 해 <시사매거진 2580> 제작진으로부터 사퇴 요구를 받았다.

해당 기자들은 당시 "사회의 부조리와 비리에 대한 고발을 본령으로 삼아온 프로그램이 정작 정치 권력과 거대 자본의 횡포에 대한 비판 보도가 거세되고 있다"면서 "현재 2580에서 기자적 양심과 상식에 입각한 가치 판단이 불가능한 사람, 모든 기사에 왜곡된 정치적 잣대를 들이대는 사람은 심원택 부장 한 사람"이라고 비판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는 이번 사퇴에 대해 민실위 특보 등으로 공식 문제제기할 계획이다. MBC본부의 박재훈 홍보국장은 "심원택 부장은 계속 '편향'이라는 말을 언급하는데, 이번 기사에 대해 시사제작국장까지 나서서 중재하려고 했다. 사측 조차 이 기사의 편향성에 대해 정확한 판단 근거가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국장은 이어 "이번 사태의 책임은 명백히 사측에 있다. MBC본부는 이번 사태의 책임을 끝까지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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