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가 해묵은 ‘운동권’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한 채 새누리당의 정략적 의제를 쫒아가는 ‘정파지’의 모습을 재연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은 최근 ‘국가정보원 선거개입’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그러자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은 17일 법사위에서 이번 수사를 맡았던 진 모 주임 검사가 운동권 출신으로 사회진보연대에 정기 후원금 5만원을 내는 회원이라며 유치한 색깔론을 펼쳤다. 다수 언론이 김 의원을 비판했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달랐다. 조선일보 류정 기자는 19일 <‘운동권’ 검사의 어떤 수사>라는 제목의 기자수첩에서 “대학시절 학생운동을 했다고 공안 검사를 하지 말라는 법도 없고, 이번처럼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을 맡지 말라는 법도 없다. 그러나 검사로 임관한 뒤까지 정치성 짙은 단체에 꼬박꼬박 후원금을 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고 적었다.

   
▲ 조선일보 19일자 30면 기자수첩.
 
류정 기자는 “검찰청법은 검사가 정치 운동에 관여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꼭 법을 따지지 않더라도, 검사가 정치적 편향성이 짙은 단체와 관련을 맺는 것은 언제든 수사의 공정성 시비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이번 ‘운동권 출신 검사’ 문제는 수사팀을 꾸릴 때부터 논란의 씨앗을 뿌려 놓은 셈이 됐다”고 주장했다.

주장을 종합하면 과거 운동권 경력이 문제되지는 않지만, 검사 임관 뒤에도 운동단체를 후원한 것은 문제라는 것이다. 과거에 학생운동은 할 수 있지만 검사가 된 이후에 정치색을 감추거나 또는 없애지 않고 매달 5만원을 운동단체 계좌로 보낸 것은 불공정하다는 논리다.

전 정부의 국가정보원장이 대선기간 동안 선거법 위반 행위를 했다는 검찰 수사결과가 나온 현 상황에서, 국가기관이 연루된 선거개입 논란의 전말을 밝히는 데 주력하는 것이 권력의 감시견인 언론과 기자가 해야할 사명이다. 그러나 조선일보 류정 기자는 ‘후원금 5만원 때문에 수사결과의 공정성을 밑을 수 없게 됐다’는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의 정파적 ‘색깔론’에 편승해 기자의 상식을 저버렸다.

한 검찰 관계자는 19일 한겨레신문과 인터뷰에서 “수사팀 전원이 내놓은 결과물을 진 검사가 다듬어 공소장을 쓴 것일 뿐이다. 공소장도 공안부 쪽 부장검사가 수시로 검토한 것인데, 도대체 뭘 문제 삼고 싶은 건지 그 의도를 묻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사회진보연대 관계자는 19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검찰 내에서도 후원을 두고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들었다”며 “이번 논란은 새누리당과 조선일보의 전형적인 종북몰이”라고 비판했다.

이 단체에 후원금을 지원하는 것과 국정원 수사의 공정성 간에는 그 어떠한 연관관계도 찾을 수 없다. 만약 정치색이 있는 곳을 지원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면, 검사를 포함한 공무원들은 정치적으로 식물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과 같다. 이는 누구보다 사회문제의 본질을 인식하고 공정하게 사안을 처리해야 할 공무원들에게 옳고그름을 판단하는 근거 자체를 없애라는 불가능한 요구를 하고 있는 것과 같다.

류정 기자는 기자수첩에서 “이 사건을 보면서 한 원로 법조인의 말이 떠올랐다. ‘실체적 진실로 정의를 세우고 싶다면, 보이는 정의도 바로 세워야 한다”고 적었다. 검사임용 뒤엔 지금까지 내던 단체 후원금을 모두 정리해야 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운동권 출신은 공안 수사에서 제외하는 것이 검찰의 정의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류 기자가 밝힌 정의가 일반 국민의 상식과는 동 떨어져 있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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