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한국일보 사측이 편집국을 폐쇄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나자 언론이 이를 일제히 보도했다.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은 17일자 지면에서 한국일보 장재구 회장과 경영진을 비판하며 노조가 제기한 장 회장의 배임혐의에 대해 검찰이 엄중 수사할 것을 촉구했다.

KBS·SBS·MBC 등 방송뉴스도 한국일보 사태를 다뤘으며 중앙·동아일보 등 보수언론은 이번 사건을 노사갈등으로 바라봤다. 조선일보는 종합일간지 가운데 17일자 지면에서 한국일보 사태를 유일하게 다루지 않았다. 대신 16일자 온라인판에서 사측의 입장을 상대적으로 상세히 전했다.

한국일보 사측은 지난 15일 저녁 15명의 용역을 불러 편집국을 폐쇄하고, 사측이 임명한 편집국장 등의 지시에 따른다는 내용의 ‘근로제공 확약서’를 쓴 기자들만 출입시키겠다고 통보했다. 이에 반발하고 있는 한국일보 기자 130여명은 기사작성 수단을 모두 빼앗긴 상태다. 이들은 사내 전산 시스템에 접속하면 현재 퇴사자 신분으로 뜨고 있다.

신문과 방송은 지난 16일과 17일 이번 초유의 사태를 일제히 보도했다. KBS는 16일 <뉴스9>에서 “한국일보 노사갈등이 표면화된 건 지난 4월말, 노조 비대위가 사주인 장재구 회장이 회사 돈 2백억 원을 개인 빚을 갚는데 썼다며 검찰에 고발하면서부터”라며 노사입장차를 중립적으로 전했다.

   
▲ SBS '8뉴스' 16일자 보도.
 
SBS는 16일 <8뉴스>에서 “통제된 편집국은 현재, 기자가 아닌 사측이 동원한 수십 명의 용역업체 직원들이 점거하고 있다. 사측은 사내 전산 시스템에 등록된 기자 180여 명의 접속 아이디도 삭제해 기사작성을 원천 봉쇄했다”며 현 상황을 비교적 상세히 전했다. 17일 보도에선 “사측인사와 용역업체 직원들이 편집국으로 몰려와 기자들을 강제로 내쫓았다. 어제 한국일보 기자 120여 명이 2차례 편집국 진입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고 보도했다.

MBC는 16일 메인뉴스에서 이번 사태를 다루지 않았다. 대신 17일 오전 <뉴스투데이>에서 “노사 갈등은 지난 2011년 장재구 회장이 개인 빚을 갚기 위해 서울 중학동 사옥 재입주권을 포기했다는 노조 측 주장으로 촉발됐다”며 한국일보 사태를 노사갈등으로 바라봤다.

보수신문 역시 비슷했다. <노사 이전투구…편집국 폐쇄 사태>(국민일보), <한국일보 사측, 용역 동원 편집국 봉쇄>(동아일보), <노사갈등 한국일보 편집국 봉쇄 사태>(세계일보), <한국일보 편집국 폐쇄 사측 “지면 축소 발행”>(중앙일보) 등의 기사는 대부분 편집국 폐쇄라는 사건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노사갈등의 관점에서 기계적으로 입장을 전달하는데만 그쳤다.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은 이번 사태를 언론 자유가 침해된 언론 전체의 문제로 보고 사설까지 내보내며 장재구 회장 측을 비판했다. 경향신문은 17일 “사측이 일방적으로 내민 확약서에 서명하지 않은 기자는 지면 제작에 일절 간여할 수 없도록 했다.…한국일보는 하종오 논설위원을 다시 편집국장 직무대행에 임명했다. 지난달 8일 기자들이 압도적인 반대로 임명동의안을 부결시킨 하 위원을 재차 편집국장 자리에 앉혀 기자들과의 ‘전면전’을 선포한 셈이다”라고 보도했다.

   
▲ 경향신문 17일자 사설.
 
경향신문은 사설에서 “일하던 기자를 편집국 밖으로 몰아낸 것은 한국 언론사상 초유의 일이다. 유신체제하인 1975년 3월17일 새벽 편집국에서 농성 중이던 동아일보 기자들이 술취한 폭도들에게 끌려나오던 장면이 떠오른다”고 비판했다. 이 신문은 “(사측은) 멀쩡히 일하는 기자들의 편집국 출입을 차단하고 기사를 작성·송고하는 전산시스템인 집배신을 폐쇄했을 뿐 아니라 기자들의 접속 아이디마저 삭제했다. 언론 자유와 편집권 독립, 기자의 취재권을 말하기조차 민망한 일”이라고 지적한 뒤 “한국일보 사태가 언론사에 오점으로 기록되지 않기 위해서는 사측의 각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편집국이 열리고 기자들이 복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겨레신문은 “검찰은 한국일보사에 200억 원대의 손해를 끼친 혐의(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의 배임)로 고발된 장재구 회장을 수사 중이다. 하지만 검찰은 고발 뒤 50일이 지났는데도 아직 장 회장을 조사하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겨레신문은 장 회장 측의 편집국 폐쇄를 두고 “반발하는 직원들을 솎아내고 새로운 신문을 만들겠다는 장 회장의 의지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한 뒤 “편집국 출입을 막고 기자들을 선별적으로 받아들이겠다고 한 것은 직장폐쇄에 해당하며, 파업을 하지도 않았는데 직장폐쇄를 한 것은 불법”이라 보도했다.

   
▲ 한겨레신문 3면 기사.
 
한겨레신문은 사설에서 “회사는 기자들에게 근로확약서 서명을 요구했다. 회사가 임명한 편집국장과 부장단의 지시에 따르겠다고 약속하라는 거다. 기자들은 이를 ‘노예계약서’나 ‘충성서약서’라며 거부했다. 자유로운 사고와 비판 정신이 생명인 기자들에게 굴종을 강요했다는 것만으로도 장 회장은 언론사 사주로서의 자격을 의심받기에 충분하다”고 비판했다.

이 신문은 이어 “장 회장이 편집국 폐쇄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은, 수사 결과가 불리하게 나올 것에 대비한 사전 정지 작업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장 회장은 신문이 사주의 독점물이 아님을 명심하고 수사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종합일간지 가운데 17일 지면에서 한국일보 사태를 유일하게 다루지 않았다. 대신 16일자로 조선닷컴에 기사를 올렸다. 해당 기사는 타사 보도에 비해 박진열 한국일보 사장의 입장이 기사 앞부분에서 상세히 전해졌다. 조선일보는 편집국 폐쇄 논란에 대해 “근로제공 의사가 없거나 사내 질서를 문란케 해 신문의 제작을 방해하려는 이에 한해 선별적으로 출입을 제한한 것”이라며 “정상적인 신문 제작에 동참하겠다는 간부나 기자들은 누구나 출입할 수 있다”는 박진열 사장의 입장을 전했다.

이 신문은 이어 용역깡패 동원 비판에 대해 “남대문경찰서에 10명의 시설경비요원을 자진 신고하는 등 적법한 절차를 거쳤고, 실제로 시설경비도 노조의 강성주장에 반대하는 비 편집국 사원들이 중심이 돼서 하고 있다”는 박 사장의 입장을 실었다. 이 신문은 또 서울고용청 관계자의 발언을 인용해 “직장폐쇄가 성립되려면 노조의 파업찬반 투표 등 쟁의 절차가 우선돼야 하는데 이것이 없었기 때문에 지금 상황을 사측의 직장폐쇄라고 볼 수 없다”고 보도해 ‘불법 직장폐쇄’라는 한겨레신문의 보도내용과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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