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청춘의 분출하는 열정을 쏟을 사랑의 대상도, 순수한 열정을 투사할 대상도 가져보지 못한 채, 닭장에 갇혀 모이만을 쪼아야 하는 닭들처럼 오로지 점수만을 높이기 위해 갇혀 있다가 괴물스런 존재가 돼버렸다.” 작가 목수정이 한국에서 ‘일베충’으로 불리는 극단적 넷우익 누리꾼을 두고 한 말이다. 

“한국 진보정당 분열은 목숨 걸고 운동했던 사람들이 운동으로부터 보상을 받고자 한 순간부터 생겨난 균열의 결과다. 운동이 내 인생을 보상해줄 것이라 기대하며 운동하지 말아야 한다. 보상을 원했던 사람들이 진보정당 판을 깬 장본인이다. 지금의 행복과 운동하는 삶을 병행하는 것이 아니라면 운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 목수정이 진보진영을 두고 한 말이다.

비판의 결은 다르다. 하지만 본질은 같다. 일베로 대표되는 넷우익도, 투사의 삶을 살아가는 진보운동가도 자신의 삶이 행복하지 않다면 지금의 삶은 무의미하다. 어떻게 살아야 괴물은 사람이 되고 사람은 사람다운 삶을 살아낼 수 있을까. 지난 5월 28일 프랑스 파리에서 만난 목수정은 프랑스의 사회운동가 스테판 에셀의 삶에 답이 있다고 했다.

목수정은 최근 스테판 에셀의 저서 <멈추지 말고 진보하라>를 한국어로 번역했다. 에셀의 생전 마지막 저서다. 에셀은 이 책에서 자신의 95년 인생을 긍정하며 좋은 삶이었다고 회상한다. 목수정은 “행복의 기준은 목표한 것을 완성하는 것이냐와 신념에 위배되지 않는 삶을 계속 가느냐의 차이다”라고 정의하며 에셀의 행복이 완벽해질 수 있었던 건 운동하는 삶을 통해 신념을 지킨 결과라고 말했다.

   
▲ 작가 목수정. ⓒ허완 기자
 
신념만을 지킨다고 삶이 행복한 것은 아니다. 자기 삶에 대한 믿음이 전제돼야 한다. 에셀은 거대담론에 의존하기보다 ‘지속 가능한 좌파’가 되기 위해 아주 작은 진보에 주목했고, 집회현장에서는 시를 낭송하며 투쟁의 순간을 축제로 만들며 자기 삶을 긍정했다. 그에겐 늘 에너지가 넘쳤고, 그것이 책 <분노하라>의 세계적 성공으로 이어졌다. 불멸의 레지스탕스는 죽기 직전까지 진보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가 자신의 삶의 방향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목수정은 여기서 ‘시’의 힘을 말한다. “에셀은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로부터 애드가 앨런 포우 등의 시를 접하며 문화적으로 풍족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게 붙잡힌 그는 시를 통해 바라봤던 세상의 가치를 파괴하는 현실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로 대표되는 예술은 그에게 상상력을 허락했고, 상상력은 세상에 대한 이상향과 강한 긍정을 만들어냈다. 돌이켜보면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감수성이다. 

예술을 사랑하는 에셀은 금융자본가를 비판하지만 유물론자는 아니었다. 에셀의 적은 이스라엘 정부와 미국의 조지 부시, 프랑스의 사르코지였지만 그는 노동자계급이 아닌 인권이 침해된 모든 사람을 위해 투쟁했다. 목수정은 “계급투쟁이 아니기에 그와 함께하는 연대의 폭은 넓어졌다”며 “그는 편을 가르기보다 측은지심을 말하며 같은 뜻을 가진 최대한 많은 사람들과 함께 어깨를 걸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탁월한 외교관이었다”고 설명했다. 에셀의 직업은 실제로 외교관이었다.

1980년대 한국 노동자들의 투쟁을 이끈 것은 칼 맑스의 자본론이 아닌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이었다. 저항의 밑바닥에는 내 삶과, 내 동료의 삶을 사랑하는 치열한 감성이 있었다. 목수정은 “희로애락의 극단을 고루 경험하게 해주는 사랑의 행로를 관통하며 우린 우리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결국 무엇이 필요한지 알게 된다”고 말했다.

   
▲ 프랑스 파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작가 목수정. ⓒ허완 기자
 
같은 맥락에서 그녀는 한국 사회의 청춘을 두고 “백지를 주면 아무것도 쓰지 못한다.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욕망을 갖는 방법 자체를 잃어버렸다”고 안타까워하며 “사랑을 한다는 것은 욕망을 통해 무언가를 강렬하게 쟁취하는 경험을 준다. 그 경험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건 ‘사랑’인 셈이다. 이는 정치적 성향과 삶의 지향점과 상관없는 공통의 테제다. 에셀의 삶이 평생 뜨거웠던 이유 또한 지치지 않는 사랑이 있어 가능했다. 

그녀는 사랑 외에도 삶의 단단한 진보를 위해 ‘생활좌파’를 제안했다. “혁명을 쟁취한 세력은 구체제를 답습하는 경우가 있다. 결국은 개개인이 이뤄내는 작은 혁명이 더 단단하다. 운동을 직접적으로 하지 않지만 삶에서 진보를 이뤄내는 사람들이 중요하다.” 그녀는 스테판 에셀이 외교관의 삶을 사는 가운데 저항에 나선 것처럼, 운동을 삶의 전부가 아닌 삶을 구성하는 하나의 상징으로 받아들이며 자신의 삶을 긍정하기 위해 집회에 나가고 저항하는 삶의 태도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녀가 예로 든 생활좌파 가운데는 프랑스 극좌정당인 반자본주의신당 대변인 올리비에 브장스노가 있다. 그는 두 번에 걸쳐 대선 후보로 나왔다. 하지만 처음 대선에 나왔던 25세부터 14년이 흐른 지금까지 계속 우편배달부 일을 하고 있다. 노동자투쟁당의 오랜 대선주자이자 대변인이었던 아를레뜨 라기예 역시 평생 정당 활동을 하면서도 16살 때 입사한 은행에서 정년퇴직했다.

프랑스 좌파정당 활동가들에게 정치는 생업이 아니다. 정치활동은 정치적 신념과 열정을 펼치는 장이다. 프랑스 사회단체 또한 상근자가 별로 없다. 그녀는 ‘생활좌파’들이 결국 사회를 변화시킨다고 말하며 조만간 프랑스 생활좌파 수십 명을 만나 그들의 삶과 이야기를 책으로 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녀의 파리에서의 삶도 이제 10년차다. 프랑스에서의 지난 5년은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했다. 사르코지 정부는 교원의 수를 줄이고 병원을 축소했다. 의료보험은 무력화됐다. 동성애자들의 결혼 합법화에 반대하는 우파들은 거리로 나왔다. 목수정은 “동성애 결혼법은 ‘모두를 위한 결혼’이다. 하지만 우파들은 (법을 두고) ‘원숭이와 결혼하라’고 한다”고 말했다. 얼마전 프랑스 좌파 활동가는 우파들에 의해 맞아 죽었다. 프랑스와 한국은 9000Km가 넘는 거리지만, 문제의 본질은 같아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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