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콘서트의 ‘현대레알사전’과 '황해'가 특정 직업군과 출신을 비하했다는 논란에 휘말렸다. 지난 2일 오후 방송된 개그콘서트의 코너 ‘현대 레알 사전’에서 개그맨 박영진은 MC 정범균의 “TV에서 해주는 외국 영화란?”이란 질문에 “입과 말이 따로 노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성우들의 목소리로 대사를 하고 묵음으로 영어대사를 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더빙 대사와 영화 화면이 맞지 않는다는 점을 풍자한 것이다.

방송이 나가자 비난이 쏟아졌다. SNS에는 “애니에 연예인이며 개그맨들 녹음할 때마다 얼마나 한심한 연기가 많았는데, 그럼 그네들도 양심껏 이쪽 영역에서는 손 떼지?”, “성우협회랑 시청자들한테 모두 다 사과해라” 등의 비판 의견이 올라왔다. 개콘 시청자 게시판에도 “성우업계를 풍자한 건지 모르겠지만 비하 발언 같았다” “공중파에서 특정 직업을 폄하한 것은 정말 유감이다” 등의 부정적인 반응이 쏟아졌다. 심지어 현직 성우인 구자형도 자신의 블로그에 “외화더빙을 전문으로 일 하는 사람에 대한 직업적인 모욕”이라는 글을 남겼다.

   
▲ KBS 개그콘서트 ‘현대레알사전’의 한 장면
 

최근 시작된 코너 ‘황해’는 조선족을 비하한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 5월 26일 첫 방송된 ‘황해’는 조선족들의 보이스피싱을 풍자하는 코너이다. 코너에서 조선족들은 매뉴얼대로 전화를 하지만 한국인 같지 않은 말투와 한국 물정에 어두운 사정 때문에 실패한다. 코너가 방송되자 몇몇 시청자들은 “조선족들을 모두 보이스피싱 사기단으로 여기고 비하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제기했다. 조선족 네티즌들이 “연변에 많은 보이스피칭 사장은 다 한국인들”, “한국인이 조선족을 싫어한다고 해서 이런 식으로 조선족 이미지를 굳혀 가면 어떡하나”, “조선족으로 살아가는 것도 서러운데… 정말 씁쓸하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개콘 인기코너로 방송중인 ‘정여사’에도 여성비하를 부추긴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악성민원을 제기하는 소비자(블랙컨슈머)를 풍자하는 이 코너는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이들의 공감을 얻으면서도 왜 하필 블랙컨슈머가 ‘정여사’로 불려야하는지에 대해 비판을 받았다. 개념 없는 운전자들이 ‘김여사’라고 불리는 것과 비슷하게 여성에 대한 안 좋은 이미지를 조장한다는 것이다. 인터넷 커뮤니티나 시청자 게시판에는 “김여사니 뭐니 해서 여성 운전자들이 비하되기도 하는 걸 생각해볼 때, 정여사라고 하면 왠지 그런 성차별적 이미지가 떠오른다”, “남자 개그맨이 굳이 여장을 하면서까지 그것도 하필 내 또래 아줌마로 그리는데, 따라 웃으면서도 끝맛이 씁쓸하다” 등의 의견이 올라오기도 했다. 

하지만 개콘이 특정 직업이나 계층에 대한 비하를 개그소재로 삼아 논란이 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황해’와 '현대레알사전’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SNS에는 “개콘에서는 거의 매 회마다 외모비하라던가 동성애비하라던가 숱하게 쓰인 소재들인데, 비하를 기반으로 움직이는 프로그램에 이제서야 반응 터지는 게 더 웃김”, ”개콘이 소수자들 동성애 등등을 까 내리는 거, 전부터 계속 해오던 건데 왜 이제와서 세삼스럽게 발발 뛰냐“ 등의 의견이 올라왔다.

실제로 지난 2008년 민주언론시민연합(이하 민언련)은 이러한 비하 개그를 이유로 개콘을 ‘올해의 나쁜 프로그램’으로 선정했다. 민언련은 당시 지나친 여성비하 및 외모비하 발언(‘독한 놈들’, 봉숭아학당의 ‘여성학자’, ‘나일출’)을 지적하며 “영향력이 큰 만큼 이 프로그램의 여성비하와 막말, 외모 비하, 가학성에 대해서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자 개그맨 황현희가 연예대상 시상식에서 “모 단체에서 2008 나쁜프로그램으로 <개그콘서트>를 선정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개그맨들이 아이디어 회의를 하는 걸 한 번이라도 보셨으면 이런 선택은 안 하셨을 거라고 생각이 든다”고 말해 개콘의 ‘비하’ 개그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기도 했다.

   
KBS 개그콘서트 ‘황해’의 한 장면
 
이런 ‘비하’ 논란에 대한 반론은 “개그는 개그일 뿐 오해하지 말자”는 것이다. 개그콘서트 서수민 PD는 미디어오늘과 전화통화에서 “비하 의도가 없었기 때문에 비하라 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황해의 경우 범죄행위에 대한 풍자이지 조선족이 주는 아니다. 그렇게 본다면 조직, 도둑, 거지도 나오는데 그것도 다 비하인가”라고 말했다. 이어 “코미디에 언급된 것만 가지고 비하라고 한다면 코미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며 “최근 들어 몇몇 개그소재에 대해 당사자들이 발끈하는 사례가 있는데, 안타까울 뿐이다”라고 덧붙였다.

반면, 개그에 대해서도 비판이 가능하며, 개그는 개그일 뿐이라는 생각에 근거해 사회적 약자나 특정 계층에 대한 ‘비하’를 웃음코드로 사용하는 건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이에 대해 “여성 비하의 경우 PD가 여성PD로 바뀌고, 여러차례 문제제기가 이루어지면서 어느 정도 개선된 면이 있다. 하지만 조선족을 다루는 것을 보았을 때 아직 다문화에 대한 인식은 없는 것 같다”며 “개콘은 SNL이 아니다. 초등학생들도 많이 보는데 교육적인 차원에서라도 더욱 엄격한 잣대가 필요할 것 같다”고 밝혔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미디어오늘과 전화통화에서 “개그콘서트가 문제라기보다 한국사회에 조선족 비하나 여성 비하의 코드가 내재되어 있는 것이 문제”라며 “대중이 웃지 않으면 그런 코너를 만들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개그는 개그일 뿐’이 아니라, 개그는 사회의 욕망의 구조를 아주 정확하게 반영하며 사회의 진실을 보여 준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