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불교 종단인 조계종의 한 사찰에서 법당 재건축 공사를 하던 건설 노동자가 떨어져 숨졌다.

이 노동자는 5층 높이 건물에서 작업을 했음에도 건설사 측은 안전장구 착용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안전시설 설치 의무도 어겨 사고를 방치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사 발주처인 사찰도 안전 관리 소홀을 알고도 묵인해 화를 키운 게 아니냐는 지적을 받고 있다.

유족 보상 문제를 두고도 1차 책임을 가진 하도급업체는 건설근로자재해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았고, 원청 건설사도 건설 경기가 어려워 유족 측이 요구하는 보상금에 맞춰줄 수 없다는 태도다. 이처럼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어 유족들은 공사를 발주한 불광사가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14일 서울 송파구에 있는 불광사에서 대웅전 재건축을 위해 5층 높이 불광법당 외벽에서 돌 장식 부착 작업을 하던 일용직 노동자 홍아무개씨(48)가 발판에서 무게 중심을 잃고 추락했다. 그는 인근 서울아산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을 거뒀다. 공사장 안전규정에 따라 작업자의 안전벨트 착용만 확인했어도 이 같은 불상사는 막을 수 있었다. 결국 이 사고는 작업자의 과실과 함께 건설사의 안전 조치 불이행과 불광사의 총제적인 관리 소홀이 빚은 인재(人災)가 됐다.

안전시설 조치 등 책임을 맡고 있는 원청 건설사인 성일건설(주)에서는 안전벨트를 지급했다고 주장했지만 홍씨는 안전벨트를 착용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더군다나 성일건설 관계자는 “고층 작업 과정에서 추락 방지 시설 중 안전망은 추락 당시 없었고, 안전 난간 등은 공사가 끝나지 않았는 상태에서 철거했다”고 전했다.

홍씨와 현장에서 함께 일하고 있었던 동료와 노동청 감독관 등의 말에 따르면 홍씨가 이날 아슬아슬하게 작업하고 있던 건물 외벽 발판에도 안전 난간대와 추락 방지망은 없었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이 같은 안전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으면 공사를 진행해서는 안 되게 되어 있다.

   
▲ 지난 1월 서울 송파구에 있는 불광사 대웅전 재건축 현장.
 
박대종 서울동부고용지청 산재예방지도과 감독관은 “산업안전보건법에는 안전모 착용과 안전벨트를 어디에다 걸 것인지 등의 구조 조치가 상세하게 설명돼 있다”며 “안전벨트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추락할 수밖에 없었을 테고, 안전 난간대와 추락 방지망이 정확히 설치돼 있었는지는 조사를 통해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노동자를 직접 고용한 하도급업체에서 원청 건설사에 안전장치 설치를 요구했는데도 원청에서 설치하지 않았다면 책임을 물을 수 있다”며 “발주처에서 공정 단축이나 무리한 공법으로 작업을 요구했는지도 조사해 봐야 한다”고 밝혔다.

원청인 성일건설 측도 안전장치 미설치에 대한 일부 과실을 인정했다. 성일건설의 한 관계자는 “원래 공사가 3월 31일까지 끝났어야 하는데 예정보다 조금 늦어져 공정이 90% 정도 진행된 상황에서 안전시설을 철거한 것”이라며 “회사도 과실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지 않고 미진한 부분이 있었다”고 시인했다.

그는 이어 “회사가 책임질 부분이 있다면 경찰서와 노동청 조사를 받고 손해배상 책임을 지겠다”며 “법률적인 손해 사정 기준에 따라 유족과도 원만한 합의가 이뤄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발주처인 불광사의 경우 지난 17일 석가탄신일을 앞두고 공사 단축을 요구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유족 측은 “불광사에서 불과 20~30미터 떨어진 현장에서 어떠한 안전조치 없이 일을 진행했다는 것은 발주처인 불광사와 이를 대신해 현장 지도를 맡고 있는 감리단과 건설회사 3자의 묵인이 없는 한, 일개 하청업체의 직원이 외벽에 매달려 작업을 할 수가 없다”며 “석가탄신일 행사를 3일 앞둔 시점에서 건설사에 암묵의 지시를 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14일 서울 송파구에 있는 불광사에서 대웅전 재건축을 위해 5층 높이 불광법당 외벽에서 돌 장식 부착 작업을 하다 떨어져 숨진 일용직 노동자 홍아무개씨.
 
건설사 측 다른 관계자도 “건축주(불광사) 입장에선 당연히 빨리 공사를 해달라고 원했다”고 밝혔다. 불광사와 건설사, 감리단은 불광법단 재건축 기간 동안 매주 공정 회의를 진행했으며 이를 회주스님 등이 참여하는 명등회의를 통해 보고했다. 불광사와 직접 계약을 맺은 감리단은 현재 시공 중인 불당 재건축 전반을 관리·감독하는 일을 맡고 있으며 준공 시기를 조율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불광사가 공사 현장이 위험한지 뻔히 알면서도 공사 속행을 허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다.

이에 대해 김남수 불광사 기획실장은 28일 미디어오늘과 전화통화에서 “법당 지하 불광당에서 석가탄신일 행사를 진행할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하기는 했지만 외관 공사 기간 단축을 요구한 적은 없다”며 “홍씨가 사고가 난 옥상 쪽 공사는 17일 행사와는 인과관계가 없다”고 해명했다.

김 실장은 안전 설비 철거 미확인 사유에 대해선 “안전망 설치 여부는 시공사가 담당하기 때문에 건축주 입장에서는 안전망 유무를 확인한 적도 없고 그 문제를 생각해 본 적도 없다”며 “당연히 안전할 것이라 생각하고 감리단과 시공사에 믿고 맡겼다”고 말했다.

그는 또 유족 보상 문제와 관련해선 “유족 측과 시공사 둘 사이 합의 접점을 찾도록 요구하거나 독려할 수는 있지만 우리가 개입하는 것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양자 간 합의가 된다면 우리도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고 밝혔다.

불광사는 현 회주 지홍스님의 은사인 광덕스님이 1974년 창립한 ‘불광회’를 모태로 1982년에 건립한 도심 사찰이다. 잠실법당은 당시 전국의 불자 2만여 명이 대화주(大化主)가 돼 공동으로 쌓아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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