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둘러싼 ‘폄훼’ 논란이 법적 분쟁으로까지 비화할 조짐이다. 광주시와 5·18 관련 단체를 비롯해 정치·법조계 등이 참여하는 ‘5·18 폄하·왜곡 대책위원회’(가칭)는 지난 20일 종합편성채널(종편) 방송과 극우 성향의 인터넷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등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5·18 왜곡 담론에 대해 법적 대응 방침을 밝혔다.

앞서 5·18 기념식을 앞두고도 5·18유족회 등 5·18 관련 단체들은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5·18 정신을 훼손하는 사이버 테러와 명예훼손 행위에 대해 법적 대응을 위한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고 말했다.

5·18 기념재단 측 관계자는 지난 16일 “초기에는 동조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해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지만 사회 분위기가 5·18의 가치를 훼손해도 되는 것처럼 조성돼 앞으로는 홍보·교육 강화와 더불어 본격적으로 법적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내비쳤다.

지만원씨가 인터넷에 5·18 민주화운동을 왜곡하는 글을 올리고도 무죄 판결을 받은 것처럼 우리나라에서는 역사적 진실을 부정하고나 왜곡하는 ‘인권범죄’를 처벌하지 않는다. 하지만 다수의 유럽 국가들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부터 홀로코스트(나치의 유태인 대량 학살) 부인과 전쟁 선동을 범죄 행위로 규제하고 있다.

일례로 홀로코스트 부인자로 유명한 영국 역사작가 어빙(D. Irving)은 1989년 오스트리아에서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연설을 한 혐의로 체포장이 발부돼 있는 상황에서 2006년 오스트리아에 입국했다. 어빙은 법정에서 나치가 수백만의 유대인을 살해했음을 인정하고, 종래의 입장을 바꾸었다고 진술했지만 징역형에 처해졌다. 오스트리아는 홀로코스트 부인 이외에도 포괄적으로 집단에 대한 증오를 고취하는 행위를 선동죄로 처벌하고 있다.

현재 홀로코스트 부인과 증오적 표현을 동시에 처벌하는 국가는 독일과 프랑스, 스위스, 벨기에 등 13개국이며 증오적 표현만을 처벌하는 나라는 영국과 네덜란드, 노르웨이 등 18개 나라가 있다. 미국은 표현의 자유에 우월한 지위를 인정한 수정헌법 제1조에 따라 홀로코스트 부인을 처벌하지 않는다.

각국의 과거청산 관련법들도 희생자의 넋을 위로하고 그들의 정신을 계승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인권 침해의 기억을 보존할 때 미래의 인권 침해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진실 규명, 진실 교육, 교과서 수록, 기록 보존, 기념일 지정, 기념재단 설립, 기념관 조성 등도 모두 올바른 기억을 확립하기 위한 방편이다.

지난 2007년 ‘올바른 기억을 확립하기 위한 법률(안)’을 발제했던 이재승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악한 논리라도 일관성을 갖춘 세계관은 토론을 통해 교정할 수 없으며 그것은 본질적으로 정신질환에 해당하기 때문에 치료의 대상”이라며 “오히려 자유토론을 통해 역사 부인자들의 인권 억압적이고 차별적 세계관을 폭넓게 드러내고 청중이 극단주의에 빠져들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순전히 역사부인이 학문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의 영역에 속하는 정도의 수정적 의견이라고 볼 수 있다면, 처벌의 대상으로 삼지 말아야 하지만 역사 부인이 증오적 말과 행동으로 대중을 정치적으로 선동할 수 있다면 인종적 증오 표현과 마찬가지로 처벌할 필요가 있다”며 “특히 인터넷 매체의 발달로 인해서 증오적 언동의 규제 필요성은 점차 커지고 있으며, 이 경우 모욕죄나 명예훼손죄가 아니라 선동죄 유형으로 취급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김재윤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중선동죄 신설로 표현의 자유를 규제하는 것은 민주사회의 기본 전제에 어울리지 않으며, 이들을 처벌하더라도 부인자의 생각과 태도를 바꿀 수는 없다는 점에서 반대 입장이 있을 수 있다”며 “역사나 역사관에 대한 진리 논쟁을 최후수단으로 여겨지는 형벌적 수단을 통해 규율한다는 것은 적합한 수단이 아닐 뿐더러 자칫 국가보안법과 같은 폐해로 연결될 우려까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보다 중요한 것은 자라는 청소년이 올바른 역사관을 정립하는 데 있다고 본다”며 “전국의 모든 초·중·고등학교에서 5·18민주화운동 바로보기 교육이 실시돼 청소년들이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에 대한 올바른 역사관을 갖도록 하는 것이 5·18 민주화운동 왜곡이 향후 벌어지지 않을 작지만 실천 가능한 하나의 대안”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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