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섭 EBS사장은 전파·통신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행정관료 출신이다. 그는 전파공학으로 석사를, 전기전자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정보통신부 시절 전파방송정책국장을 지낸 뒤 방송통신위원회가 출범한 이후에는 통신정책국장과 방송통신융합정책실장 등을 역임했다. ‘방송’자가 들어가는 부서들이긴 하지만,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통신 전문가로 꼽힌다.

지난해 11월 말, 방통위가 그를 EBS 사장으로 선임하자 안팎에서 ‘비전문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노조와 야당 의원, 언론단체들은 당시 잇따라 성명을 내고 신 사장의 임명을 비판했다. 이에 대해 신 사장은 자신이 비전문가이기 때문에 오히려 제작 자율성을 보장해줄 수 있지 않겠느냐는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임기 6개월째에 접어든 현재, 신 사장은 이 같은 우려를 불식시키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국언론노조 EBS지부(지부장 한송희)는 13일 성명에서 “(신 사장은) 교육과정평가원장을 만나는 자리에서 수능은 대학에서 출제하는 것이 아니었냐는 등, 평가원이 교과부의 산하기관이 아니냐는 등, 일반인의 상식에도 미치지 못하는 무지를 드러냈다”고 비판했다.

EBS의 한 구성원은 “EBS는 평가원과 함께 수능연계정책의 한 축을 담당하는 기관”이라며 “(신 사장은) 그런 부분에 대한 이해조차 안되어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또 “일례로 (신 사장은) ‘초·중학 동영상 강의를 왜 비용을 들여가며 우리 사이트에서 하냐. 포털사이트에 맡기면 된다’고 했는데, 그건 이러닝(e-learning)에 무지한 이야기”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11월30일, 첫 출근을 하려던 신용섭 EBS 사장을 노조가 막아서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제작 자율성 보장 의지도 도마에 올랐다. EBS는 지난 달 <다큐프라임-나는 독립유공자의 후손입니다>편을 제작하던 김진혁 PD를 수능교육 담당부서인 수학교육팀으로 ‘복귀’시켰다. 앞서 지난 1월 김 PD를 수학교육팀으로 발령 냈다가 논란이 일자 그를 ‘파견’ 보낸 후의 일이다. 70% 가까이 제작 중이던 프로그램은 ‘올스톱’됐고, 노조는 보름 넘게 피켓시위를 벌였다.

임명 당시 불거졌던 ‘낙하산’ 논란이 새삼 불거지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노조 관계자는 “사장이 정략적으로 계속 다큐프라임 건을 부풀리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노조는 신 사장을 “MB정부의 마지막 낙하산 인사”로 규정하며 “정권이 바뀐 뒤 불안해진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무지함을 숨기고 EBS를 어지럽히고 있다”고 비판했다.

앞서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3월, 공공기관장에 대한 대규모 인사에 나설 것임을 시사한 바 있다. ‘MB맨’으로 꼽혔던 김건호 한국수자원공사 사장이 임기 4개월여를 앞두고 지난 3월 사의를 표한 데 이어 국토부와 산업자원부를 비롯한 각 부처 산하 공공기관장들의 사표 행렬이 이어지는 등 공공기관장들에 대한 ‘물갈이’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내세운 ‘물갈이’ 기준은 국정철학과 전문성이다. ‘MB정권 마지막 방통위원’을 지낸 바 있는 신 사장은 ‘MB정부의 마지막 낙하산’이라는 딱지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교육’도 모르고 ‘방송’도 모른다”는 평가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근현대사를 둘러싼 EBS 역사다큐 논란이 확산되는 배경이 심상치 않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제작이 중단된 EBS <다큐프라임-나는 독립유공자의 후손입니다>편은 해방 직후의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후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해방 이후 친일파 청산 등을 위해 구성된 반민특위는 당시 이승만 대통령을 비롯해 사법부와 경찰을 장악한 친일 인사들의 집요한 견제 속에 강제 해산됐고, 위원들은 간첩으로 몰려 탄압을 받았다. 

제작 중단 사태가 발생했을 때, 안팎에서는 그 ‘배경’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비슷한 시기 KBS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시대를 조명하는 다큐 (가제)<그 때 그 사람들>을 추진하려다 노조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언론노조는 성명을 내어 이를 “‘코드 개편’에 눈이 먼 공영방송 사장들의 비상식적인 조치”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공공기관장의 ‘리더십’도 주요 평가 대상이다. EBS의 한 구성원은 “신 사장의 공식 지시사항 중 하나가 회의시간에 토 달지 말라는 것”이라며 “실무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판단을 해야 하는데 소통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노조는 성명에서 “대화하자고 찾아온 노조위원장을 향해 ‘너’, ‘당신’이라고 고함을 친다”며 신 사장의 ‘불통’을 지적하기도 했다.

노조 관계자는 “교육방송의 본질은 교육이고 방송은 형식”이라며 “(신 사장은) 교육 철학이 없다”고 말했다. EBS의 한 구성원은 “미래 교육서비스의 비전을 제시하고 정책 마케팅을 해야 하는데 답답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대로 가면 교육서비스 부분이 위축될 것 같다”는 우려는 곧 EBS의 존재이유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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