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영감”, “맨발의 팔순”, 오토바이에 철가방을 싣고 달리는 백발의 할아버지, 휴대전화 대리점 앞에서 춤을 추는 도우미 할머니들….

삼성생명의 광고가 화제를 모으고 있다. 삼성생명은 최근 유튜브 등을 통해 ‘주식회사 불꽃황혼’이라는 기획 광고를 내보내고 있다. “하루 사이에 대여섯 번은 본 것 같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물량 공세를 쏟아 붓고 있는데 참신하다는 평가와 함께 공포 마케팅이라는 비난이 엇갈린다.

   
 
 
광고가 시작되면 “아프니까 칠순이다”, “환갑 너만의 스펙을 쌓아라” 등등의 패러디한 베스트셀러 책 제목이 뜨고 “취준노(취업을 준비하는 노인들)”이라는 자막과 함께 카메라가 2043년 주식회사 불꽃황혼의 신입사원 채용 면접 현장으로 옮겨간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진짜 늦을 때다”라는 액자에 담긴 표어가 눈에 들어온다. 인구 고령화 시대 노인들의 취업난, 여기까지 이 광고는 정말 참신하다.

   
 
 
첫 번째 면접자는 콜라병 바닥 같은 안경을 쓴 할머니다. 이 할머니는 하반기 세계 경제를 묻는 질문에 영어와 일본어로 유창한 답변을 한다. 두 번째 면접자로 들어온 할아버지는 날렵한 무술과 함께 장풍을 쏘면서 면접관들을 놀라게 한다. 세 번째 면접자는 웬만한 사전 분량의 두터운 이력서를 들고 왔는데 스펙이 많이 부족하다. 사업을 하다 망했다는 이 할아버지는 한 번만 기회를 더 달라고 통사정을 한다.

그때 사장이 묻는다. “한 번 더 기회를 드릴 테니까 미리미리 잘 준비할 수 있겠어요?” 할아버지가 반문한다. “그게 정말입니까?” 사장이 말한다. “30년 뒤로 보내드릴 테니까 이제는 잘 하세요.” 그리고 다음 순간 이 할아버지는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졸다가 깨어난다. 컴퓨터 화면에 깜박거리는 메일을 열자 이런 문구가 뜬다.

“은퇴 후 미래, 삼성생명 연금보험으로 미리미리 준비하세요.”

   
 
 
삼성생명이 이 광고는 언뜻 코믹 코드로 포장돼 있지만 공포 마케팅의 전형적인 사례다. 이 광고가 씁쓸한 이유는 첫째, 이 광고는 영어도 안 되고 체력도 안 되는 노인들은 일찌감치 보험이나 들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둘째, 노후는커녕 먹고 살기도 바쁜 대다수의 예비 노인들에게 박탈감을 준다, 셋째, 연금보험으로 노후를 대비할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을 불러일으킨다. 결국 보험회사 좋은 일만 시켜준다는 사실을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김미숙 보험소비자협회 회장은 “아무리 저금리 시대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연금보험보다는 예금이나 적금이 훨씬 낫다”고 조언한다. “보험회사들의 과장광고에 속지 말고 단돈 몇만원이라도 저축을 시작하라”는 이야기다. 김 회장은 “1980년대 연금보험에 가입했던 사람들이 당초 보험사회들이 약속했던 금액의 20% 수준, 그나마도 물가 상승률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푼돈만 건졌다는 사실을 기억하라”고 강조했다.

1980년에 출시된 백수보험은 월 3만~9만원을 3~10년 동안 납입하면 55~60세부터 예정이율 연 12%를 보장한다고 광고했다. 연간 100만원을 10년 동안 지급받고, 확정배당금으로 600만~1000만원 상당을 추가 지급한다는 파격적인 상품이었다. 그런데 30년 뒤 금리가 반의 반토막이 나면서 확정배당금이 사라졌고 연금은 월 10만원으로 쪼그라들었다. 김 회장은 “지금 광고하고 있는 연금보험 상품들도 이보다 낫다고 장담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보험회사들의 과장광고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삼성생명의 이 광고는 과장광고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실제로 대부분의 연금보험 상품의 투자 수익률이 터무니 없이 과장돼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예금이나 적금상품과 비교하면 수익률이 결코 높지 않을 뿐만 아니라 물가 상승률을 반영하면 오히려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다. 연금보험보다는 5년 미만의 정기보험과 예금·적금 등을 병행하는 게 수익률이 훨씬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삼성생명은 과거 아버지가 딸의 등을 토닥이는 광고로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브래지어 끈을 의식한 딸은 움찔한다. 그 위로 흐르는 나레이션. “딸의 인생은 깁니다. 어느새 여자가 될 것이고, 사랑을 하고, 결혼하고 엄마가 될 것입니다.” 이런 광고도 있었다. 마트에서 이벤트로 나눠주는 생리대를 받아와 카트 위에 턱 하고 올려놓는 아내. “손만 잡아도 얼굴이 빨개지던 여자였는데 어느새 아줌마가 다 됐습니다. 왠지 좀 미안한 생각이 듭니다.”

일상생활에서 발견한 가족의 소중함을 강조한 삼성생명의 이 시리즈 광고는 딸의 불쾌했을 감정에 아랑곳없이 가족이니까 괜찮다는 남성적 시각으로 재단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생리대를 부끄러워하지 않으면 아줌마라는 선입견 역시 황당무계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논란은 있었지만 사랑한다면 보험에 들어줘야 한다는 메시지는 매우 효과적이었고 비슷한 광고가 부쩍 늘어났다.

   
 
 
보험업계 최악의 광고는 2007년 프루덴셜생명보험의 광고다. “10억원을 받았습니다.” 남편의 사망 보험금으로 10억을 받았다는 한 아내의 실제 사연을 담은 이 광고는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아내의 담담하지만 행복해 보이는 표정도 문제였지만 10억원의 보험금을 받으려면 월 156만원씩 15년 동안 납입하는 조건의 보험에 가입해야 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런 광고도 있었다. “이 세상에 없어도 대학 입학을 시키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 없어도 행복한 결혼을 시키고 가족과의 약속을 지키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가족의 가슴 속에 변함없이 살아있는 아버지. 당신은 프루덴셜 아버지입니까.” 이 광고에서 말하는 ‘프루덴셜 아버지’는 결국 보험에 가입해서 당장 죽어도 자식들을 대학에 보낼 수 있는 아버지를 말한다. 이 역시 공포 마케팅의 극단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월 10만원씩 10년을 내면 1억원이 됩니다.” “723%의 수익률, 30만원씩 10년을 내면 2억6000만원 수령.” 이런 광고들은 물가 상승률을 반영하지 않은 데다 20년에서 25년씩 나눠서 받게 될 연금을 합산해서 부풀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업비를 제외한 수익률이라는 사실도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있다. 이런 노골적인 과장광고는 크게 줄어들었지만 좀 더 교묘한 형태의 상징 조작과 공포 마케팅이 늘어나고 있다.

김 회장은 “보험회사들의 공포 마케팅에 속지 말라”고 거듭 경고했다. 김 회장은 “가입을 권유할 때는 부푼 풍선을 받는데 시간이 지나면 다 쪼그라든 풍선이 된다”면서 “보험회사들 사업비를 떼고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오히려 마이너스인 상품이 수두룩하다”고 지적했다. 김 회장은 “장기 금융상품은 오래된 거짓말”이라면서 “과장광고가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정보 불균형이 심각하고 불완전 판매나 불법 판매가 판을 치고 있다”고 경고했다.

홍헌호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소장은 “인구 고령화가 심각한 사회 문제인 것은 맞지만 노인들이 모두 일자리를 구하는 것도 불가능하고 이들이 일을 하면 영세 자영업자들이나 청년들 일자리를 뺏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홍 소장은 “그렇다고 각자 알아서 연금보험으로 노후를 설계하라고 할 수도 없고 근본적으로는 기초연금을 확대하는 게 최선의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삼성생명 홍보실 관계자는 “안 하고 있는 걸 해야 한다고 말하는 걸 공포 마케팅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면서 “국민연금으로 노후를 해결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국민연금과 퇴직연금, 개인연금의 3층 보장체계를 가져가는 건데, 100세까지 살 장기 계획을 세운다면 단순히 예금이나 적금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을 연금보험으로 보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30~40대에 20년 동안 내서 65세부터 40년 동안 받는다는 개념인데 언론에서는 해약환급금이 적다는 이유로 비판을 한다”면서 “자동차를 살 때는 2~3년 뒤 중고차 가격이 낮다고 비판하는 일은 없지 않느냐”고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개인연금이 국민연금 보다 수익률이 낮은 건 사실이지만 100만원 미만의 국민연금으로 노후를 해결할 수 없는 것도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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