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은 신문기자다, 본인은 상식을 주장하다가 감옥에 왔다. 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이고,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다. 그런데도 본인은 언론인으로서 자유언론을 주장하다가 황당하게도 감옥으로 왔다. 언론인이 자유언론을 주장하는 것은 누에가 뽕잎을 먹는 것처럼 당연하다(…) 우리는 자유언론이라는 것이 상식이 되기 위해 투쟁하고 있다. 이 나라가 독재국가가 아니라는 것을 밝히기 위해 온몸으로 투쟁하는 것이다.” -1979년 7월 25일 장윤환 당시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항소심 법정 최후 진술

1975년 유신 독재에 맞서 ‘자유언론’을 외친 동아일보 기자들의 이야기를 엮은 <1975>가 출간됐다. 대한민국 언론사의 역사적인 사건인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이하 동아투위)의 기록이다. 이후 4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가고 있다.

1974년 10월 24일. 동아일보의 젊은 기자들은 ‘자유언론실천선언’을 한다. 이후 박정희 유신독재정권이 저지른 인권 유린과 민주화운동 탄압을 적극적으로 보도하자, 박정희 정권의 중앙정보부는 12월 하순부터 동아일보와 동아방송은 물론 모든 출판물에서 광고가 사라지게 만들었다.

이 때문일까. 1975년 3월, 술 냄새를 풍기는 자들이 섞여있는 무리가 ‘공격개시’ 30분 만에 동아일보 공무국에 난입해 ‘자유언론’을 외치며 닷새 동안 물만 마시고 단식하던 기자 23명에게 몽동이로 후려치고 주먹질과 발길질을 했다.

이들은 야간통행금지가 실시되던 당시 동아일보사 정문 앞에 대기하고 있던 지프차에 23명의 기자들을 싣고 혜화동의 어느 병원으로 사라졌다. 이날 이들 23명은 물론 동아일보 편집국, 동아방송국 등 언론인 160여명이 폭도들에 의해 쫓겨났다.

   
1975년 3월17일 새벽 동아일보 사주측이 동원한 술 취한 폭도들에게 강제 축출되기 직전 편집국에서 마지막 ‘자유언론 만세’를 외치는 기자들과 사원들. 사진=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이렇게 기자들은 ‘자유언론 만세’ ‘민주회복 만세’ ‘동아일보 만세’를 부르짖으며 회사를 나와야 했다. 그날 오후 동아일보사에서 폭도들에 밀려난 언론인들은 동아투위를 결성했다. 지난 38년 동안 ‘명예회복과 복직’을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다. 보상이나 배상만을 목표로 싸워 온 것도 아니다.

유일하게 노무현 정부 시기 구성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만이 동아투위 사태를 ‘현저히 부당한 공권력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라는 결정을 내렸다. 동아투위는 이 결정문을 바탕으로 지난 2009년과 2011년 소송을 제기했지만, 모두 패소했다.

동아투위는 다시 지난 2012년 4월 대법원에 상고했다. 하지만, 1년이 지나도록 재판 날짜도 통보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박정희의 딸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과거사를 청산하고, 100% 국민대통합’을 공약했지만 묵묵부답이다. 박정희와 그의 정치적 후계자들을 상대로 벌여 온 싸움이 ‘현재 진행형’임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동아투위와 위원들은 40년 가시밭길을 걸어왔다. 폭도들에 의해 쫓겨난 160명 가운데 50여명은 회사의 회유로 돌아갔고, 끝까지 남은 113명은 강제해직 되자마자 실업자가 됐다. 113명 중 18명은 옥고와 병고, 정신적 고통으로 세상을 떠났다.

당시 직업조차 가질 수 없게 된 이들을 기다린 것은 정보기관의 감시와 미행, 구속과 연행, 고문, 해외여행의 자유박탈, 공민권 제한 등이었다. 박정희 유신독재시절과 전두환 군사정권을 지나며 반체제 불순세력으로 낙인찍힌 이들은 생계를 위해서는 자존심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

“자존심을 굽히지 않고서는 처자식을 먹여 살릴 방법이 없었다”는 이들의 고백에서 얼마나 오랜 시간 고민하고, 처절하게 38년을 지내야 했는지 증명하고 있다.

   
유신독재에 도전한 언론인들 이야기 <1975> / 윤활식·장윤환 외 23인 / 인카운터 펴냄 / 2013.5
 
무엇보다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한 것은 박정희가 1975년 5월 긴급조치 9호를 발표하면서, 언론이 아예 귀가 막히고 말문이 닫힌 ‘불구’ 상태에 빠져버린 것이다. 박정희 정권 하에서 한국의 모든 신문과 방송은 나라 안에서 벌어지는 중대한 사건들은 물론이고 국제적으로 비중이 큰 뉴스들 가운데 박정희 정권의 비위에 거슬리는 내용은 아예 보도조차 되지 못하는 것이었다.

이 책은 동아투위와 동아투위 위원들이 걸어왔던 험난한 이야기들을 해 나가면서 현재 한국의 언론이 처해있는 상황이 박정희 정권에서 벌어졌던 언론탄압과 별반 다름이 없음을 제기하고 있다.

긴급조치 9호로 옥살이까지 해야 했던 김종철 동아투위위원장(전 연합뉴스 대표이사)은 “전두환과 노태우로 이어지는 수구보수세력은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을 제외하고 ‘박정희 왕국’을 굳건히 유지하고 국내외에서 ‘독재자의 딸’이라 비난을 받은 박근혜가 그 왕국을 세습하게 되었다”면서 “‘언제까지 박정희와 함께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에 절망과 좌절감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 위원장은 특히 “5·16 쿠데타가 ‘혁명’으로 다시 둔갑하고 박정희의 온갖 악정과 폭정이 ‘불가피한 선택’으로 인정받는 시대가 올 듯이 보인다”고 현재의 언론 현실을 진단했다.

지난 이명박정부 5년은 언론의 역사적인 암흑기였다. 박정희 유신정권과 전두환 신군부에 이은 이명박정부의 언론탄압, 특히 두 시기와 한 세대를 뛰어넘어 일어난 세 번째 암흑기는 우리에게 상상할 수 없는 충격을 안겨줬다. 이명박정부 동안 20명의 해고자가 나왔고, 400명이 넘는 언론노동자들이 중징계를 받았다. 언론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요구했다는 이유다.

   
동아투위 위원들이 30년이 지난 2005년 3월 1일 동아일보 옛 사옥(현 일민미술관) 정문 앞에 다시 모여 “동아일보는 사죄하라! 원상복귀시켜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이러한 엄혹한 언론현장에 늘 함께 했던 이들이 바로 동아투위 선배들이었다.

이근행 <뉴스타파> PD(전 MBC 노조위원장)는 “투쟁의 현장에 한결같이 모습을 드러내고 격려의 말을 해 주시는 동아투위 선배들의 존재는 언론계 후배들에게 그 자체로 위로이자 힘”이라면서 “자유언론을 부르짖다 무고하게 쫓겨난 동아투위 선배들을 위해, 더 나아가 후배들이 가야 할 길을 말해주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선배들의 명예회복과 복권은 하루빨리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 책의 제목인 <1975>는 단지 숫자가 아닌, 1975년의 역사적인 언론현장을 말하고 있다.

동아투위 위원 18명이 직접 보고, 듣고, 느낀 일들이 자전적 에세이 형식으로 생생하게 녹여져 있다. 또한, 고인이 된 18명의 위원들 중 3명의 유족들이 아버지와 남편에 대한 회상으로 그려내고, 이해동 목사 및 박래부 새언론포럼 회장 등 동아투위 주변의 벗들이 이들과 함께 하고 있다.

이 책에서 동아투위 위원들은 38년 전 박근혜 대통령이 ‘퍼스트레이디’로 공직을 맡고 있었고, 현 정부의 대통령으로서 당연히 법적조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가장 암울했던 ‘박정희 통히 18년’을 모방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지만 마땅히 청산되어야 할 대상인 ‘박정희’를 더욱 미화하고 추앙하는 움직임이 갈수록 강해지는 이 시점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동아투위 위원들은 한국의 정치와 한국의 언론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김종철 동아투위 위원장은 “역사는 어둠 속에서 빛을 향해 꾸준히 달려가는 사람들의 우애와 협력과 투쟁을 퉁해 결국 발전할 것”이라고 글의 마지막을 맺었다.

   
지난 2008년 11월 17일 동아투위 해직기자들이 서울 태평로 동아일보 사옥 앞에서 진실화해위의 ‘화해조치 권고’를 정부와 동아일보사가 조속히 이행할 것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동아투위 위원들은 “경영이 어려워 스스로 한 일”이라고 일관된 주장을 하고 있는 동아일보에 대한 엄중한 경고도 하고 있다.

동아투위 창립 38주년 성명서를 소개한다.

우리는 동아일보사 사주에게 강력히 요구한다. 우리를 강제해직한 장본인은 현재 사주의 할아버지인 김상만 씨였고, 그의 장남 김병관 씨가 그 자리를 물려 받았다. 현재 대주주로서 경영권을 쥐고 있는 김재호 씨는 법인인 동아일보사가 1975년 3월에 저지른 강제해직에 대해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단 하루라도 제 자리에 복직시킨 뒤 합당한 보상을 해야 할 책무를 지고 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동아일보는 1970년대 중반의 ‘찬란한 민중의 대변지’로 돌아갈 수 없음은 물론이고, ‘3등 보수신문’이라는 멍에에서 벗어나지도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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