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지도 못하는 제품을 강압적으로 할당받고 욕설까지 참아야 했던 남양유업 대리점주만큼 ‘갑’의 횡포에 놓여있는 이들이 있다. OO일보로 대표되는 주요 신문의 판촉 및 배달을 맡고 있는 신문지국 사람들이다. 지면에선 ‘갑’의 횡포를 비판하는 신문사가 정작 신문지국장들에겐 구독자보다 많은 신문부수를 강압적으로 떠넘기며 남양유업처럼 ‘제품 밀어내기’를 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남양유업은 대리점주에게 주문도 하지 않은 제품을 떠넘기며 판매를 강요해 전국적 분노를 샀다. 판촉비까지도 대리점주에 전가한 사실이 드러났다. 그런데 신문지국장들도 남양유업과 똑같은 ‘갑의 횡포’에 시달리고 있다.

10년 넘게 OO일보 지국장을 맡고 있는 박상기(가명)씨는 “우리 처지가 남양유업 상황과 똑같다. 우유가 다섯 박스 필요한데 남양이 일곱 박스를 주는 식으로 우리도 신문 2000부가 필요하다고 하면 본사가 2500부를 내려보낸다”고 말했다. 박씨는 필요 없는 500부에 대한 지대(신문사가 지국에 공급하는 신문의 공급가격)를 고스란히 내야 한다.

그렇게 필요 없는 신문은 파지가 된다. 박상기씨는 파지가 극심한 신문이 OO일보, OO경제, OO경제, OO일보 순이라고 전하며 “네 군데의 파지만 합쳐도 전국적으로 100만부는 될 것”이라 말했다.

   
▲ OO일보 신문지국. 위 사진과 기사내용은 관계가 없습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남양유업 사건으로 치면 대리점주 위치에 있는 신문지국장들은 경기가 나빠도 내려가지 않는 ‘지대’에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지대는 ‘신문부수×단가’로 책정되는데, 단가는 신문지에 끼워 넣는 전단지(일명 찌라시) 수입에 영향을 받는다. 전단지 수입이 높으면 지대가 높아지는데, 문제는 전단지 수입이 떨어져도 지대는 그대로라는 점이다. 

박씨는 “지난해부터 전단지 수입이 30% 이상 감소했다. 강남구는 지국별로 전단지매출이 1억 원 이상 떨어진 곳도 있다. 그런데도 단가는 똑같다”고 토로했다. OO일보의 경우 2000년대 중반 전단지유통을 담당하는 자회사를 만들어 지국장들에게 높은 마진을 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 5000여개 내외로 추산되는 신문지국은 도급배달회사로 신문사 본사와 계약을 통해 신문을 공급받아 신문배달과 판촉, 수금, 배달사고 등 독자관리까지 담당하고 있다. 한국언론연감(2011)에 따르면 종합일간지가 지국으로부터 받는 신문 1부당 지대는 월간 2500원에서 3500원 선이지만, 현장의 지국장들이 체감하는 지대는 3500원 이상이다. 

지대가 높고, 원치 않는 ‘밀어내기’ 부수가 들어와도 항의는 어렵다. 2001년부터 신문사·지국 간의 불공정거래 문제를 지적해온 전국신문판매연대 김동조 위원장은 “OOO를 제외한 주요 일간지는 어느 정도 상황에 맞춰 지대의 자율증감이 가능하다. 하지만 OOO에게 한번 지대는 영원한 지대다”라고 말했다.

김동조 위원장은 “신문사 가운데에는 본사가 요구하는 확장부수를 채우지 못하면 지대를 올려버리는 패널티(penalty) 지대 또한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2009년 공정거래위원회는 “중앙일보는 신문판매업자(지국)와 거래함에 있어서 자신의 거래상 지위를 이용해 판매부수 기준을 정하고 이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 경고장 등을 발송하는 방법으로 판매목표를 강제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시정명령을 내린 바 있다. 그러나 김 위원장에 따르면, 그 이후에도 신문업계의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에 더해 부수확장을 위한 판촉비용액(평균 10만 원 대)도 90% 가량을 지국이 부담하고 있다. 경영이 악화돼도 지국에 투자한 돈이 있어 지국장들이 쉽게 이탈할 수 없는 점을 이용한 결과다. 버티다 못해 신문지국을 포기하는 이들 가운데는 신문배달원으로 전락한 경우도 많다.

이런 가운데 조선일보는 남양유업사태로 불거진 ‘갑’의 횡포에 대해 9일자 기자수첩에서 “정부와 공정거래위원회의 무관심 속에 (갑을문제가) 곪다가 최근 남양유업 사태가 터졌다. 수많은 을(乙)들이 더 이상 피눈물을 흘리지 않도록 정부는 상식적인 상거래 문화가 정착되도록 해야겠다”고 밝혔다. 동아일보는 9일자 사설에서 “이번 사건은 남양유업이라는 기업 하나 때리기로 끝날 일이 아니다. 갑을 관계 전반을 정상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두고 익명을 요구한 한 신문지국장은 “유력신문사들은 지국장들이 원하는 만큼만 부수를 공급하면 광고단가가 줄어드는 것을 두려워해 횡포를 지속하고 있다”며 “신문사들이 갑을관계를 비판하고 있지만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동조 전국신문판매연대 위원장은 “남양유업 사건이 터지니 지국장들 사이에서 다시 싸워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지만 본사의 입김이 너무 강하다”며 “지금껏 공정거래위원회를 숱하게 쫓아다니며 신문사와 지국 간의 표준약관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해왔지만 공정위도 유력 신문들에 대해선 엄두를 못 냈다”고 전했다.

조영수 민주언론시민연합 대외협력부장은 “슈퍼갑의 원조는 신문사다. 신문 판매수익보다 광고수익이 중요한 상황에서 신문은 기사의 품질로 승부하기보다 신문지국에 부수를 압박해 수익을 내는 것이 문제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조영수 부장은 “신문사는 남양유업에 비해 사회적 감시와 비판이 취약하다”며 “신문지국의 단체대응과 함께 불법판촉에 의해 배포되는 신문을 거부하는 소비자의 인식과 투명한 발행부수 인증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