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촛불집회 때 경찰이 연행된 여성들에게 브래지어를 탈의하도록 강요한 행위에 대해 대법원이 위법하다고 판단하고 국가가 손해배상을 하도록 판결해 주목된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9일 김아무개씨와 범아무개씨 등 여성 4인이 부당한 공권력 행사로 인격권이 침해됐다며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위자료청구소송 선고공판에서 법무부장관의 상고를 기각한다며 “국가는 김씨 등에게 각각 150만 원 씩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밝혔다. 앞서 1심과 2심 모두 동일한 판결을 내렸으며 대법원도 원심(1심)을 확정했다.

인권단체들은 “이번 대법원 확정 판결을 계기로 관행의 이름으로 유지돼 온 국가 폭력이 우리 사회에서 깨끗하게 사라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번 사건은 지난 2008년 8월 15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에 참석한 김아무개씨와 범아무개씨, 범아무개씨, 김아무개씨 등 4명이 시위에 참가했다가 서울 종로구 종로2가 삼일교 부근과 남대문로3가 한국은행 로터리 차도 등에서 경찰에 체포된 이후 마포경찰서와 중부경찰서로 이송된 이튿날 새벽 유치장에서 여성 경찰관 김아무개씨에게 브래지어 탈의를 요구받아 큰 문제가 됐던 사건이다.

당시 경찰은 이들에 대한 신체검사 직후 별다른 설명도 없이 규정상 브래지어를 벗어야 한다고 강요해 일부 피해자들은 체포시한인 48시간 내내 브래지어를 벗은 채 유치장에서 지내야 했다. 경찰은 당시 ‘경찰 업무편람’이라는 내규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피해자들은 국가가 위법 부당한 공권력 행사로 구금된 여성에게 위축감과 수치심을 주려는 성별화된 폭력이라고 반발하며 지난 2011년 8월 국가를 상대로 국가배상소송에 나섰다.

지난해 5월 처음 국가배상 판결을 했던 1심 재판부는 경찰의 이 같은 행위를 불법으로 판단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37 단독 조중래 판사는 판결문에서 △자살예방을 위해 브래지어를 벗으라 요구할 수 있다는 ‘경찰업무편람’은 행정조직 내부의 행정명령에 불과해 법규로 볼 수 없으며 △피의자유치 및 호송규칙에 따르더라도 죄질이 경미한 유치인은 겉옷위를 가볍게 두드리는 외표검사를 시해야 하며, 일반적인 경우 속옷은 벗게 하지 않고 신체검사의를 착용하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2008년 6월 1일 새벽 12시 40분경부터 경찰이 촛불집회 시위참가자들에게 무차별적으로 물대포를 쏘던 장면. 촛불집회 자료사진
이치열 기자 truth710@
 
조 판사는 이 같이 구분하도록 하는 이유에 대해 유치인에게 불필요한고통과 수치심을 주지않도록 하기 위해서인 것으로 보이는데, 경찰이 피해자들에게 했던 행위는 이처럼 수치심을 주지 않으려는 취지를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현재 법무부 소속 교정시설 내 여성 수용자들은 1인당 3개 범위 내의 브래지어 소지가 허용된다는 사실을 들어 조 판사는 “유치장 내 여성 수용자도 교정시설 수용자와 달리 처우할 이유가 없다”며 “자살 예장을 하려면 보다 세밀히 관찰하는 수단을 강구해야지 브래지어 탈의를 요구한 것은 과잉금지 원칙에 반한다”고 판단했다.

조 판사는 이에 따라 경찰의 조치에 대해 “피해자의 명에나 수치심을 포함한 기본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충분히 배려한 방법이 이뤄지지 않아 피해자의 동의와 무관하게 위법하다”며 “이런 불법행위로 피해자가 입은 정신적 고통을 금전으로나마 위자할 의무가 있다”고 150만 원 씩의 위자료 지급을 명령했다.

피해자 4인과 함께 소송을 진행해온 천주교인권위원회와 인권운동사랑방은 9일 오전 논평을 내어 “경찰의 브래지어 탈의 강요는 자살 방지라는 규정의 목적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행해진 임의적이고 이례적인 위법‧부당한 공권력 행사이자 폭력일 뿐이었다”며 “경찰은 불법적인 유치장 브래지어 탈의 관행을 중단하고 피해자들에게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또한 지난 2008년 당시 사건이 문제가 됐을 때 국가인권위원회가 브래지어 탈의요구를 정당화하는 듯한 황당한 권고를 내린 점도 거론했다. 국가인권위는 당시 경찰청장에게 ‘탈의 요구시 그 취지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한 후 성적수치심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보안조치를 강구하라’고 권고해 브래지어 탈의 자체는 문제가 없다고 경찰에 면죄부를 줬었다.

천주교 인권위 등은 “이번 판결은 브래지어 탈의 자체가 불법적 공권력 행사임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국가인권위가 법원에 비해서도 인권감수성과 성 인지도가 얼마나 부족한지 일깨워준다”며 “인권위가 이번 판결로 배울 점을 찾아야 하며, 인권증진이라는 본연의 사명을 충실히 이행하는 기관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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