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 창간한 한국일보는 80년대 초반 매출액·발행부수 1위를 기록하던 대표 일간지였다. 그러나 창업주인 고 장기영 전 경제부총리가 1977년 사망한 이후, 아들들이 번갈아 가며 회사 경영을 맡아오면서 사세(社勢)가 기울기 시작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장남 장강재 전 회장이 사망한 1993년 이후 형제들이 번갈아 가며 경영권 다툼을 벌였고, ‘사주일가’의 방만한 경영과 전횡이 매각협상과 사주고발이라는 상황까지 한국일보사를 내몰았다는 분석이다.

경영권 분쟁·경영난… ‘잃어버린 20년’

1993년 8월 장남인 장강재 전 회장이 사망한 후, 한국일보는 4남 장재국 회장 체제로 전환했다. 차남 장재구, 3남 장재민, 5남 장재근 등 형제들은 계열사인 미주한국일보와 서울경제신문, 일간스포츠 등을 나눠 맡았다. 장강재 회장의 장남 장중호 현 일간스포츠 사장도 경영수업을 받았다. 그러나 무리한 증면 경쟁에 뛰어들면서 경영난이 악화되고 경영권 분쟁으로 장재국 회장이 두 차례나 경질(1997년, 2002년)되는 등 불안정한 상태가 이어졌다.

한국일보는 이미 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4300억원, 1999년 5590억원에 달하는 금융권 부채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그런데도 ‘장씨 일가’가 한국일보에서 가져다 쓴 돈(주주단기대여금)은 2001년 당시 46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이 돈은 대부분 대손충당금 등의 방법으로 ‘탕감’됐다. 그 밖에도 ‘장씨 일가’는 빌린 돈의 이자를 회사에 떠넘기거나 근무하지 않으면서도 봉급과 해외출장비 등을 챙겨갔다는 게 비대위와 회사관계자들의 증언이다.

   
지난 1일 정오경 서울 남대문로 한국일보 편집국에서 이영성 편집국장이 임면신임절차 투표의 개표가 진행되고 있다.
©언론노조 한국일보 지부
 
   
언론노조 한국일보 지부 조합원들이 총회를 마치고 6층 장재구 회장실 앞에서 장 회장을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조합원들이 총회 결과를 전달하러 9층 사장실 앞으로 갔을 때 편집회의를 마치고 나오는 부장들과 마주쳤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이 기간 동안 한국일보의 위상은 ‘추락’을 거듭했다. 장재국 전 회장은 90년대 초반까지 증면경쟁을 주도하며 은행권 대출을 대폭 늘려 대규모 부실을 낳았고, 장재구 회장은 수 백억원의 회사 자금을 횡령해왔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한때 ‘기자사관학교’라는 별칭이 자랑처럼 여겨졌지만, 이는 ‘기자 대기소’, ‘기자 세탁소’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으로 변했다. 1998년 IMF 이후 한 차례 ‘엑소더스’를 겪은 이후에도 수많은 한국일보 기자들이 꾸준히 회사를 떠났다.

현 장재구 한국일보 회장은 2002년 1월, 장재국 전 회장이 경영난과 불법 해외 원정도박 등을 이유로 주총에서 해임된 직후 회장 자리에 올랐다. 1997년 이후 두 번째 취임이었다. 막대한 부채와 지속적인 경영난에 시달리던 한국일보는 그해 9월부터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장 회장은 이에 앞서 같은 해 6월 채권단과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체결하면서 미주한국일보 지분 매각 등을 통해 500억원을 증자하겠다고 약속했다.

장 회장은 8월과 9월 각각 100억원을 증자한 이후, 나머지 300억원은 여러 차례 약속을 어긴 끝에 2005년 6월에 가서야 완납했다. 이후 장 회장은 2006년 채권단과 2차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사옥 매각과 인력구조조정, 200억원 추가 증자 등의 조건이 붙었다. 그러나 200억 추가 증자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창간 당시부터 머물렀던 ‘중학동 14번지’의 사옥 매각 과정에서 배임 혐의가 불거졌다. 노조 비대위가 이번에 장 회장을 고발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증발한 200억…“대주주 자격 없다”

한국일보는 2006년 9월, 900억원+α에 사옥을 한일건설에 매각하면서 새로 들어설 건물(현재 트윈트리)의 상층부 2000평에 3.3㎡당 700만원에 입주할 수 있는 권리(우선매수청구권)를 확보했다. 그러나 한국일보의 우선매수청구권은 한일건설이 2010년 7월 트윈트리를 재매각하는 과정에서 함께 매각된 것으로 뒤늦게 드러났다. 한일건설이 3.3㎡당 1680만원에 매각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시세차익만 따져도 한국일보 자산 200억원 가량이 ‘증발’한 셈이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비대위 관계자는 “경북궁과 청와대를 조망할 수 있는 위치 때문에 매각 당시 외국계 펀드도 많이 달려들었는데 한일건설이 뒤늦게 참여해 뭔가 이상했다”고 말했다. 그는 “(장 회장이) 거기서 200억원을 빌려서 한국일보 대주주가 된 다음, 한국일보 자산(우선매수청구권)을 팔아 개인 빚을 갚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일건설의 모그룹인 한일시멘트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장 회장이 대주주로 있는 서울경제 지분 7.7%를 보유하고 있다. 

   
▲ 한국일보 2011년 1월1일자 1면
 

당시 이 사실을 몰랐던 한국일보의 대다수 구성원들은 중학동 복귀가 무산되면서 ‘뒤통수’를 맞은 셈이 됐다. 한국일보는 2011년 1월1일자 신문 1면에 중학동 사옥 복귀를 알리는 사고(社告)까지 냈지만, 그 때는 이미 우선매수청구권이 사라진 뒤였다. 비대위 관계자는 “처음에는 돈이 없어서 못 가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훨씬 전에 팔아먹었던 것”이라며 “대내외 망신이자, (장 회장이) 사원들을 기만한 것”이라고 말했다.

건물이 완공된 직후, 당시 회사 측은 매입 대금 140억원을 마련하지 못해 끝내 우선매수청구권 행사가 무산됐다고 밝혔다. 장 회장과 한일건설 경영진과의 ‘교감’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등의 의혹을 전면 부인하는 한편, 납입기일이 지난 후에도 우선매수청구권이 유효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모두 거짓말이었던 셈이다. 노조의 고발에 대해 회사 측은 “고발한 건 어쩔 수 없다”며 일단 검찰 수사를 지켜보자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비대위는 지난달 29일 장 회장을 고발한 직후 낸 성명에서 “여러 곳에서 돈을 빌려 한국일보 증자에 참여하고 한국일보 돈을 빼돌려 이 빚을 갚는 식으로 장 회장은 한국일보 지분을 인수했다”며 “사실상 한국일보 대주주 자격이 없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실제 장 회장은 애초 자신의 자산 등을 매각해 증자금 300억원을 납입할 것이라고 약속했으나, 2004년 7월 이를 다른 방법으로 마련하겠다고 밝혀 당시 노조가 이를 문제삼기도 했다.

계열사와의 복잡한 채권·채무관계에 대해서도 의혹이 제기된다.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일보는 코리아타임스로부터 139억원 가량의 매출채권을 보유하고 있다. 비대위 관계자는 “용지대금과 잉크비, 제작비를 우리가 대주고 있는 걸로 나와 있다”며 “실제로 코리아타임스가 계속 그렇게 적자가 나는 건지, 아니면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데 장 회장이 돈을 빼돌리고 한국일보가 받아야할 돈으로 해놓은 건지 의심이 가는 대목이 많다”고 말했다.

비대위, “추가 고발 검토”…사측, “검찰 조사 지켜보자”

경영정상화 작업의 일환으로 추진됐던 한국일보 매각이 최근 무산된 것도 논란거리다. 장재구 회장은 노조의 고발 다음날인 지난달 30일, 사원들에게 보낸 글에서 “노조집행부는 본인을 고소하여 회사 경영을 어렵게 한 후 법정관리를 신청하여 헐값으로 그들의 배후세력에게 (회사를) 넘길 계획인 것으로 확신한다”고 주장했다. 노조의 고발 때문에 성사 단계 직전까지 갔던 매각 협상이 무산됐다는 설명이다. 

   
▲ 지난 6일 오전 서울 남대문로 한국일보 편집국 입구에 편집국장 임면신임절차 투표진행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그러나 비대위 측은 장 회장이 ‘비상식적인’ 추가 요구사항을 제안하면서 고의적으로 매각 협상을 지연시키는 등 사실상 매각 의사가 없다고 판단해 고발에 나섰다고 설명했다. 장 회장의 요구 사항은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지만, 명예회장직 보장 등의 내용이 포함됐던 것으로 알려진다. 비대위의 한 관계자는 “구체적인 내용은 밝힐 수 없다”면서도 “매각 주관사 측에서도 (장 회장의 요구사항을) 이해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있었다”고 전했다.  

비대위는 향후 추가 고발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한 관계자는 “일단은 (사옥 매각 관련) 고발 건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는 상황을 지켜 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장재구 회장이) 결국 한국일보를 팔고 떠나는 방법 밖에 없을 것”이라며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라 고 말했다.

그러나 박진열 사장은 지난 5일 사원들에게 보내는 글에서 “이 사안은 이제 우리의 손을 떠나 법의 심판에 맡겨지게 됐다”며 “처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차분히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계속되는 인사명령 거부 사태에 대해서도 징계 방침을 여러 차례 밝힌 상황이다. 한국일보 노사모두 쉽사리 물러설 수 없는 극한 대결 상황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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