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youtu.be/EYMJ1a-GdJk (피아노 연주 디누 리파티)
 
33살 나이로 세상을 떠난 디누 리파티(1917~1950)…. 그의 마지막 연주회가 스위스 브장송에서 열린 1950년 9월 16일, 우리 나라는 전쟁의 참화 속에 있었습니다. 인민군의 남침, 국군의 후퇴와 보도연맹 학살, 미군 등 UN군의 개입과 인천상륙작전, 인민군의 후퇴와 보복학살, 국군의 부역자 색출 등 비극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습니다. 모두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이던 시절, 리파티가 임파선 종양이 악화되어 마지막 연주회 도중 쓰러진 사건은 아무도 알 수 없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당시 연주 실황 녹음이 남아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때 그 음악을 들을 수 있고, 60여년 세월의 거리를 뛰어넘어 그 시대를 다시 여행할 수 있습니다.
   
   
 
 
리파티가 앵콜곡으로 바흐의 <예수는 언제나 나의 기쁨>을 연주했던 그 리사이틀, 1부의 레퍼토리는 바흐의 파르티타 1번 Bb장조였습니다. 리파티가 마지막 순간까지 바흐 음악을 경외하며 온 마음을 다해 연주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습니다.

파르티타는 이탈리아말로 ‘모음곡’이란 뜻입니다. 바흐는 기악 모음곡을 쓸 때 언제나 6곡을 한 세트로 묶었습니다. 무반주 첼로 모음곡도 6곡, 영국 모음곡과 프랑스 모음곡도 6곡,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곡도 파르티타와 소나타를 합쳐서 6곡, 심지어 브란덴부르크 협주곡도 6곡입니다. 별다른 설명 없이 그냥 ‘파르티타’라고 부른 이 피아노 모음곡도 6곡입니다. 6곡의 테두리 안에서 다양한 조성과 기법을 선보이며 통일성을 기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라이프치히 교회 음악감독으로 있던 1726년~1731년 사이, 바흐는 파르티타를 1년에 평균 한곡씩 차근차근 발표했습니다. ‘클라비어 연습곡’으로 불리기도 했던 이 파르티타, 바흐 자신이 악보 표지에 “애호가들을 마음 깊이 위로하기 위해 작곡했다”고 써 넣었습니다.

1번 Bb장조는 6곡 중 가장 규모가 작고 사랑스러운 곡으로, 요즘도 자주 연주 무대에 오릅니다. 프렐류드는 조용히 시작해서 푸가로 발전하고, 단조로 변화하며 풍성해지고, 점점 규모와 음량이 커진 뒤 끝납니다. 링크 1:40부터 빠르고 즐거운 알레망드(독일 무곡), 4:20부터 매혹적인 쿠랑트(‘달리다’란 말에서 유래한 프랑스 춤곡)입니다. 7:08부터 깊이 명상에 잠긴 듯한 장중한 사라방드(스페인 춤곡), 12:15부터 익살스러우면서도 기품있는 메뉴엣(3박자로 된 프랑스 궁정의 춤곡)입니다. 14:40부터 마지막 곡 지그(영국 춤곡)는 가장 유머러스합니다. 저는 이 대목을 들으면 웬지 만화영화 <톰과 제리>, 작은 생쥐가 덩치 큰 고양이를 약올리고 혼내주는 우스운 장면이 떠오르는군요.

   
 
 
바흐는 나이 41살 때인 1726년이 돼서야 자신의 작품을 출판하기 시작했습니다. 동판 인쇄가 비싸기는 했지만, 그 전에 만든 작품들도 얼마든지 출판할 수 있었는데 이렇게 늦어졌군요. 그 진정한 이유는 “완벽에의 희망이었고, 바흐 자신의 양심 때문”이었습니다. (뤽 앙드레 마르셀 <요한 세바스찬 바흐>, 김원명 옮김, 경성대 출판부, p.175) 이전에 써 놓았던 작품을 고치고 다듬어서 완벽하다고 느껴질 때까지 출판을 보류해 왔다는 것입니다. 최초로 출판된 바흐의 작품, 바로 이 파르티타 1번 Bb장조입니다.  

1950년, 먼 나라의 독주회 무대에서 쓰러진 아름다운 피아니스트 디누 리파티가 우리를 바흐 곁으로 안내합니다. 가장 규모가 작고 사랑스러운 이 곡에 익숙해졌다는 느낌이 들면 나머지 다섯 곡도 차근차근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너무 많아서 일일이 소개해 드릴 수 없지만, 바흐가 영국 신사를 위해 작곡했다는 6곡의 영국 모음곡, 제목의 유래를 알 수 없지만 우아하고 기품있는 6곡의 프랑스 모음곡도 모두 “듣는 이의 마음을 깊이 위로하는” 작품입니다.

파르티타 6번 E단조 http://youtu.be/Zjv4ESS2LqY (피아노 타치야나 니콜라예바)
영국 모음곡 5번 E단조 http://youtu.be/kFi9rTNpQrg (피아노 안드라스 시프)
프랑스 모음곡 전곡 http://youtu.be/QeBz6BMQVOo (피아노 안드라스 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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