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희생자 수는 622명을 기록했다. 하루만에 40명이 늘었다. 3일 집계 때 보단 200 여명 더 늘어난 것이다. 지난달 24일 발생한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 인근 의류공장 건물 붕괴사고 현장은 여전히 아수라장이다. 3일 현지 시당국은 실종자 수가 100여명 정도라고 밝혔다. 그러나 그 후 발견된 사체만도 이미 이를 훌쩍 넘겼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를 “노예노동이 부른 참사”라고 말했다. 로이 라메시 찬드라 다카무역노조 위원장은 “이윤이라는 이름의 살인”이라고 규탄했다. 실제 이번 붕괴사고로 사망한 한 노동자의 한 부인은 5일 붕괴된 라나 플라자 건물주와 공장주, 그리고 안전감독관을 살인 혐의로 고발했다. 이들 3명은 다른 6명과 함께 건축법 위반 등의 혐의로 체포됐다. 이들의 행태는 노예노동의 실상과 이윤이라는 이름의 ‘살인 메커니즘’을 잘 보여준다.

다카 외곽 사바라에 위치한 라나 플라자 건물주 모하메드 소헬 라나는 30세의 젊은 기업인이자 갱스터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지역의 실력자였다. 그는 집권당 청년조직의 지역총책이기도 했다. 그는 라나 플라자의 부지와 건물을 매입할 때부터 이런 영향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처음부터 부실하게 지어진 5층짜리 건물을 3층이나 더 증축할 수 있었던 것도 그의 이런 배경 때문에 가능했다.

부실건축에 3층 증축까지… 정전 후 발전기 가동 후 ‘폭삭’

 

   
영국 <가디언>은 5일자 기사에서 4일 현재 라나 플라자 붕괴 사망자 숫자가 580명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5일 사망자 숫자는 622명으로 하루 사이에 40여 명이 늘었다.
 
그는 건물이 붕괴된 24일 “안전하다”며 3천여 명의 노동자들을 사지로 밀어 넣었다. 건물 벽에는 곳곳에 이미 큰 금이 가 있었다. 안전관리관이 건물 붕괴 위험을 경고한 뒤였다. 경찰은 건물을 비우도록 했다. 2층에 들어있던 은행 직원들은 붕괴 위험 때문에 모두 철수했다. 그런데도 건물주 소헬 라나는 “건물은 무너지지 않는다”고 장담했다. 공장주들은 건물로 들어가기를 주저하던 노동자들에게 “당장 들어가 일하지 않으면 해고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몇 시간 지나지 않아 건물은 어이없이 무너져 내렸다. 건물이 무너지자 건물주 라나는 인도로 도피하려다가 나흘 만에 국경지대에서 체포됐다.

사바라 안전감독관 압두르 라자크 칸도 살인 혐의로 고발됐다. 그는 안전감독관으로 라나 플라자의 붕괴를 경고한 인물이다. 그런데도 그가 구속되고 살인 혐의로 고발당한 까닭은 그가 오래 전부터 건물주와 ‘깊은 관계’를 유지해왔기 때문이다. 5층이던 라나 플라자를 8층으로 증축하는 과정에서 자문과 설계를 맡았다. 그는 건물 붕괴를 건물주와 공장주에게 경고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건물주와 공장주 말은 다르다. 그가 “아직은 괜찮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벽돌 콘크리트 구조의 라나 플라자는 불량 건축자재를 쓰는 등 처음부터 부실 시공됐다. 사바라 시장이 직접 건축 인가를 내주는 등 특별한 배려가 있었다. 방글라데시에서는 흔한 일이다. 게다가 당초 5층에서 8층으로 3개 층이 더 증축됐다. 부실 시공된 8층짜리 건물은 무거운 공업용 미싱 기계들의 무게도 무게지만 그 ‘진동’을 견뎌낼 수 없었다.

지난달 24일, 전기가 끊기자 건물 관리인은 옥상에 설치된 육중한 발전기에 시동을 걸었다. 그렇잖아도 납기에 쫓겨 건물이 붕괴될 위험에도 작업을 강행하고 있던 공장의 기계를 한시라도 멈출 수 없었다. 육중한 발전기의 가동과 함께 일시에 다시 돌아가기 시작한 미싱 기계들의 진동은 한 순간에 취약한 8층짜리 건물을 폭삭 주저 앉혔다.

월 40달러 저임으로 중국 이어 세계 의류수출 2위

인구 1억6천만 명의 방글라데시는 지난 10년 여 사이에 중국에 이어 세계 제2의 의류수출국으로 부상했다. 낮은 저임금으로 세계 유명 의류 메이커와 유통업자들의 생산기지로 떠올랐다. 방글라데시 의류산업의 한해 수출량은 200억 달러 규모. 방글라데시 전체 수출량의 80% 가량을 차지한다. 이번 참사를 빚은 라나 플라자 공장에 하청을 준 세계적인 의류업체들로는 미국의 월마트, 영국의 프라이마크를 비롯해 H&M, 갭, 캘빈 클라인의 PVH, 톰니 힐필거, 독일의 치보, 이탈리아의 베네통, 미국의 디즈니랜드, 스페인 망고 등이 그 명단에 올라 있다.

이들 미국과 유럽 유명 의류업체들이 방글라데시로 몰려 간 것은 저렴한 생산단가 때문이다. 방글라데시 의류업체 노동자들의 월 임금은 채 40달러가 되지 않는다. 중국 인건비의 8분의 1, 베트남 인건비의 절반 수준 밖에 되지 않는다. 낮은 인건비에 군말 없이 납기를 맞춰줄 수 있는 대규모 생산이 가능한 방글라데시는 유럽과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패스트 패션의 최적 생산기지인 셈이다.

방글라데시 의류업체들의 작업환경은 열악하기로 악명이 높다. 개발도상국의 영세한 의류공장들이 대부분 그렇다지만 최소한의 화재 예방 시설은 물론 화재 발생 시 피난 시설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곳이 대부분이다. 지난해만 하더라도 11월 한 의류공장에서 불이 나 112명이 사망했다. 2010년에도 갭(Gap)이 하청을 준 공장에서 불이 나 27명이 사망하고 100 여명이 부상당하는 사고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땅한 직업을 찾기가 어려운 방글라데시 여성 노동자들에게 의류공장은 그들의 삶과 희망의 버팀목과도 같다. 농부들이나 가정부의 수입 보다 의류공장에서 일하는 것이 그나마 나은 편이기 때문이다. 라나 플라자에서 일하던 의류공장 직원들의 80%는 여성들이었다.

   
인도로 피신하려다 붙잡힌 라나 플라자 소유주 소헬 라나(사진 가운데). 30세의 젊은 사업가인 그는 4월 24일 건물 붕괴 당일 “안전하다”면서 공장 가동을 강행해 사상 최악의 참사를 빚었다. 사진은 라나 신상명세를 다룬 BBC 온라인 기사.
 
최악의 참사를 맞아 방글라데시 당국은 건물주와 공장주들을 건축법 위반과 건물 붕괴 위험을 알고서도 노동자들을 강제로 일하게 한 혐의 등으로 조사할 방침임을 밝혔다. 그동안 수많은 화재 사고와 붕괴사고가 있었지만, 단순히 벌금 등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 그러나 이번엔 인명 피해 규모가 너무 크다. 게다가 세계적인 관심이 집중되면서 ‘적절한 처벌’ 없이는 세계적인 비난여론을 피해가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내년 까지 전면 철수 디즈니 “무책임”… 일부 업체는 NG0 주도 ‘안전협약’ 서명

위험한 작업환경을 묵인하고 저임금의 노동 착취적 고용에 의존해 돈벌이를 해왔다는 비난을 사고 있는 세계적인 의류업체와 유통업체들도 나름의 대책을 내놓고 있다. 디즈니랜드는 전면 철수를 결정했다. 내년까지 자사의 캐릭터 등을 사용하는 모든 의류제품의 방글라데시 생산을 중단토록 한다는 것이다. 가장 과격한 해법이다. 비난도 적지 않다. 지금까지 단물만 빼먹고 이제 와서 ‘나 몰라라’하는 무책임한 처사라는 것이다.

캘빈 클라인의 PVH와 독일의 치보는 지난해 112명의 사망자를 낸 의류업체 화재사고 이후 NGO가 주도해 만든 ‘방글라데시 화재 및 안전협약(BFSA:Bangladesh Fire and Safety Agreement)’에 서명했다. 그러나 다른 의류메이커들은 눈치를 보면서 서명을 미루고 있다. 이 협약에 서명하는 것이 앞으로 지속적인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해서다. BFSA 서명 시한은 5월 15일이어서 며칠 남지 않았다.

유럽연합은 방글라데시 정부에 의류업체의 노동환경 개선과 안전대책 마련을 강력하게 촉구하고 나섰다. 그렇지 않을 경우 방글라데시에 부여하고 있는 일반특혜관세제도(GSP)를 철회할 수 있다고 압박하고 나섰다. 방글라데시는 GSP로 유럽연합에 의류제품을 무관세로 물량 제한 없이 수출하고 있다.
 

   
라나 플라자 붕괴 현장 인근에서 실종된 가족을 찾고 있는 사람들. 사진은 알자지라 방송 화면 갈무리.
 
방글라데시 정부는 국제적인 비난여론과 압력 속에서 4일 의류공장 환경 개선과 사고 방지 대책을 내놓았다. 국제노동기구(ILO) 등과 협의해 오는 6개월 이내에 15명에 불과했던 노동환경 및 안전관리 감독관을 200여명으로 늘리기로 했다. 또 올해 안에 수출용 의료공장에 대해 건물 구조 및 화재 안전 진단을 실시하기로 했다. 노동자의 권리신장을 위한 노동법 개정안도 올해 안에 국회에 상정키로 했다.
하지만 그것이 제대로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지속적인 관심과 공동의 연대가 필요하다는 것이 세계 주요 언론의 결론이다.

첫째는 방글라데시 노동환경의 제도적 개선이다. 최저임금의 상향 조정, 안전시설 등 노동환경에 대한 기본적인 가이드라인의 설정, 노동자들의 권리 주장에 대한 제도적, 정치적 보장 등이 필요하다는 것. 하청에 재하청으로 연결되는 의류제품의 거미줄 같은 생산 공정을 고려할 때 그나마 형편이 나은 ‘수출 공장’들에 대한 감시와 통제로만은 개선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

둘째는 조금이라도 더 이윤을 챙기고자 하는 약탈적인 무역관행에 대한 제동이다. 이를 위해서는 이른바 ‘윤리적인 소비’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과 연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번 참사에 대한 여러 대책들은 국지적인 개선효과를 갖긴 하겠지만 그 한계가 명확할 것이란 우려다.

실제 압둘 말 압둘 무히트 방글라데시 재무부 장관은 3일 “이번 붕괴사고는 방글라데시 의류산업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세계의 주요 의류 메이커와 유통업체들이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인 ‘방글라데시 저임금의 매력’을 쉽게 떨쳐버리지 못할 것이란 자신감의 반영일 터이다.

21세기 글로벌 패션 산업 ‘노예노동’ 관행 끊을 수 있을까

사실 쉽지 않은 문제다. 라나 플라자 참사는 풍경과 배경은 각각 다르지만 1세기 이상 지구촌에서 장소를 옮겨가며 지속되고 있는 산업재해다.

1911년 미국 뉴욕의 의류공장 트라이앵글 셔츠웨이스트에서 화재가 발생해 146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미국 최대의 산업재해다. 뉴욕 중심가 맨해튼 10층 빌딩에 있던 이 공장 종사자들은 대부분 이탈리아와 러시아에서 이주한 10대 소녀들이었다. 화재 때 대피할 수 있는 제대로 된 비상구가 없었고, 노조간부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평소에도 출입구를 막아놓고 일을 시키다가 엄청난 인명피해를 냈다. 70년대 한국에서, 또 90년대 중국에서 의류산업은 각각 경제발전의 밑거름이 됐지만 수많은 노동자들이 저임과 열악한 노동환경에 시달려야 했다. 그것이 이제는 방글라데시에서 훨씬 참혹한 모습으로 재연되고 있다.

21세기, 패션은 화려해지고 하루가 달리 새로운 디자인의 상품들이 지구촌 곳곳에 신속하게 공급되고 있다. 인류가 이처럼 멋진 옷들을 이렇게 저렴한 가격으로 사 입을 수 있었던 때도 없었다. 물질문명의 화려함과 풍요로움의 상징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을 만들어내는 곳의 노동환경은 100년 전보다 더 열악하다. 왜 이런가. 글로벌의 ‘표준’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라나 플라자 참사가 새삼 재확인시켜주고 있는 질문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