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신용섭 사장이 EBS <다큐프라임>을 폐지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파문이 일고 있다. 지난 달 EBS <다큐프라임>의 ‘나는 독립운동자의 후손입니다’(반민특위 편)가 사측의 담당PD 인사발령으로 인해 제작 중단된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어서 파장이 예상된다.
 
전국언론노동조합 EBS지부(이하 EBS지부)는 3일 성명을 내고 “2일 오후 12시 50분 경 신용섭 사장이 (반민 특위편 제작 중단에 항의하는) 피켓 시위자에게 ‘이번 주 안으로 피켓 시위를 접지 않으면 특단의 조치를 하겠다. 이렇게 가면 다큐프라임 폐지 확률이 90% 이상이다’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노조는 이어 “공정방송위원회의 조속한 개최를 요구하는 피켓 시위자의 면전에 대고 뱉은 사장의 언사는 상생의 길을 도모하는 노조를 심각하게 위협했다”라고 말했다.
 
EBS지부와 EBS PD협회는 지난 4월 22일부터 다큐프라임 반민특위 편을 제작하던 김진혁 PD의 인사발령과 이로 인한 반민특위 편의 제작 중단을 비판하며 피켓 시위를 진행 중이었다. 신용섭 사장이 ‘피켓 시위를 접지 않으면 다큐프라임을 폐지할 수도 있다’는 발언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짐에 따라 제작 중단 사태가 프로그램의 존폐 논란으로 이어지는 모양새다.

   
▲ 도곡동 EBS 본사
 
 
사건의 발단은 지난 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EBS 김진혁 PD는 교육다큐부에서 ‘다큐프라임 반민특위 편’을 제작하고 있었다. 김진혁 PD는 8월 방송을 목표로 1년 전부터 반민특위 편을 제작해왔다. 하지만 지난 1월 15일 EBS는 김진혁 PD를 수학교육팀으로 발령 냈고, 갑작스런 인사발령에 반민특위라는 주제로 다큐를 제작하는 것을 사측이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그러자 사측은 같은 달 28일 김 PD를 교육다큐부로 ‘파견’ 보냈다. 그런데 사측은 프로그램 제작이 완료되기 전인 4월 8일 김 PD를 다시 수학교육팀으로 복귀시켰다. 
 
갑작스런 인사발령에 따라 다큐프라임 반민특위 편은 사실상 제작이 중단됐고, EBS 노조는 담당 PD에 대한 인사발령 철회와 공정방송위원회 개최, 편성의 독립성과 제작 자율성 보장 등을 요구하며 4월 22일부터 피켓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그러던 와중에 사장이 다큐프라임 자체를 폐지할 수도 있다는 의견을 밝힌 것이다. 
 
EBS노조는 사측이 인사 조치를 취해 사실상의 제작중단 사태를 불러일으키고, 폐지까지 언급하면서도 대화를 하자는 노조의 요구에 침묵하면서 구체적인 언급을 피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EBS 사측은 노조의 공정방송위원회 개최 요구에 침묵하고 있으며 사장의 다큐프라임 폐지 발언에 대해 사과하라는 노조의 요구에 대해서도 답을 하지 않고 있다.
 
   
▲ 6일 EBS지부 조합원들이 도곡동 EBS 본사 앞에서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다.
 

김진혁 PD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이번 사태에 대해 “다큐프라임 반민특위 편에 대해 논쟁이 있는 거지 다큐프라임 자체에 대해 논쟁이 있는 건 결코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사측이 반민특위 편에 문제가 있다는 말만 하면서 나머지에 대해서는 아예 함구하고 있다”며 “내용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면 갑론을박을 할 수 있을 텐데 그런 이야기는 한 마디도 안 하니 노조와 PD협회 측도 제작 자율성을 보장하라는 식으로 원론적인 차원에서 이야기 할 수 없다”고 말했다. EBS 지부 한송희 위원장 또한 미디어오늘과 전화통화에서 “반민특위 편에 정파성이 있다면 제작을 한 이후에 심의를 하면 되고, 공정방송위원회를 통해 논의하면 되는데 사측은 이에 대해 대답이 없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윗선의 누군가가 EBS 다큐 제작에 압력을 가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김진혁 PD는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EBS에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 걸로 알고 있다”며 “그게 누구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누군가 EBS 제작에 압박을 가하려는 것 아닌가 하는 추측은 하고 있다”고 말했다. EBS 한송희 위원장은 “이경재 방통위원장이 EBS가 다큐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갖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이것이 반영된 것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경재 방통위원장은 국회 문방위원 시절 "EBS 역할을 거기(공교육)에 집중해야하는데 다큐에 돈을 너무 많이 쓴다". “교육방송에 속해 있는 PD들로서는 학생들에 대한 학습이라는 그것은 시시하고, 다큐멘터리 이런 것 해서 진짜 PD처럼 하고 싶다는 그런 욕심이 이런 것으로 자꾸 확대하려는 것으로 생각된다”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지난해 11월30일, 첫 출근을 하려던 신용섭 EBS 사장을 노조가 막아서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이러한 논란에 대해 사측은 아직 제대로 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홍보사회공헌부 류은지 과장은 신용섭 사장의 발언이 사실이냐는 질문에 “관련 내용을 확인해보지 않아 아는 바가 없다”고 답변했다. 이어 김진혁 PD의 인사발령 조치에 대해서도 “저희가 말씀드릴 수 있는 부분은 정당한 절차였다는 것뿐이다”라며 “세부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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