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의원이 1168억원에 이르는 안랩(옛 안철수연구소) 주식 때문에 상임위원회를 아직 정하지 못하고 있다. 안 의원은 떡값 검사 명단을 공개해 통신비밀보호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의원직을 상실한 노회찬 전 진보정의당 의원의 지역구에서 보궐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노 전 의원은 정무위원회 소속이다. 재보선으로 당선된 의원은 전임 의원이 활동하던 상임위원회에 들어가는 게 관례다.

문제는 안 의원이 정무위에 들어갈 경우 공직자 윤리법에 따라 직무 관련성이 있는 안랩 주식을 모두 팔거나 백지신탁해야 한다. 안 의원은 지난 1일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안랩 주식의 백지신탁 때문에 정무위에 들어가는 게 마음에 걸리느냐”는 질문에 “내게 적합한 상임위가 있는지 먼저 보고 판단할 것”이라고 답변한 바 있다. 안 의원은 선거 과정에서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로 가겠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혀 왔다.

백지신탁이란 공직자가 직무 관련 주식을 보유한 경우 이를 매각하거나 대리인에게 맡기고 간섭할 수 없도록 하는 제도다. 직무 수행의 공정성을 확보하자는 차원인데 백지신탁 대상 공직자는 임명된 뒤 1개월 이내에 보유 주식을 매각하거나 백지신탁해야 한다. 수탁기관은 60일 이내에 이 주식을 처분해 다른 재산으로 바꾸어 운용한다. 수탁기관은 아무런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위탁자도 운용에 관여할 수 없다.

백지신탁심사위원회는 지난 2007년 국회 상임위 가운데 정무위원회와 기획재정위원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당시 지식경제위원회) 등은 포괄적 직무관련성이 적용된다는 세부 기준을 밝힌 바 있다. 안 의원은 안랩 지분 18.6%, 186만주를 보유하고 있다. 3일 종가 기준으로 1168억원 규모다. 당초 372만주를 보유하고 있었으나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동그라미재단(안철수재단)을 설립하면서 지분의 절반을 출연했다.

   
무소속 안철수 의원
©CBS노컷뉴스
 
안 의원은 몇몇 의원들을 접촉해 상임위를 바꿔줄 수 없느냐고 부탁했으나 거절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문위는 의원들 사이에 경쟁이 치열한 인기 있는 위원회다. 임기가 1년 이상 지난 상태에서 상임위를 바꿔줄 의원을 찾기는 쉽지 않다. 다만 민주통합당 당 대표 선거에 출마했던 이용섭 의원이 교문위를 양보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의원이 약속을 지킨다면 안 의원이 교문위로 가고 이 의원이 정무위를 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

몇 가지 쟁점을 살펴보자.

첫째, 안 의원이 지난해 12월 대통령에 당선됐더라도 주식을 팔지 않았을까. 대통령도 당연히 백지신탁 대상이다. 안 의원은 주식을 갑자기 내다 팔면 주가가 폭락해 안랩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친다는 이유로 백지신탁을 꺼리는 것을 분석된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한때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섰던 사람이 그때는 당연히 주식을 내다 팔 각오가 있었을 텐데 이제 와서 전 직장 걱정을 하고 있는 상황은 이해는 되지만 명분이 부족하다.

둘째, 안 의원은 정말 교문위를 가고 싶은 걸까. 아니면 백지신탁을 하지 않아도 되는 상임위를 고르는 걸까. 교문위는 안 의원의 전문 분야가 아니다. 정보통신기술 분야를 다루는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가 어울리겠지만 역시 주식 백지신탁을 해야 한다. 차기 대권을 노린다면 실전 경험을 쌓고 굵직굵직한 이슈를 끌어내 언론의 관심을 끌려면 정무위가 좋은 기회가 될 텐데 굳이 정무위를 기피하는 이유를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셋째, 정말 안랩의 주가 폭락이 우려된다면 동그라미재단에 추가 출연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안 의원이 지난해 주식 절반을 뚝 떼서 내놓은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었지만 그래도 그에게는 여전히 1000억원 규모의 주식이 남아있다. 안 의원이 상임위를 두고 저울질하는 건 가진 자의 여유가 아니라 집착처럼 보인다. 백지신탁을 한다고 해서 1000억원이 다 날리는 건 아니다. 안랩 최대주주에서 물러나는 것 뿐이고 그건 대권을 노린다면 감수해야 할 일이다.

넷째, 안 의원이 주식을 팔면 정말 안랩에 손실이 될까. 주식시장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주가는 결국 기업 가치를 반영하게 돼 있다. 만약 안 의원이 주식을 보유하고 있어서 안랩의 주가가 실제 기업 가치보다 높게 잡혀 있다면 오히려 경계할 일이다. 안 의원의 지분을 백지신탁하고 대량으로 물량을 쏟아내면 주가가 출렁거릴 가능성은 있지만 거품이 있다면 빠지는 게 맞고 건너온 배를 불살랐다던 안 의원이 그것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다.

다섯째, 백지신탁 제도에 문제는 없나.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대표가 중소기업청 청장에 내정됐다가 백지신탁 때문에 사퇴한 바 있다. 3년 임기를 마치면 다시 회사로 돌아가야 할 텐데 주식을 모두 팔고 경영권을 포기하라는 건 가혹하다는 게 주장이 있었지만 경영권을 포기하고 싶지 않으면 이해상충 관계에 있는 공직을 맡지 않는 게 맞다. 백지신탁이 아니라 보관신탁만 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있었지만 역시 이해상충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여섯째, 주식을 갖고 있는 다른 의원들도 있지 않나.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은 3조원 상당의 현대중공업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만 국방위원회와 통일외교통상위원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보건복지위원회 등을 돌면서 백지신탁을 피해나갔다. 정무위나 지식경제위원회만 아니면 된다는 입장이지만 현대중공업은 군수산업에도 관여하고 있기 때문에 국방위나 통외통위 등이 이해상충이 없다고 보기는 어렵다.

일곱째, 부동산 백지신탁은 안 의원의 대선 공약 아니었나. 안 의원은 실제 살고 있는 부동산 이외의 부동산을 백지신탁하고 퇴임 이후에 원금만 돌려받도록 하는 제도를 제안한 바 있다. 부동산과 주식이 다른가. 일부에서는 직무관련성 여부와 무관하게 모든 국회의원들에게 주식 백지신탁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부동산이 직무관련 분야가 따로 없는 것처럼 주식 역시 어느 상임위든 이해상충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이야기다.

여덟째, 해외는 어떤가. 미국도 1978년부터 백지신탁을 의무화하고 있다. 2006년 재무장관에 임명된 헨리 폴슨 당시 골드만삭스 회장은 무려 4억8500만달러의 주식을 처분했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과 딕 체니 전 부통령, 럼즈펠드 전 국방부 장관 등도 주식을 처분했다. 샌디버거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은 주식을 매각하지 않았다가 2만3000달러의 벌금형을 받기도 했다. 캐나다에서는 직무와 무관하게 백지신탁을 의무화하고 있다.

   
안랩 홈페이지 캡처.
 
안 의원이 정말 교문위에서 일하기 바란다면 그에게 굳이 노 전 의원의 정무위를 물려받으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노 전 의원 역시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식당에 줄 서서 밥을 먹는데 앞 사람이 갈비탕을 먹었다고 해서 뒷 사람까지 갈비탕을 먹어야 되는 법은 없다”고 반문하기도 했다. 안 의원을 두둔한다기 보다는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핵심 상임위를 독점·담합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서울신문은 사설에서 안 의원이 동료 의원들에게 상임위 맞교환을 부탁하는 걸 두고 “이만저만 보기 딱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고 꼬집은 바 있다. 이 신문은 “재·보선 당선자가 제 뜻과 무관하게 전임자의 상임위에 배속되는 게 온당한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면서도 “새 정치를 하겠다며 국회에 들어선 안 의원의 첫 의정 활동이 고작 자기 주식 지키기, 상임위 맞교환 타진이라니 대선과 보선 때 그를 지지했던 국민들조차 혀를 찰 일”이라고 비판했다.

60일 이내 주식 매각을 전제로 하는 주식 백지신탁 제도에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백지신탁을 의무화하되 주식 처분 시점은 신탁기관이 결정하도록 하고 사회책임투자 형태로 운용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주식 백지신탁은 주식을 가진 사람이 공직을 맡지 못하게 하는 취지가 아니라 공직을 맡으려는 사람이 최소한의 청렴과 공정성을 담보할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마련된 제도다.

주식 백지신탁 제도의 핵심은 이해상충의 차단, 영향력과 소유의 분리다. 새 정치라는 구호를 내걸고 한때 대권까지 노렸고 주식 뿐만 아니라 부동산까지 백지신탁해야 한다는 공약으로 내걸었던 사람이 전 직장의 경영권에 미련을 두면서 큰 길을 돌아가는 모습은 어떤 이유로도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 정무위가 아니라 이해상충이 없다고 말할 건가. 안 의원의 상임위 선택은 정치인 안철수의 첫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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