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15년 동안 영화평론을 하면서 이런 경우는 처음 보는 것 같다. <아이언맨3>가 개봉한 첫 주말인 지난 4월 28일 일요일, 놀라운 상황을 목도했다. 이 영화가 무려 1380개의 스크린을 장악하면서 관객점유율 83.8%를 달성한 것. 이 말을 쉽게 하면, 전체 스크린의 35%를 <아이언맨3>가 차지했고, 영화를 본 관객 100명 가운데 84명은 <아이언맨3>를 봤다는 것이다. 수치상으로는 전체 스크린의 35%를 차지했지만, 실상 중요한 시간대의 좋은 자리는 대부분 차지했기 때문에 50% 이상의 효과가 있다고 봐야 한다. 도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물론 위의 통계만을 놓고 보면, 스크린점유율보다 좌석점유율이 훨씬 높기 때문에 관객의 자발적 선택에 의한 영화 관람을 비판할 수 없다는 의견도 등장할 수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특정 영화가 1000개 이상의 스크린을 장악하고, 특히 알짜배기 시간은 모조리 차지한 것은 폭력에 가깝다. 힘겹게 만든 독립영화는 단 하나의 스크린도 잡지 못해 악전고투하는데, 이 한 편의 블록버스터가, 그야말로 한 블록을 다 날려버릴 폭탄의 위력을 발휘하면서 수많은 스크린을 차지하게 되면, 그만큼 영화의 다양성은 죽게 된다. 관객들은 이 영화를 보지 않으려 해도, 봐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다. 문화적 획일성이 몰고 오는 문화산업의 획일화와 동질화는 문화를 죽이는 장본인이다. 숱하게 이야기했지만, 특정 영화가 500개 이상의 스크린을 장악할 수 없도록 하는 법안이 만들어져 다양한 영화가 공존할 수 있는 환경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

사실, 이렇게 말하고 나면 다소 맥이 빠진다. 왜냐하면 많은 관객들은 자발적으로 이 영화를 선택해서 보았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그 무엇이 관객들의 판타지를 자극한 것일까? 지난 주말에는 중간고사가 끝난 대학생이 집중적으로 <아이언맨3>를 관람했다면, 이번 주말은 중간고사가 끝난 중고생이 이 영화를 벼르고 있다. 벌써 400만 관객을 돌파한 이 영화는 이번 주를 지나면서 700만 고지를 가뿐히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정말 이 영화, 이대로 좋은가? 아무 문제도 없는 것일까?

   
영화 <아이언맨3> 포스터.
 
나는 <아이언맨3>가 슈퍼 히어로가 등장하는 그 어떤 영화보다 위험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아이언맨> 1편이 등장할 때부터 특정 잡지에 “미국의, 미국에 의한, 미국을 위한 영화”라며 강하게 비판했었다. <아이언맨>만큼 미국 중심의 이데올로기를 노골적으로 선전하는 영화는 찾기 어렵다. 자신이 만든 무기가 인류(라고 백인이 생각하는 이)를 위험에 처하게 하니, 무기 산업에서 손을 뗀 사람이 최첨단 슈트를 만들어, 그걸 입고 아이언맨이 되어 적을 처단하는 역설이 나에게는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마치 <영웅>에서 진시황이 황제가 되어야 전쟁이 사라진다는 편향된 논리와 닮아보였다. 게다가 제3세계에 대한 시각은 철저하게 미국 중심주의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야만적인 제3세계를 선인(善人)인 미국인이 보호하고, 제3세계의 폭력과 독재도 미국인이 해결해야 한다는 그 오만한 이데올로기가 몹시도 걸렸기 때문이다. 미국 중심의 무기 개발 논리가 뿌리 깊게 내장되어 있었던 것이다.

사실, 내가 그렇게 주장한 데에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워싱턴은 할리우드를 통해 전 세계에 이미지 정치를 한다. 대표적인 예로 2차 대전이 한창이던 때 전쟁정보국 산하 영화사무소를 만들어 이곳에서 미국을 홍보하는 영화를 만들도록 했다. 뒤늦게 해제된 당시 서류를 보면, 1943년 1월에 작성된 보고서(Record of Office of War Information)에서 “사람들에게 미국적 사고를 가장 손쉽게 주입시키는 방법은 바로 오락적 영화를 통해 그들이 선전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게 하는 것이다.”라는 문구를 보게 된다. 워싱턴이 할리우드의 힘을 알고 이용한 것이다.

2차 대전이 끝난 후 이 업무는 펜타곤의 시청각특별위원회로 이관되었다. 시청각위원회에서는 좀더 체계적으로 시나리오 단계부터 제작사와 협업해 미국과 미군의 이미지를 재고할 수 있는 내용의 영화를 만들도록 했다. 깨어있는 일부 미국인이 이를 두고 검열이라고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여기서 의문이 든다. 왜 철저하리만큼 장사꾼인 할리우드가 이런 영화를 만드는 것일까? 이유는 단순하다. 최신식 무기, 사실적인 군 장비, 병력, 촬영 장소를 거의 공짜에 가까운 경비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함대가 영화에 등장할 경우 연료비만 주면 되고, 병력은 최소한의 인건비와 식사비만으로 해결되었다. 할리우드는 경비를 절약하고 영화적 사실감도 높일 수 있고, 워싱턴은 국가 이미지를 홍보할 수 있는 윈-윈게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영화가 <탑건>, <아마게돈>, <라이언일병 구하기>, <블랙호크 다운>, <트랜스포머> 등이다.

<아이언맨> 시리즈도 펜타곤의 시청각특별위원회와의 협업으로 만들었다. 아주 단순하게 보면, 이 영화는 신무기 개발을 옹호하는 영화이다. 미국이 위험에 처할 때 신무기를 개발해서 막는다는 내용. 악당이 대통령 전용기인 에어 포스 원까지 공격해 위기에 처한 뒤, 대통령이 항구에서 절대절명의 위기 상황에 있을 때, 많은 매니아 팬들이 궁금해 한 13벌의 슈트가 등장한다. 그런데 이것은 그 동안 비밀로 진행된 병기일 따름이다. 악당을 무찌르기 위해서는 비밀 무기를 개발해야 한다는 논리가 이렇게 포장된 것일 뿐이다.

   
영화 <아이언맨>.
 
<아이언맨3>의 악당은 참 흥미롭다. 만다린이라는 캐릭터는 오사마 빈 라덴과 중국의 현자를 합성해 놓은 것 같은데, 원작 만화를 보면 징기스칸의 후예이다. 그러니까 만다린에는 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심리가 녹아있다. 만다린(mandarin)이라는 용어 자체가 표준 중국어, 청조의 고급 관리를 가리키는 말이다. 때문에 악당 만다린의 의상과 그의 주변에 있는 기린(麒麟:중국 신화 중의 동물)이 모두 중국적인 것이다. 그가 구사하는 선문답적 어법도 중국의 옛 선현을 떠올리게 한다. 물론 중동과 중국에 대한 미국의 공포가 이런 형식으로 재현되었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지나치게 노골적인 적대자를 설정했다고 생각해서인지, <아이언맨3>에서는 원작을 많이 비틀었다. 만다린은 허수아비에 불과했고 그를 조절하는 다른 악당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것도 할리우드의 지배 전략 가운데 하나로 보인다. 원작처럼 만다린을 강한 적으로 설정하면 지나치게 노골적이고, 무엇보다 13억 중국 시장을 노려야 하니 희화화한 것 같다. 실제 중국에서 상영한 영화는 다른 나라의 것보다 3분 정도 긴, 판빈빙(范冰冰)이 중국인 의사의 조수로 잠깐 등장 중국버전이었다. 하지만, 현지 반응은 냉담하다고 한다. 왜 아니겠는가. 중국을 그렇게 그리니 누가 좋아하겠는가.

말이 길어졌다. <아이언맨3>가 지금 우리에게 위험한 것은 두 가지 때문이다. 먼저 한국에서 열광적으로 <아이언맨3>를 관람하고 있을 때 남북은 핵 전쟁의 위험이 빠졌고, 동시에 미국의 무기를 또다시 수입하는 상황이 마치 정말 영화처럼 재현되었다. 세계 두 번째 무기 수입국이라는 오명에서 우리가 벗어나려면 이런 영화부터 세밀하게 보는 눈을 길러야 한다. 다음으로 제3세계에 대한 이미지 문제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아시아에 대한 미국인의 이미지는 영화에서 나온다. 우리가 생각하는 중동의 이미지도 미국 영화에서 나왔을 뿐이다. 그런데 미국인들에게 한국인은 중동인과 얼마나 다른 존재일까? 비슷한 유색인종 아닐까? 상황이 이럼에도 왜 우리는 이토록 <아이언맨>에 열광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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