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우 기자는 29년차 언론인이다. 한국기자협회 기자협회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해 시사저널 창간 멤버로 참여했다. 1998년 시사저널 부도 위기 때 회사를 살렸고, 2006년 경영진이 삼성 기사를 삭제했을 때도 회사를 살리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 함께했던 기자들은 2007년 시사IN을 창간했다. 문정우 기자는 초대 편집국장을 맡았다. 

<나는 읽는다>는 문정우 기자의 29년 언론인으로서 삶이 닮긴 책이다. 외피는 서평이지만 실은 서평을 가장한 칼럼이다. 서평집이라면 읽고 나서 서점으로 가는 게 정상인데 이 책을 읽으면 내 삶을 돌아보게 된다. 예컨대 저자는 분명 <결혼하면 사랑일까>에 대한 서평을 썼는데, 읽고나면 ‘내 안의 불륜 욕망’을 진지하게 되묻게 되는 식이다.

마찬가지로 저자는 벨라루스의 저널리스트가 쓴 <체르노빌의 목소리>를 소개하는데 정작 책에 대한 관심보다는 원전사고로 죽어간 덧없는 생명을 되 뇌이며 핵 발전의 야만성에 분노하게끔 만든다. 문정우 기자는 이런 식으로 100여 편의 책을 소개한다. 서평도 분야를 나누었는데 경제는 ‘상실’, 역사는 ‘뒤틀림’, 과학은 ‘행성’으로 명명해 흥미롭다.

   
▲ <나는 읽는다> / 문정우 지음.
 
저자는 “이 책을 내가 썼다고 우길 생각도 없다”고 말한다. 그는 “인간은 지적인 번식을 멈춘 일이 없다. 모든 위대한 이들의 깨달음뿐만 아니라 슬픔과 기쁨마저도 책 속에서 살아 숨 쉰다”며 자신을 작가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전달자로 소개한다. 저자의 꿈이 책방 주인이란 점도 눈여겨 볼 부분이다.

기자들은 글쓰기의 끈을 놓지 않으려 입사하지만 대게 글쓰기에 흥미를 잃어버린다. 글쓰기가 일이 되기 때문이다. 더 정확한 이유는 기자들이 손에서 책을 놓아버리기 때문이다. 반면 문정우 기자는 “책은 내 마음속 물음표에 피와 살을 보태주었다. 책을 읽을 때면 그 무언가의 대화가 내 귓속으로 파고드는 온갖 잡음을 차단했다”고 밝힌다. 읽을 줄 아는 것이라곤 보도자료 밖에 없는 기자들이 반성해야 하는 대목이다.

이 29년차 언론인은 한국 언론 현실에 대한 답답함도 털어놓는다. “21세기 개명 천지에 멀쩡하게 일 잘하던 기자와 PD가 하루아침에 직장에서 쫓겨나고 있지만 언론계 내부의 유대는 그 어느 때보다 느슨하다. 서슬 퍼런 5공 때도 일선 기자는 무슨 사건이 나면 아무리 회사나 간부가 꺼리는 내용이라도 써서 데스크에 던져놓기라도 했으나 지금은 알아서 취재조차 하지 않는다.”(114p)

그는 동아투위 출신 언론인들과 오늘날 해직언론인을 가리키며 “모두를 위해 나와 내 가족을 희생한 이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그들이 말년에 투쟁의 대가로 얻은 육체적 고통과 빈곤을 혼자만 지고 가며 세상을 냉소하게 만드는 것은 죄악이다”라고 말한다. 자기 몸 하나 지키는 일 말고는 관심이 없는 ‘나무 인형’같은 기자들이라면 곱씹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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