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가까이 비정규직으로 강의를 전전하던 한 비정규직 교수가 자신의 옥탑방에서 추락한 뒤 사망했으나 그 추락 원인을 두고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사망한 성균관대 예술학부 디자인학과 소속의 이 아무개(47) 교수는 직책은 겸임교수지만 시간강사 신분과 다르지 않아 저임금의 생활고에 시달리다 유명을 달리해 주변을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다.

이 교수는 지난 20일 학교 후문 옥탑 자취방 3층에서 추락한 후 뇌사상태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30일 세상을 떠났다. 이 교수는 유족들의 동의로 장기기증을 위한 수술을 받고 이날 저녁에 숨을 거뒀다.

20일 새벽 주민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이 교수의 자취방을 수색했지만 별다른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 혜화경찰서에 따르면 이 교수는 약간의 음주 상태였으며 신분증 확인 결과 성균관대에 재직 중으로 것으로 나타나 학교로 연락을 취했다. 인진남 혜화서 담당 형사는 “사고 원인에 대해선 아직 확실한 결론이 나지 않았지만 음주 후 발을 헛디뎌 추락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인과 가족들은 음주로 인한 추락사에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지인들에 따르면 이 교수는 이날 약간의 음주를 하긴 했지만 많이 취한 상태는 아니었다. 자취방 안에는 그날 입었던 옷이 옷걸이에 가지런히 걸려 있었고 가방도 제자리에 있었다고 지인들은 전했다. 실수로 발을 헛디뎌 옥상에서 떨어질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는 설명이다. 유서가 발견되지도 않아 자살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교수의 친동생은 “경찰이 CCTV도 확인했는데 CCTV에 잡힌 장면을 찾을 수 없었고 목격자도 없었다”며 “일주일 이상 방 안을 샅샅이 뒤졌는데도 사고를 확인할 만한 증거를 발견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지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95년부터 성균관대 등에서 시간강사와 겸임교수를 오가며 고용불안과 생활고에 시달렸다. 그는 2001년부터는 성대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었지만 연구소에는 명의만 두고 있을 뿐 주 수입원은 대학 강의료였다. 성대에선 최근까지 3학점짜리 사이버 강의 한 과목만 맡고 있어 시급 6만 원 남짓으로 연봉으로 따지면 600만 원 정도에 불과했다. 그의 자취방에 남아있는 거라곤 라면 봉지밖에 없었다고 동생은 전했다.

미혼인 이 교수는 직장 4대 보험에도 가입돼 있지 않아 의료보험 등의 혜택도 받지 못하고 병원비는 가족들이 전액 부담해야 했다. 학교 홍보팀 관계자는 “국민건강보험공단에 확인해 보니 4대 보험은 수업 시수가 많은 다른 대학에 가입돼 있어 우리 대학에선 지원이 없었다”면서도 “위로금 형태의 지원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 교수의 동생은 “학교에서 장례식 비용 지원과 버스 전세 등 편의를 봐주긴 했지만 보험은 어느 학교에서도 가입돼 있지 않아 지역보험 적용을 받았다”고 밝혔다.

동료 교수의 말에 따르면 학교에서 처음부터 이 교수 장례 지원에 적극 나선 것은 아니다. 치료비 등 학교의 지원이 전혀 없다는 사실에 동료 교수가 총장을 찾아가 제도적 문제점을 강하게 항의했고 언론사에서 이 사고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자 학교는 태도를 바꿨다. 

한편 이 교수의 시신은 2일 오전 8시 서울대병원에서 장례식장에서 발인 후 화장장을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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