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인에 대한 언론의 사생활 폭로가 기준을 잃었다. 조선일보는 소설가 이외수씨가 혼외로 낳은 아들의 인터뷰를 ‘단독’보도했다. 언론이 아니었다면 아무도 몰랐을 이외수씨와 혼외 아들 측과의 양육비소송 또한 언론에 의해 실시간 중계됐다.

팝 아티스트 낸시랭은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의 ‘폭로’로 살아있는 아버지를 죽었다고 거짓말한 불효녀가 됐다. 낸시랭은 “더 이상 저와 제가 사랑하는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지 말아달라”고 밝혔지만, 언론의 관심은 여전히 높다.

연예매체 ‘디스패치’는 ‘조인성·김민희’ 열애설을 단독보도하기 하루 전 날인 지난 23일 스타 커플의 열애설이 나간다며 ‘사전 예고’를 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24일 오전 포털사이트 검색어 1위는 ‘디스패치’였다. 대중은 둘의 사진과 연예이야기를 늘 그렇듯 쉽게 소비했다.

유명인의 사생활은 세대를 막론하고 대중의 관심사였다. 하지만 이것이 공중의 관심사라는 것과 보도가치가 있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유명인이 대중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만큼 그들의 사생활이 일반인에 비해 공개 범위가 넓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보도는 우리가 유명인의 사생활을 ‘왜’ 알아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은 지운 채 넘지 말아야할 선을 넘었다.

▷변희재의 트윗 하나가 대중의 관심사로 변하기까지=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낸시랭이 사망했다고 말했던 아버지가 살아있고, 낸시랭이 자신의 나이를 속였으며, 홍익대 미대 부정입학에 논문표절까지 했다고 주장했다. 해당 트윗은 언론에 의해 확대 재생산되며 진실공방으로 불거졌다.

   
©권범철 만평작가
 
조선일보는 지난 20일 낸시랭의 아버지 박상록씨와 인터뷰를 했다. 박씨는 “낸시랭은 죄가 없다. 12년 전쯤 내가 갑자기 사라졌고, 형제들도 다 내가 죽은 줄로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언론은 낸시랭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고 어머니의 장례식에도 오지 않아 연락을 끊게 됐다며 이야기에 ‘살’을 붙였다. 세계일보는 “낸시랭은 ‘아버지는 죽었다고 생각해라’라는 어머니의 유언을 받들어 아버지의 존재를 숨긴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동아일보는 지난 27일자 기사에서 이 같은 논란을 정리하며 “진보·보수진영 논객에게 누가 이득이 됐는지 요청했더니 일부는 그런 싸움은 평가할 가치가 없다며 거부했고 개인적 아픔이 드러났는데 점수를 매기는 건 실례라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고 전했다. 낸시랭의 과거 발언에서 사실과 다른 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었지만 그녀의 과거사를 언론이 추적해야만 하는 이유를 찾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 한 누리꾼(@naeun0318)은 “낸시랭은 국민이 선출한 정치인도 아닌데 언론은 뭘 그렇게 까발리나”라고 꼬집었다.

▷이외수 혼외아들은 조선일보의 ‘메인뉴스’= ‘이외수 혼외 아들 양육비 소송 사건’ 프레임은 최근 몇 달 간 조선일보의 메인뉴스와 다름없었다. 1984년 잡지사 기자였던 오 모씨가 취재과정에서 이외수씨를 만나 1987년 혼외 아들이 태어났고, 2013년 2월 아들의 친모가 이외수씨를 상대로 양육비 지급 소송을 청구하며 보도가 불거졌다.

조선일보는 <소설가 소재원 “이외수 낸시랭, 머리 숙여 진심으로 사과해야”>(29일), <“미물도 제 새끼는 감싸는데”…이외수 공식홈피 비판글 삭제돼>(28일), <이외수 혼외子, “아버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21일) 등등 지속적으로 기사를 생산했다. 조선일보가 이외수 혼외아들 이슈 건으로 4월 1일부터 작성한 기사만 18건에 달했다. 다른 언론들 또한 중계보도에 열을 올렸다.

이에 이외수는 트위터를 통해 “조선일보 오늘도 이외수를 물고 늘어졌군요. 한 작가의 27년 전과 연계한 사생활을 기삿거리로 며칠씩 기사 땜빵에 열중하는 기자정신. 찬탄을 금치 못할 지경입니다”라고 적었다. 그럼에도 기사는 이어졌다.

이 같은 보도를 두고 한 누리꾼은 “이외수 하나 두드려 패서 다시는 혼외자식이 태어나지 않는, 증류수처럼 맑은 가족문화를 이룩하고 싶었던가”라며 언론 전반을 꼬집은 뒤 “이 사회에는 파내고 캐내고 비판할 부조리가 오로지 ‘이외수 혼외’ 뿐인가”라고 탄식했다. “조선일보가 가십을 다루는 신문으로 정체성을 바꾼 것이냐”는 비판도 있었다.

   
조선일보 4월 13일자
 
대중들은 이외수의 혼외아들 이슈가 지속적으로 다룰 만큼 주요한 사회적 관심사인지, 보도 내용이 정당했는지는 의문을 던질 여유없이 실시간 검색어를 클릭하기 바빴다.

▷유명인의 사생활, 보도는 기자 맘대로?= 보통 공인의 사생활은 일정부분 공개될 수 있다는 것이 사회통념이다. 그렇다면 이외수와 낸시랭은 공인일까. 만약 공인이라면 사생활의 어디까지가 공개 가능한 것일까. 한국사회에서 공인에 대한 명확한 정의는 없다. 대중에 노출됨으로써 이익을 얻는 존재를 공인이라 보기도 하고, 정치인이나 공무원 등 공직자에 국한해 공인을 정의하는 경우도 있다.

양재규 언론중재위원회 기획팀장(변호사)은 “판례에선 연예인을 공인이라고 하지만 연예인을 공인으로 볼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공인은 그야말로 공적인 지위에 있는 사람”이라고 지적한 뒤 “공인을 공직자로 좁게 설정하면 연예인·대기업 총수·스포츠 스타 등을 묶어줄  카테고리가 필요해져 유명인이란 개념이 등장한다”고 설명했다.

유명인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일반인에 비해 높다. 때문에 유명인이 보호받는 사생활의 범위도 일반인에 비해 좁다. 배우 박시후씨의 성폭행 사건도 보도 대상이 되는 식이다. 그렇다면 이외수의 사생활 보도는 타당했을까. 양재규 기획팀장은 “이외수씨의 사생활이 국민의 어떤 알 권리에 기여할지 의문”이라며 일련의 보도를 두고 “이외수씨의 사생활을 침해한 것”이라 지적했다.

이는 이외수가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헌법 제17조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헌법 제10조 행복추구권이 언론보도의 전제가 되는 ‘국민의 알 권리’보다 더 보장받아야 한다는 점을 뜻한다. 결국 보도대상이 공인이냐 유명인이냐 보다 중요한 것은 사생활을 보도할 때 헌법에 명시된 가치를 넘어서는 공익이 존재하는지 여부다.

김준현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언론위원장)는 “혼외처럼 사적인 영역을 지속적으로 보도하는 것은 아무리 이외수씨가 공인이라 할지라도 지나치게 가혹하다”고 우려한 뒤“낸시랭씨의 경우 개인적인 이야기를 거짓으로 말했다면 보도가 가능하지만 대중적 관심사가 아니었던 사안을 보도할 때는 주제가 공적인지 되짚어 봐야한다”고 당부했다.

하지만 현재 언론환경은 유명인의 사생활을 보도하는 판단기준과 공개범위 모두 기자 개인이 결정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중의 관심 대변인가, 언론의 윤리 실종인가= 일련의 언론보도가 알권리로 포장된 관음증을 조장한다는 비판이 있지만 유명인의 사생활은 그 자체로 하나의 상품이기 때문에 상품화는 불가피하다는 반론도 있다.

‘파파라치식’ 연예매체로 유명한 ‘디스패치’ 임근호 취재팀장은 “이외수씨 보도의 경우 (사건이) 법정으로 갔기 때문에 언론공개는 감수해야 한다. 유명인은 유명인으로서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있는 만큼 사생활이 노출되는 부분에 대해서도 감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파파라치식 보도를 두고서는 “일각의 우려는 이해하지만 대중의 관심이 쏠리는 이상 어쩔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윤태진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는 “대중이 원하는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저널리즘의 목표인가”라며 “언론은 알 권리를 구실로 대중의 쾌락욕과 권력욕을 부추기고 현실화해선 안 된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최근의 이외수·낸시랭 보도는 대중의 관심을 대변 했다기보다는, 자극적인 가십거리를 찾아다니는 언론의 윤리실종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더욱이 최근 보도논란의 본질은 유명인의 사생활을 어디까지 공개해야 하느냐가 아니라, 유명인의 사생활을 우리가 굳이 알 필요 없다는 사실에 있다.

양재규 언론중재위원회 기획팀장은 “유명인이어도 사생활이 다 공개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남녀 간의 내밀한 관계나 출생배경, 이혼 배경 등은 아무리 공인이더라도 그것이 범죄에 해당하지 않는 한 보도대상이 될 수 없다”고 밝혔다.

▷백지연과 미테랑 사건이 주는 교훈= 공익적 목적을 찾기 어려운 유명인 사생활보도를 지양하기 위해서 기억해야 할 상징적 사건이 있다.

2000년 서울지법 재판부는 백지연씨가 자신의 사생활을 보도한 언론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 판결문에서 “이혼사유 등에 대한 정보는 개인의 사생활 영역에 속하며 공인이라도 이를 침해받지 않을 정당한 이익이 있는 만큼 언론이 이를 보도하려면 명시적이거나 묵시적인 동의를 받아야 한다”며 관련 사실을 보도한 언론사에 1억 원 배상 판결을 내렸다.

해당 판결은 기자가 유명인의 사생활보도를 할 때 항상 공적 가치에 부합하는지 되묻고 당사자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일종의 취재매뉴얼과 같다.

2005년 4월 19일, SBS는 <뉴스추적>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숨겨진 딸이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오마이뉴스는 숨겨진 딸의 어머니가 김 전 대통령의 예전 여비서라고 덧붙였다. 언론은 일제히 보도에 나섰다.

비슷한 시기 프랑스에서도 한 주간지가 미테랑 전 대통령의 숨겨놓은 딸을 공개했다. 그런데 타사 언론들은 해당 보도를 비판했다. 보도 가치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유명인의 사생활 보도는 이처럼 사회적 합의와 언론의 인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