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를 들어 어린 애가 ‘나 다리 밑에서 주워 왔어? 나 어떻게 생겼어?’ 물었는데 아빠가 ‘그런 걸 알아서 뭐해’ 이렇게 대답해버리면 그때부터 대화가 끝나고 소통이 없어지는 거잖아요.”(김성환 철학자)

지난 27일 전주국제영화제를 통해 대중들 앞에 처음 공개된 다큐멘터리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는 어린아이라면 누구나 품을 수 있는 ‘합리적 의심’에서부터 출발한다. 어린아이는 너무도 당연하게만 생각했던 자신의 ‘존재’에 대해 ‘왜’라는 질문을 던지며 출생의 ‘진실’을 알고 싶어 한다. 이때 진실을 밝히고 싶지 않은 부모는 아이에게 거짓말을 한다. 아이가 상처받을 것을 알면서도 그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고 겁박을 준다. 이 말에 당황한 아이는 울음을 터뜨린다. 도저히 믿기지 않은 현실에 울음으로 아니라고 분노한다. 산타클로스의 존재와 더불어 출생의 진실은 어쩌면 아이가 부모에게 불신을 갖게 되는 시작일지도 모른다.

   
다큐멘터리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에서 갈무리. 사진제공=아우라픽쳐스
 
우리는 천안함의 진실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영화에서 인터뷰에 응했던 수많은 사람들은 똑같은 정부의 결과 발표를 두고도 입장이 엇갈린다. 정부의 발표니까 당연히 믿어야 한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정부가 한 발표여서 믿을 수 없다는 사람도 있다. 정부의 말이 무조건 맞다고 할 수도 없고 국민이 의심을 품는 게 잘못됐다고 할 수도 없다. 당연히 누구나 그럴 수 있다. 진실에 대한 합리적 의구심은 과거에도 그랬듯 지금도 충분히 나올 수 있는 반응이다.

1898년 미국에서도 이른바 ‘메인호 사건’이 발생했다. 쿠바 수도 아바나의 위험한 상황에 처한 미국인을 보호하기 위해 정박해 있던 메인호가 한밤중에 갑작스러운 폭발로 두 동강이 났다. 배가 침몰하면서 무려 266명이 희생됐다. 당시 해군 조사단이 메인호의 침몰 원인이 쿠바를 지배하고 있던 스페인 어뢰라는 결론을 내리자 미국은 스페인에 선전포고하고 전쟁에서 승리한다. 그러나 이 사건은 메인호가 침몰한 지 78년이 지난 1976년, 미 해군 리코버 제독이 실시한 조사에서 석탄 창고에서 일어난 자연 발화가 배의 화약고에 불을 붙였다는 주장을 제기하면서 지금까지도 미제 사건으로 남아 있다.

이에 비하면 천안함 사건은 일어난 지 채 3년밖에 지나지 않았다. 정부는 천안함 최종결과보고서를 끝으로 북한 소행이었다고 단정 짓고 있다. 더 이상의 의혹 제기는 불순한 목적이라며 눈과 귀를 열려고도 하지 않는다. 상식적으로 봐도 불합리한 상황들이 아직까지 연출되고 있다. 영화와 감독은 사실을 연출했지만 정부와 군은 상황을 연출했다는 풍자가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 천안함 민군합동조사위원이었던 신상철씨는 천안함을 침몰시킨 무기로 지목된 이른바 ‘1번 어뢰’ 사진이 정부 최종보고서에 실린 것과 최초로 공개될 당시와 다르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신상철
 
‘아직도’가 아닌 ‘당연히 지금도’ 천안함에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의 의문은 합리적 의심에서 출발한다.  천안함 민군합동조사위원이었던 신상철씨는 천안함 침몰 조사 과정에서 품었던 의심으로 정부 발표에 의혹을 제기했다는 이유로 갖은 압력과 법정 공방에 시달리고 있다. 사실 그가 제기했던 의문들은 국민이라면 누구나 품을 수 있는 어쩌면 아주 당연한 것들이다. 이를테면 어뢰 추진체 부위에서 나온 참가리비는 서해에는 살 수 없는 어종이며 정부가 서해에 살고 있다고 주장하는 비단가리비는 어뢰에 도저히 들어갈 수 없는 크기라는 점, 천안함을 침몰시킨 무기로 지목된 이른바 ‘1번 어뢰’ 사진이 정부 최종보고서에 실린 것과 최초로 공개될 당시와 다르다는 점 등이다.

이뿐만 아니라 해난구조 및 인양 전문가 이종인 씨가 천안함이 좌초됐으리라 추정하는 곳의 암초가 실제 수중 촬영 결과 긁힌 자국이 선명했다는 사실과 실험 결과 폭발이라면 당연히 감지됐어야 할 TOD(열상감시장비) 영상의 수온 변화가 군이 공개한 영상에서는 보이지 않았다는 ‘실증적’, ‘과학적’ 의혹에도 정부는 굳게 입을 다물고 있다.

   
▲ 천안함이 좌초됐으리라 추정하는 곳의 암초가 실제 수중 촬영 결과 긁힌 자국이 선명했다. 사진제공=아우라픽쳐스 
 
   
▲ 실험 결과(우측 사진) 폭발이라면 당연히 감지됐어야 할 TOD(열상감시장비) 영상의 수온 변화가 군이 공개한 영상(좌측 사진)에는 보이지 않았다. 사진제공=아우라픽쳐스
 
“기자나 방송이 해결해야 할 게 아니라 이렇게 문화나 철학계에서 제기해야 할 문제라고 본다”는 백승우 감독의 말은 언론의 입장에선 참으로 면목없는 일이다. 국가 권력이 진실을 은폐하고 있다는 의혹이 있다면 언론이 앞장서 국민의 궁금증을 해갈하고 진실을 파헤쳐야 함에도 오히려 이들의 입에 재갈을 물린다. 천안함 사건과 관련해 “정부 발표를 신뢰하지만 직접 보지 않았기 때문에 확신할 수 없다”고 답변했다는 이유로 보수언론으로부터 ‘종북주의자’로까지 몰려 낙마한 조용환 헌법재판관 후보자의 사례는 현 언론의 슬픈 자화상이다.

분명 영화는 관객들에게 천안함의 진실에 대한 갈증을 속 시원히 해결해 주지 못한다. 내용에 대한 평가야 보는 이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실제로 국민이 느끼는 답답함은 영화에서 밝히지 못한 진실이 아니라 나 역시 가지고 있는 합리적 의심에 대한 자기검열 때문일지 모른다. 자신의 출생에 대해 부모에게 냉대를 당한 아이는 다시는 부모로부터 진실을 구하려 하지 않는다. 이 아이는 또래 친구들과의 궁금증 공유를 통해 공감을 얻고 위로를 받는다. <천안함 프로젝트> 역시 우리가 품고 있는 합리적 의문에 대한 공유다. ‘우리 생각이 잘못된 게 아니야, 누구나 그럴 수 있어’라고 말하는 소통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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