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방송된 MBC <무한도전> ‘무한상사’편을 보고 눈물을 흘리거나 가슴이 찡했다는 시청자가 많다. 유재석 부장이 사준 초밥을 맛있게 먹고 들떠 돌아온 사무실엔 정리해고대상자 통지서가 놓여있었고, 정준하 과장은 법인카드와 사원증을 반납하고 말없이 회사를 떠났다. 故 김광석의 노래 ‘서른 즈음에’가 흐르며 정 과장의 눈물도 흘러내렸다. 

이날 <무한도전>에서 영화 <레미제라블>의 오페라 형식을 빌려 정리해고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 직장생활에서 한 번쯤 경험했을 감정들을 음악으로 표현해낸 방식은 탁월했다. 정준하 과장의 해고는 한 편의 뮤직드라마처럼 시청자에게 다가왔다. 시청자이기 이전에 노동자인 우리들은 누군가의 해고에 그렇게 무덤덤하기 어려웠다.

시청자를 울린 부분은 정작 정준하 과장의 해고에 있지 않았다. 정 과장을 떠나보내며 눈도 마주치지 않았던 박명수 차장, 정형돈 대리, 노홍철, 하하 사원의 모습이 가슴에 박혀서다. “나는 살아남은 것 같다”며 아내에게 전화하는 박 차장, 쌍둥이 아빠가 되어 새벽 대리운전에 집에도 못 들어가는 정 대리, 이제 막 인턴에서 정규직이 된 길 사원 모두 나와 내 동료의 모습과 다르지 않아서다.

   
▲ MBC '무한도전'의 한 장면.
 
사람은 처음부터 잔인하지 않다. 다만 생존하기 위해 잔인해질 뿐이다. 사회는 매 순간 생존을 요구한다. 마지막 인사 한 번도 속 깊게 나누지 못하고 서로 죄를 지은 것 마냥 헤어짐을 고하는 이런 상황은 계속 반복되어 언젠가 내게도 찾아올 거라는 것을 누구나 예측한다. ‘세상이 다 그렇지 뭐.’ 체념과 비관은 ‘진정한 적’을 볼 수 있는 눈을 가린다.

이제 정준하 과장은 어떻게 될까. 아마 ‘무한상사’ 다음 편에서 그는 계약직 사원으로 등장할 것이다. 같은 사무실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들을 마주하지만 신분은 상시적 해고위기의 비정규직이다. 그렇게 무한상사는 점점 사내 비정규직 비율이 늘어날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정준하가 정규직이었다는 사실조차 잊게 될 것이다.

<무한도전>이 방송되는 MBC 또한 사내에 상시적 해고위기에 놓여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많다. 똑같이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노력하지만 파견, 용역, 바우처, 계약, 아르바이트 등 신분은 제각각이다. <무한도전>을 연출하는 PD 중에도 공채로 뽑힌 정규직 PD가 있고, 외주제작사 소속의 계약직 PD가 있다.

방송작가들은 대부분 ‘주급’ 개념으로 일하고 있다. 보통 막내작가의 주급이 25만원이다. 한 달 내내 일하면 100만원을 번다. PD에게 밉보이면 바로 해고된다. MBC마크를 달고 달리는 방송차량운전자의 상당수는 렌터카 소속이며, 한 달에 죽어라 일해도 손에 떨어지는 돈은 150만원도 안 된다. 이들은 왜 MBC 소속 직원일 수 없는 걸까.

정준하 과장의 눈물은 이처럼 많은 이들의 눈물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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