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만화 <진격의 거인>(Attack on Titan)이 최근 한국에서도 화제다. 2009년 첫 연재를 시작해 단행본(9권 기준) 발행부수 1000만부를 넘기며 이미 일본에선 인기를 검증받은 <진격의 거인>은 4월 초부터 일본 MBS에서 애니메이션이 방영되며 입소문을 내기 시작했다. 2014년엔 실사판으로 영화제작도 예고한 상태다. 

<진격의 거인>은 정체불명 거인의 등장으로 멸종위기에 처한 인류가 50m 높이의 3중 벽을 지은 뒤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이는 내용이다. 절망적 존재인 ‘거인’ 앞에서 반격에 나서는 인류의 모습은 여지없이 뚫리는 벽만큼 처절하고 무력하지만 ‘진격’이란 단어의 묵직함과 주인공들의 분투로 역동성을 띈다.

군 조사병단 소속인 주인공 알렌은 엄마가 거인에게 잡아먹히는 장면을 눈앞에서 봤다. 알렌은 거인을 모조리 죽이고 과거 인간이 누렸던 자유를 누리고 싶지만 힘이 없다. 그러나 본인도 몰랐던 잠재된 힘이 발휘되며, 그는 15m의 거인으로 변신한다. 알렌은 거인의 몸으로 거인을 갈기갈기 찢어 죽이는 극적 반전을 준다.

<진격의 거인>의 묘미는 전투장면이다. 거인과 거인 간의 전투는 흡사 <에반게리온>과 유사하다. 특히 입체기동장치를 이용한 조사병단의 전투장면은 눈을 뗄 수 없다. 죽고 죽이는 잔인한 복수의 현장이지만 ‘반격’이란 이름이 붙으며 박진감이 생긴다.

   
일본만화 <진격의 거인>의 한 장면
 

인류를 위해 군인들이 목숨을 바친다는 설정은 흡사 일본의 군국주의를 떠올릴 법도 하지만 기본 서사는 악마로부터 고립된 세기말 인간의 사투다. <진격의 거인>이 중세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유도 ‘악마’의 존재 때문이다. 세기말을 드러내는 장치인 ‘거인’은 중세 암흑시대에 횡횡한 ‘악마’와 같다.

극 중 거인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 등장하는 거인과도 비교될 법하다. 인간의 욕망에 의해 탄생해 날것 그대로의 모습으로, 흉측했던 거인은 고독하지만 쉽게 쓰러지지 않는 존재로, 인간에겐 두려움과 동경의 대상이다. <진격의 거인>은 거인에게 악마의 이미지를 덧씌우며 상상력을 끌어올린다.

극중 세계는 거인과 인간이란 계급으로 나뉜다. 거대거인에 의해 벽이 무너지며 영토가 줄어들자, 인류는 부족한 식량을 해결하기 위해 갈 곳 없는 빈민들을 ‘반격’이란 이름으로 전장에 내몬다. 그렇게 전체 인구의 20%가 거인에게 잡아먹히고, 인류는 평화를 찾는다. 거인이란 거대한 적 앞에서도 인간사회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계급이 나뉜다.

만화를 되짚다보면 현실에서도 거인과 다름없는 것들이 있다. 핵무기로 상징되는 대량 살상무기다. 인류는 인류를 절멸시킬 수 있는 무기를 스스로 만들어냈다. 이 점에 비춰보면 <진격의 거인>에 등장하는 거인 또한 인간이 만들어낸 피조물일 가능성이 있다.

<진격의 거인> 초반의 명장면은 거인이 성문을 부수기 위해 돌진해올 때다. 성문은 평화와 안정을 상징하지만, 이를 파괴하려 돌진하는 거인의 진격을 보며 인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거인을 이길 수 없는 건 당연하잖아….” 늘 닥쳐오는 위험과 예고된 불안을 거부할 수 없는 우리들의 모습이 비춰지며 몰입도가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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