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측근은 아니지만 박 대통령과 텔레파시가 통하는 사이’인 이경재 신임 방송통신위원장이 지난 17일 취임했다. 이 위원장은 취임사에서 자신을 “방통위 전신인 공보처 출신”이라고 소개하면서 “고향에 돌아온 듯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그는 방통위의 기본 임무가 “자유 민주주의를 지키는 언론의 자유, 방송의 공정성, 그리고 국민의 품위를 높이는 공익성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친박 정치인 이경재 위원장은 YS시절 청와대 대변인, 공보수석, 공보처 차관을 지냈다. 그는 A4 용지 8쪽짜리 취임사를 직접 준비했다고 한다. 공공성이란 잣대로 규제를 담당해야 할 방통위가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는 뉴라이트를 위한 이념투쟁의 최전선이 될지, 언론사에 떡고물을 던져주며 교묘하게 언론을 통제하던 YS시절 공보처로 되돌아갈지 우려된다.

이경재 위원장은 왜 공보처 출신을 언급했을까. 그는 관련 부처 경험을 강조하고 싶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공보처는 정권 홍보를 위주로 하는 기구였고, 언론사에 떡고물을 던져주며 비판 보도를 막았던 곳이다. 이 위원장이 민주주의 대신 ‘자유민주주의’라는 단어를 선택한 것에도 의문이 간다. 뉴라이트 진영이 촉발한 자유민주주의 논란에 대해 그가 모를 리 없다. 전국언론노동조합 장지호 정책위원은 “(이 같은 발언은) 방통위가 미래부와 관계에서 공공성을 잣대로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공공성을 위축할 것을 알리는 시그널일 수 있다”고 말했다. 

   
▲ 이경재 신임 방통위원장
 
이경재 위원장의 발언을 한국사회의 뉴라이트적 재구성의 조짐으로 볼 수 있다는 언론개혁시민연대 전규찬 대표의 분석 또한 흥미롭다. 전규찬 대표는 “자유민주주의 개념을 의도적으로 사용했거나 무의식적으로 썼더라도 이경재 위원장은 한국사회의 뉴라이트적 재구성의 조짐이나 내용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면서 “48%를 적으로 규정하는 분위기로 볼 때 (이 위원장 발언은) 반쪽짜리 의식, 철학, 정치”라고 말했다.

철학자 미셸 푸코는 언론자유의 개념을 추적하면서 그리스어 ‘파레시아(parrhesia)’를 찾아냈다. 이 단어는 다섯 개의 요소로 이루어지는데, 솔직함(frankness), 진실(truth), 위험(danger), 비판(criticism), 의무(duty)다. 전규찬 대표는 “푸코에 따르면, 언론자유·자유언론이란 권력에 대해 진실이라는 이름으로 솔직하게, 위험을 무릅쓰고 말 할 수 있는 의무에 해당한다”면서 “언론자유는 ‘두려움 없는 발언’”이라고 정리한 바 있다.

언론의 주된 기능은 국가와 자본에 대한 감시 기능이다. 공보처에서 애완견(Lapdog)을 키워온 이경재 위원장이 감시견(Watchdog)을 키워낼 수 있을까. 보수언론 특혜에 앞장 선 이 위원장이 이념과 주장이 자유롭게 충돌하는 공론장을 만들 인사인가. 두려움 없는 발언을 들을 인내력이 있는가.

아니면 진흥 기능 대부분을 미래창조과학부에 넘긴 방통위가 김영삼 정권 시절 공보처로 돌아가는 것일까. 뉴라이트 방통위가 탄생하는 것일까. 취임부터 출신부처를 거론하고 민주주의를 절반으로 잘라낸 이 위원장의 발언에 한숨이 나온다.

이 같은 의견에 대해 방통위 관계자는 “(해당 발언은) 민주주의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강조하는 취지”라면서 “한정적인 의미로 언론 자유를 언급한 것이 아니라 언론 자유가 갖는 가치와 의미를 강조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취임사는 (이 위원장) 본인이 구술을 해서 작성한 것”이라며 “그런 것에 대한 의지가 강한 분”이라고 전했다.

이경재 위원장 청문회 당시 각종 과태료와 지방세 체납, 자녀들의 증여세 늑장 납부 및 국민연금 미납, 건설회사 전세 스폰서 논란 등 도덕성 문제와 관련 많은 의혹이 제기됐다. 그는 조선·중앙·동아일보, 매일경제 종합편성채널을 탄생시킨 미디어법 날치기를 주도하기도 했다.

이런 까닭에 민주통합당 등 야당 의원들은 청문보고서 채택에 반대했고, 결국 국회는 이경재 위원장에 대한 보고서를 채택하지 않았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임명을 강행했다. 이에 대해 이 위원장은 취임사에서 “저도 본의 아니게 실수를 하게 되지만 늘 ‘나중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자문하면서 정직하게 살려고 노력했다”라고 말했다.

이경재 위원장이 남겨야 할 것은 무엇일까. 이 위원장은 현안으로 △국회의 방송공정성 특별위원회 △방송통신 융합 시대 산업화 △케이블-지상파 재송신 갈등 △휴대전화 단말기 보조금 등을 들었다. 그는 방통위와 미래창조과학부가 부처의 벽을 허무는 협력 체계를 마련해 관련 논의를 진행시킬 것을 당부했다.

답은 이미 나와 있다. 공영방송 사장 선임 제도를 근본적으로 손질해 ‘낙하산’ 논란을 없애고, 유료방송 권역 완화 등 규제 완화 움직임을 공공성 잣대로 판단하고, 통신요금 원가 자료를 공개해 통신비 인하를 유도하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에 비판적인 언론의 자유를 확대해 공론장을 넓히는 것도 과제 중 하나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