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기업인 일진그룹의 홍보담당 임원으로 일하던 인사가 협찬 거부에 따른 ‘보복기사’로 피해를 입었다며 신문사를 상대로 ‘전면전’을 선언하고 나섰다. ‘횡포’의 대상자로 지목된 서울경제신문은 “전혀 사실 무근”이라며 강하게 의혹을 부인했다. 
 
일진그룹의 홍보실에서 근무하던 황아무개 전 상무는 15일 ‘어처구니없는 서울경제신문의 횡포’라는 이름의 문서를 작성해 서울경제 기자들과 몇몇 지인들에게 이메일을 발송했다. ‘사옥이전 협찬금을 안 냈다고 보복을 당했다’는 내용이다. 이 문서는 인터넷을 통해 언론계 등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지난해 일진그룹에 입사하기 전까지 25년 동안 기자로 일했다고 밝힌 황 전 상무는 이날  회사에 사표를 내고 “고난의 길을 감수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황 전 상무는 “올 3월초 서울경제에서 ‘사회공헌 특집을 하니 광고를 달라’는 요청이 왔다”며 “저희 일진그룹은 부품소재 전문기업으로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비즈니스가 아니라서 신문광고 카피가 없는 회사다. 사정을 설명하고 정중히 거절했는데 3월5일 공문이 날아왔다”고 밝혔다. 공문은 사옥 이전에 따른 ‘협찬’을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금액은 1000만원이었다. 
 
일진그룹은 이에 응하지 않았고, 이후 서울경제의 ‘보복기사’가 시작됐다는 게 황 전 상무의 주장이다. 서울경제 4월1일자 15면에 실린 <주력사 적자 비상…이름값 못하는 일진그룹> 기사에 이어 4월15일자 15면에 실린 <중견그룹 일진의 도 넘은 일감 몰아주기> 기사가 협찬 요청 거부에 따른 ‘보복’이라는 것이다. 

   
▲ 서울경제 4월15일자 15면
 
 
서울경제는 1일자 기사(링크)에서 “일진전기, 일진머티리얼즈, 일진다이아몬드 등 일진그룹의 주력 계열사들이 잇달아 부진한 성적표를 내놔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며 “승승장구를 이어온 허진규 회장의 ‘일진 스토리’에 적신호가 켜졌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15일자 기사(링크)에서는 “일진그룹 계열사로 화물운송 등 물류를 담당하고 있는 일진파트너스가 그룹 주력사인 일진전기로부터 일감 전량을 받고 있어 경제민주화에 정면 역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일진파트너스의 지분을 100% 보유한 허 회장의 장남 허정석 대표가 ‘일감 몰아주기’의 수혜를 입고 있다는 내용이다.
 
황 전 상무는 첫 번째 기사에 대해 ‘전반적인 불황 때문에 적자가 불가피했던 것’이라며 “어처구니가 없더라”고 밝혔다. 두 번째 기사에 대해서는 “작년 이맘 때 한 매체에서 썼던 것을 완전 재탕한 기사”라며 “특수 분야 물류인데다 거래가 투명해 전혀 문제될 것은 없다”고 주장했다. 명백한 ‘보복기사’라는 것이다.
 
황 전 상무는 또 “작년 하반기 일진그룹을 담당하는 서울경제 데스크가 저와 밥 먹으면서 말하기를 ‘OOO가 영 비협조적이다’라고 하더라”며 서울경제가 또 다른 중견기업인 OOO를 상대로도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네 차례에 걸쳐 ‘보복기사’를 썼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 서울경제 4월1일자 15면
 
 
이에 대해 서울경제 측은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 
 
김춘식 서울경제 광고국장은 16일 통화에서 “직접 찾아가거나 전화통화를 한 것도 아니고 이메일로 협조공문을 보냈는데 ‘어렵다’고 해서 알았다, 그걸로 끝난 일”이라고 말했다. 김 국장은 “광고국 업무에서 협조요청 공문 보내는 건 일상생활”이라며 “편집과 광고는 분리되어 있고, 압력 넣고 그런 건 없었다”고 말했다.
 
‘일진기업 담당 데스크’인 이규진 성장기업부장은 16일 통화에서 “정상적인 취재활동의 일환이었고, 일관된 관점에서 기사를 써왔다”며 “(황 전 상무의 주장은) 전혀 사실무근이고 명예훼손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기사를 이용해 광고를 달라고 요청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 부장은 “중견기업들은 동반성장이나 경영투명성 면에서 감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며 “그런 문제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일진그룹의 사례가 잡혔던 것이지 무슨 의도를 가지고 한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부장은 “지난해에도 한 중견기업에 대한 비판 기사를 썼더니 찾아왔다. ‘딜’을 할 거면 나가라고 큰 소리 내서 쫓아냈다”며 “광고국에서 (공문을) 보냈는지는 나중에 알았고 우리는 원칙대로 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다른 기업인 OOO에 대해서도 ‘보복기사’를 썼다는 황 전 상무의 주장에 대해서는 “(기사가 나간 후) OOO도 찾아왔다. 광고로 ‘딜’ 할 거면 가라고 했다”며 “기사에 대해서도 소상공인들의 반응도 좋았고 경각심을 일깨워줬다는 평가가 많았다”고 강조했다. “정상적인 언론의 비판활동을 ‘악의적 기사’라고 해 재갈을 물리려고 한다면 어떻게 기사를 쓰겠냐”는 주장이다.
 
‘OOO가 비협조적’이라고 언급한 대목에 대해 이 부장은 “기자들 사이에서 OOO나 일진그룹 같은 곳들은 취재가 안 되기로 악명이 높다”며 “(취재활동에 대해) 폐쇄적이고 협조가 안 된다고 언급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황 전 상무는 16일 통화에서 “미디어매체들을 모아서 기자회견을 하려고 했는데 문서가 이미 다 퍼져서 할 필요가 없겠더라”며 “(문서에 있는) 내용은 내가 다 책임을 질 것”이라고 말했다. 황 전 상무는 해당 문서에서 유사한 문제로 서울경제로부터 피해를 입은 내용들을 제보 받아 폭로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이규진 부장은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상대할 가치가 없다”고 밝혔다. 이 부장은 “기사 내용에서 뭐가 잘못됐는지 얘기해야 하는데 (황 전 상무가) 그런 얘기는 안 한다”며 “기업들이 주는 보도자료만 쓰면 사보와 다를 게 뭐가 있겠냐”고 말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